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정]AI발 수출 호황이 절로 장기 성장 보장하진 않는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2026. 5. 2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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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출이 K증시-수출 호황의 중심에
성장 기반은 편중돼 ‘좋은 경기’와는 달라
반도체 산업도 공급막 병목에 취약점 있어
호황 이익 재투자하고 새 성장엔진 키워야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뜨겁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은 반도체 호황과 수출 회복, 기업 이익 개선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이렇게 주가가 오를 때는 늘 어떤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요즘 그 이야기는 단연코 AI와 반도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 아니겠는가. 물론 막연한 기대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와 AI 서버 수요가 늘고 있고, 그 흐름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메모리 반도체, 저장장치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AI 플랫폼을 주도하는 나라는 아닐지 몰라도 AI를 움직이는 제조업 기반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오르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가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 호황이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이 호황이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이다.

우선 지금의 호황은 한국 경제 내부에서 발생한 성장 잠재력의 발로라기보다 글로벌 AI 투자 붐이 한국 반도체 수출로 이어진 결과이다. AI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데이터센터, 서버, HBM, 메모리 반도체,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같은 제조업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한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나라다.

숫자도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4월 한국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0% 증가했지만, 반도체 수출은 173% 늘었고 컴퓨터 관련 수출도 SSD 수요 등에 힘입어 516% 증가했다. 5월 수출에서도 20일 현재 전체 수출은 64.8% 증가했는데, 반도체 수출은 202.1% 늘어 전체 수출의 41.7%를 차지했다. 반면 승용차 수출은 10.1% 감소했다. 수출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 회복의 무게중심은 아직 상당히 편중돼 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단순히 “경기가 좋아졌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반도체가 잘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발생한 AI 수요 충격이 한국 수출과 기업의 주가를 밀어 올리는 것과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가 전반적으로 단단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호황이 장기적인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적어도 두 가지 병목을 잘 빠져나와야 한다. 첫 번째 병목은 글로벌 공급망에 있다. 한국은 반도체를 잘 만드는 나라이지만, 반도체와 AI 인프라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원료를 모두 국내에서 조달하지는 못한다. 핵심광물, 즉 희토류, 갈륨, 게르마늄, 특수가스, 고순도 소재 등은 글로벌 공급망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유럽연합(EU)의 핵심광물 비축 논의는 이 문제가 단순한 조달 문제가 아니라 산업 안보의 문제가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AI 인프라 가치사슬의 핵심 부품 공급자이지만, 아쉽게도 그 가치사슬을 작동시키기 위한 원료와 소재의 단순 구매자일 뿐이다. 이 부분에서 공급자의 위치를 갖지 않는 한 이 좁은 길을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 길을 빠져나오려면 기업이 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함께 도와야 한다.

두 번째 병목은 투자 재원에 있다. 반도체 제조업은 지속적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규모의 산업이다. 땅을 파면 나오는 석유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반도체 분야의 ‘초과이익’ 논란은 반도체 투자에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줘 매우 우려스럽다. 당연히 성과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이익은 현재 소득이면서 동시에 시장 경쟁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투자 재원이기도 하다. 차세대 공정, HBM 이후 기술, 설비 투자, 고급 인력 확보가 계속 필요한 산업에서 호황기 이익을 어떻게 재투자할 것인가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지속 가능한가의 문제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주어진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가 저절로 장기 성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반도체 분야의 호황은 기업의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핵심 소재와 원료의 공급망에서도 이제는 우리 기업이 공급자로 우뚝 서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강한 엔진이지만, 이 하나만으로 성장의 긴 여정을 갈 수는 없다. 조선, 방산, 바이오, 전기차, 로봇 등 다른 엔진들도 동시에 힘을 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에만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성장 기반을 찾을 것인가이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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