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서 챗봇 쓰면 AI 융합?… 고기-채소 한 솥에 담고 “전골” 우기는 격[맹성현의 AI시대 생존 가이드]
챗봇 활용, 자동화만으론 융합 아냐
AI-전문 영역 서로의 사고체계 섞여
새것 탄생해야 진정한 융합 이뤄져
“내 일의 본질은” 전문가에 묻게 해
궁극적 종착역은 AI-네이티브 환경
융합 텃밭에서 새 직업도 탄생할 것


진정한 융합은 한 영역의 본질과 다른 영역의 본질이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깊은 과정이다. 요리에 비유해 보자. 한 냄비에 고기와 채소, 양념을 담아 섞는다고 자동적으로 맛있는 전골이 되지는 않는다. 재료들이 한 솥에서 함께 끓다가 열과 시간 속에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어느 하나의 재료만으로는 낼 수 없는 감칠맛이 생겨나야 비로소 요리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AI 융합’은 재료를 한 그릇에 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에서 AI 챗봇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융합이 아니라 글쓰기와 기획을 AI에 맡기는 일이다. ‘AI 영화’를 만드는 창의적 작업도 마찬가지다. 인간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AI에 그저 동영상 생성을 맡기는 식이라면 AI를 도구로 사용해 작업의 일부를 위탁하는 표층적 융합일 뿐 본질적 융합이 아니다.
특정 도메인과 AI의 본질적 융합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본질적 융합이 이뤄지려면 사고 체계의 차이를 넘어야 한다. 학제 간 융합도 분야별 언어와 방법론의 차이로 늘 진통을 겪지만, AI 융합에는 한 겹이 더 있다. 도메인 전문가가 AI라는 낯선 존재의 작동 원리, 한계, 편향 가능성까지 이해해야 한다. 도구가 아니라 동료의 사고방식을 익히는 일에 가깝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협력을 잘하려면 그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디서 실수하는지, 어디까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둘째, 본질적 융합은 전문가의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킨다. 도메인 전문가에게 “내가 평생 해온 일의 본질이 무엇이었나”를 다시 묻게 만드는 것이다. 교사에게 가르침의 본질을, 예술가에게 창작의 본질을, 변호사에게 변론의 본질을 다시 묻는 일이다. 그동안 쌓아온 전통적 지식과 방법론을 해체하고 AI의 사고를 폭넓게 받아들여야 비로소 창조적 결과가 나온다. 이 실존적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융합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실천적으로는 회피한다.
셋째, 변이의 속도가 다르다. AI 신기술은 분기 단위로 모습을 바꾸지만, 각 도메인은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문명적 자산이다. 그 자산을 장시간 체화해 온 전문가일수록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긴 호흡으로 살아온 전문가가 AI 신기술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두 시간대의 충돌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가치론적 충돌이 더해진다. 효율과 존엄, 성취와 인격, 이윤과 책임 사이의 긴장 말이다. AI는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교육·예술·사법·의료 등의 본질은 효율만이 전부가 아니다. 예컨대 AI가 학생의 긴 작문을 1초 만에 채점하고 등급을 매긴다고 해서 그것을 곧 ‘좋은 교육’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융합을 시도하는 순간 우리는 이 가치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AI 융합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무엇보다 AI와 해당 도메인의 본질을 동시에 깊이 이해해야 한다. 두 분야를 그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롭게 사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번역자’를 길러야 한다. AI나 도메인 한쪽 전문가가 아닌, 양쪽 언어를 구사하며 매개하는 제3의 인재형이다. 최고AI책임자(CAIO·Chief AI Officer)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셋째, 융합을 과정으로 봐야 한다. 한 번에 끝내는 일이 아니라 AI와 도메인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협상하는 지속적 작업이라는 얘기다.
AI 융합의 궁극적 종착역은 AI-네이티브 환경이다. 미래 세대가 AI라는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면, 지금의 우리는 뭍에서 살아온 악어가 물에 들어가 사는 법을 익히는 것과 같다. 세대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악어처럼 수륙 양쪽에서 동시에 살아갈 것인가이다. 뭍은 인간적인 삶의 영역이고, 물은 AI적인 사고의 영역이다.
융합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는 두 가지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 현실적 차원에서 지금 한국의 AI 정책, 기업 전략, 대학 교육은 여전히 표층적 융합에 머물러 있다. 본질적 융합으로 가는 길은 멀고 더디지만, 우회로는 없다. 철학적 차원에서 보자. 융합이라는 말 안에는 AI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가 포함돼야 한다. AI와 공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AI가 몰고 오는 위험을 응시하면서 AI라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길은 단 하나다. 인간성과 기술을 본질의 차원에서 융합하는 것이다. AI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인간을 다시 발견하는 길로 이어진다. 그 융합의 텃밭에서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고,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 것이다.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서소문 참사에 “오세훈 때문” “우리 區는 안전” 여야 망언 눈살
- 李 “외국인 주식 매도로 달러 빠져…주가 안정되면 환율 상승 멈출것”
- 삼성 성과급, 최저임금에 영향?…노동계 “소득 격차 심화” 목청
- “핵잠, 국내 기술로 2030년대 중반 첫 진수…저농축우라늄 사용”
- [속보]가세연 김세의 구속…‘김수현·故김새론 교제’ 허위 유포 혐의
- 부산 공연 앞둔 BTS “적당히들 하셨으면”…무슨 일?
- “택시비 모자라요” 울먹인 소년…다독이며 집까지 간 中기사 화제
- 李부부 자갈치시장 방문에…상인 “악수하려고 손 씻고 기다려”
- 1만피 예측에도… 외국인 13거래일 연속 순매도로 리스크 여전
- 원주서 금 캔다며 땅 파던 70대, 지하 20m 추락해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