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그네 타는 다 큰 어른

그네를 좋아한다. 글이 안 풀리는 새벽이면 꼭 아파트 놀이터에 간다. 그네를 10분 정도 탄다. 그네가 최고점으로 치솟는 순간 놀이동산 바이킹을 탄 기분이 든다. 오장육부가 중력에서 해방되는 순간 머리도 비워진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그네가 예전 같지는 않다. 옛 그네는 360도로 돌아갈 것 같은 스릴이 있었다. 요즘 그네는 얌전하다. 줄 길이는 짧아졌다. 프레임도 낮아졌다. 좌석은 앉아서만 이용할 수 있다. 옛 그네는 인간 투석기였다. 요즘은 흔들의자다.
요즘 놀이터는 얌전하다. 어린이 안전 규정은 강화됐다. “애들은 다치면서 큰다”고 말하는 어르신들도 사라졌다. 이젠 다치면 큰일 난다. 민원이 쏟아진다. 송사로 발전한다. 한국의 모든 것은 민원과 송사를 막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뭐든 옛날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꼰대처럼 굴 생각은 없다. 정글짐에서 떨어져 깁스한 친구가 반에 한 명은 있던 시절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 유럽에서는 위험한 놀이터를 재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적당한 위험을 경험해야 판단력과 자신감을 배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2024년 기준 전국 아동 불안 장애는 2018년 대비 93% 증가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위험이 제거된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직접 위험을 다루는 경험이 아이들 불안을 제거할 수도 있다.
약간 위험한 놀이터는 교육에도 좋다. 나는 태양열에 달궈진 쇠 미끄럼틀로 열역학을 익혔다. 제한 속도도 없이 돌아가는 뺑뺑이로 원심력을 배웠다. 그네로 중력의 이치를 깨달았다. 초등학교 물리 교육은 뉴턴이 아니라 놀이터 담당이었다. 과장이다. 아니다. 원래 몸으로 익힌 것은 잘 잊히지 않는 법이다. 새벽에 다 큰 어른이 그네 타는 걸 보고 놀라 신음소리를 낸 주민분에게는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민원은 제기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린다. 요즘은 민원이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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