AI 영화, 명령문 1만번 넣어야 25분… 아직 ‘손’ 많이 가
100% AI 제작 장편영화 2편 개봉
국내 최초 100% AI로 만든 장편 영화 두 편이 지난 21일 동시에 개봉했다. 미래 범죄자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려는 로봇이 주인공인 영화 ‘아이엠 포포’와 조선 장영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교류하는 가상의 역사극 ‘한복 입은 남자’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중간계’(감독 강윤성)는 AI를 사용한 최초의 장편 영화였으나, 인물은 배우가 연기했다. 이번에 개봉한 두 작품은 인물도 AI가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현시점 AI의 한계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객은 각각 564명과 468명(25일 현재)으로, 시장을 움직일 만한 규모는 아니다. 그런데도 두 영화의 감독은 “지금 뛰어들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여전한 ‘15초의 벽’… “인물 동일성 유지 어려워”
두 영화는 지난해 완성됐다.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의 격투 영상으로 유명한 중국 AI 시댄스 2.0 버전(지난 2월 출시)이 나오기 전이다. 해당 영상은 AI 영상에 대한 대중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놨다. 문제는 분량(상영 시간)이다. 현재 출시된 AI 생성 모델의 영상은 한 번 프롬프트(명령어) 입력에 길어야 15초 정도 가능하다. ‘톰·브래드 격투’만 해도 10초가량이다. 프롬프트 한 번에 10여 초가 만들어지는데, 다음번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악명 높은 ‘일관성의 벽’(AI가 긴 영상을 만들 때 캐릭터·배경을 동일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기술적 난제)이다. 초 단위의 숏폼, 분 단위의 단편, 시간 단위의 장편으로 넘어갈 때마다 다른 차원의 벽이 막아선다. 장편이라면 수십만 번 프롬프트를 생성해야 하는데, 이는 창작의 영역을 넘어 노동집약적인 기술의 산물이다.
지난해 완성된 두 영화는 AI 영화의 한계와 과제를 보여준다. ‘아이엠 포포’의 경우, 입 모양이 말소리와 어긋나고 AI 인물 특유의 번들거리는 피부도 여전하다. ‘아이엠 포포’를 만든 김일동 감독은 웹툰 작가로 시작해 미디어 아트로 입지를 다졌다. 김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AI가 만들어낸 인물이 하나같이 평균적인 미남·미녀였던 것도 문제”라며 “주위 지인들의 동의를 받아 인물 얼굴 생성에 일부 반영했다”고 말했다.
‘한복 입은 남자’는 베스트셀러 원작을 쓴 소설가 이상훈씨가 감독으로 나섰다. 이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인물의 동일성을 끌어내기 위해 프레임 하나하나 사람이 달라붙어 수정했다”며 “뒷부분 작업을 하는 중에 신기술이 나와서, 앞부분을 갈아엎고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AI는 편리한 도구이지만, 앵글과 구도 정도는 알아야 영화에 활용할 수 있다”며 “영화계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전문가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감독은 이미 차기작도 AI로 제작 중이다. 김 감독은 애니메이션, 이 감독은 자신의 소설인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를 AI로 만들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난해 11월 시작해 벌써 절반쯤 만들었다”며 “전작을 만들어본 경험 덕분에 속도를 더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칸에서도 AI 화두… “누군가는 앞장서야 한다”
AI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도 큰 화제였다. 심사위원 데미 무어는 “AI와 싸우면 필패”라며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칸 필름 마켓(Marché du Film)에서는 95분 분량 전체를 구글의 AI ‘베오3′으로 만든 영화 ‘헬 그라인드(Hell Grind)’가 선보였다. 도둑이 연인을 구하기 위해 디스토피아 황무지를 헤매는 액션 영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헬 그라인드’의 첫 25분을 만들기 위해 프롬프트를 1만6181번이나 입력했다. 하나의 프롬프트는 평균 3000단어(원고지 60장 분량)에 달했다.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조명이 역광인지 자연광인지, 카메라 위치는 어디인지, 카메라 종류는 무엇인지도 프롬프트에 입력해야 영화 같은 영상이 나온다. ‘헬 그라인드’ 프롬프트에는 “물리학 법칙에 따라 중력과 관성을 존중하고, 질량은 실제 무게를 가진다”는 기본 전제도 들어갔다.
칸 초청작 중에도 AI 영화가 포함됐다. 다큐멘터리 ‘존 레논: 마지막 인터뷰’로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작품 중 10%에 AI로 만든 초현실적 이미지를 넣었다. 칸 역대 최연소(26세)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행보다. 다큐 예산의 절반은 메타에서 지원했다. 소더버그 감독은 AP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선을 넘기 전까지는 그 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며 “믿을 만한 창작자가 AI 영화를 만들어 관객의 반응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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