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카메라]6·25 참전용사 절반 가까이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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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총을 들었던 6.25 참전용사들, 절반 가까이는 빈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현장카메라는 이들을 만납니다.
청춘을 전쟁터에 두고, 이제는 생활고와 씨름하는 씁쓸한 현실, 배준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96세 어르신의 마중입니다.
여기서 40년을 살았습니다.
[현장음]
"<화장실은 어디있어요?> 우리 화장실은 재래식입니다. 여기 밖에 입구에."
숨소리 거칠어도, 이건 꼭 입고 하자십니다.
어르신의 자부심입니다.
그는 6·25 참전용사입니다.
[정수용 / 6·25 참전용사]
"이게 화랑훈장입니다. 화랑훈장은 한 달에 6만 5천 원 나옵니다. 근데 뭐 몇 만 원 가지고 그 가치가 됩니까?"
중학생 때 참전했습니다.
휴전 뒤 여생은 빈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정수용 / 6·25 참전용사]
"재학 중에 군에 갔기 때문에 남들처럼 공부를 못 해서 노동 일을 해왔고…(학교 다녔으면) 나도 좋은 직장 만나서 자식들도 좋게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는데…"
참전용사 10명 중 4명이 빈곤층입니다.
국내 노인 빈곤율보다 높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참전명예수당 49만 원.
지자체도 따로 주지만, 어디 사느냐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여긴 전우애로 다 형님 동생입니다.
제일 형님은 100세, 막내는 94세입니다.
힘들어도 입 밖으로 그런 말 안 낸답니다.
[최은석 / 6·25 참전용사]
"내가 ○신같이 (전쟁터) 갔다 왔다 그런 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할 수 없이 끌려 갔다 왔다 그런 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명예롭게 갔다 왔으니까 명예롭게 얘기를 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거죠."
평균 연령 94세.
6·25 참전용사 2만6천여 명 남았습니다.
한 해 약 1만 명씩 돌아가십니다.
[김광식 / 6·25 참전용사]
"고령이 돼가지고 이제 병이 나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고 지금은 생존자가 몇 명 없어요."
현충탑 앞에 노병이 섭니다.
나라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 그들에게 걸맞은 예우는 당연한 일일 겁니다.
[현장음]
"다른 사람들은 군인 안 가도 전부 다 출세했는데 왜 아버지는 군인 갔으면서도 그렇게 우리가 고생해야 됩니까? 그 보람이 그 결과가 뭡니까? 물어볼 때 답변할 기회는 나라가 주어야 한다."
현장카메라 배준석입니다.
PD: 장동하
AD: 진원석
배준석 기자 jundol@ichanne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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