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만원짜리가 6만원에"…'불황 공포' 덮친 명품업계 '파격' [트렌드+]
1030세대 겨냥한 실속형 스몰 럭셔리 확산

고물가 장기화에 '불황형 소비'의 상징으로 꼽히던 향수 시장도 문법이 바뀌고 있다. 향수는 립스틱과 함께 명품 가방이나 의류에 비하면 적은 비용으로 심리적 만족을 얻는 대표적 '스몰 럭셔리' 품목으로 인기를 누렸지만, 불황이 길어지고 소비자 구매력이 줄어들자 명품·니치 향수 브랜드마저 소용량 제품을 앞세워 제품 가격을 낮추는 모양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톡 선물하기 뷰티 카테고리에서는 조말론의 3만원대 소용량(9mL) 향수가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르라보 등 기존 10만원대 안팎 브랜드들이 내놓은 2만~4만원대 소용량 향수가 선물용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수십만원대 초고가 니치 향수 브랜드마저 소용량 제품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는 추세다. 대표적 사례가 톰포드와 엑스니힐로다. 42만2000원짜리 톰포드 향수 50mL 제품은 선뜻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가격대지만, 최근에는 같은 향을 4mL 소용량 구성 상품으로 6만9000원대에 경험할 수 있다. 100mL 기준 49만원대인 엑스니힐로 '블루 탈리스만 오 드 퍼퓸'도 10mL 미니어처 제품은 9만5000원에 판매 중이다.
그동안 명품 향수 시장은 가격이 높을수록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가 부각되는 '베블런 효과'가 작동하는 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물가 부담이 길어지면서 소비자들은 과거에 명품 가방을 대신해 즐기던 향수, 립스틱 등 스몰 럭셔리마저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9.37로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기준연도인 2020년과 비교하면 물가가 19.4% 오른 수준이다. 같은 소득을 가정하면 2020년 100만원이던 구매력이 현재는 83만원 수준으로 낮아진 셈이다. 먹거리와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는 흐름도 강해졌다. 고가 정책을 고수하던 향수 시장이 소용량·미니어처 제품에 힘을 주게 된 배경이다.
소용량 향수는 비대면 선물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모바일 선물 채널에선 조말론 등 고가 향수 브랜드의 2만~4만원대 소용량 제품이 선물용으로 팔린다. 핸드크림이나 립밤은 이미 흔한 선물이 됐지만 향수는 상대적으로 성의 있고 차별화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본품보다는 부담이 낮고 일반 뷰티 소품보단 브랜드 감도가 높다는 점도 강점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소용량 향수는 단순한 저가 상품이 아니다. 고객을 브랜드로 끌어들이는 미끼 상품에 가깝다. 직접 시향 기회가 제한적인 온라인·모바일 소비 환경에서 소용량 제품은 첫 경험의 문턱을 낮춘다. 4mL나 10mL 제품을 통해 향을 접한 소비자가 만족하면 이후 50mL, 100mL 본품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가격을 낮추되 브랜드 이미지는 유지하는 절충 전략인 셈이다.

국내 패션·뷰티 업계도 이 흐름에 맞춰 라인업을 다변화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판매하는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엑스니힐로는 지난 2월 베스트셀러 제품을 10mL 미니어처로 재해석한 제품 4종을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기존 보틀 디자인을 축소해 유리 보틀 컷팅과 골드 캡 등 패키지 감성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엑스니힐로의 지난해 브랜드 연매출은 전년 대비 131%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파리도 소용량 제품군을 확대해왔다. 메모파리는 기존 75mL, 100mL 중심이던 제품군에서 30mL용량을 개발해 아시아 지역에 단독 판매한 바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메모파리의 국내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자 브랜드 본사에 소용량 제품 개발을 요청해왔다.
업계는 소용량 향수가 고물가 시대 젊은 소비자에게 명품 향수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핵심 상품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명품 향수는 가격대가 높고 취향을 많이 타기 때문에 처음부터 본품 구매를 유도하기 어렵다"며 "소용량 제품은 소비자에게는 낮은 가격으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선택지이자 브랜드에는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입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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