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예견된 인재(人災)였다”…서소문고가도로 붕괴, 주민들은 사고 예감했었다

이태준·변문우 기자 2026. 5. 26. 19: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거 공사한다면서 정작 주민들에게 어떤 설명도 없었다”
“수년째 공사 방치…현장에는 ‘안전 고깔’ 몇 개만 세워져”
“사고 터지니 달려오는 정치인들…선거 표심에 영향줄 것”

(시사저널=이태준·변문우 기자)

26일 오후 2시32분. 58년의 세월을 버텨온 서울 서소문고가도로가 주저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사저널 변문우

26일 오후 2시32분. 굉음과 함께 58년의 세월을 버텨온 서울 서소문고가도로가 주저앉았다. 다음 달 초 철거 완료를 앞두고 벌어진 참사였다. 붕괴된 고가도로의 철골은 흉물스럽게 노출됐고, 119구조대와 경찰이 분주하게 오가는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참사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놀람보다 '올 것이 왔다'는 체념과 분노가 짙게 깔려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예견된 사고였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현장 바로 앞 식당에서 일하는 60대 여성 A씨는 늦은 점심을 먹다 혼비백산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는 현장을 바라보며 그는 "밤마다 철거 공사를 진행하면서 소음과 먼지가 심해 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며 "기차가 다니는 선로 위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고난도 작업임에도 현장의 안전 관리가 허술해 항상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불안감은 A씨만의 것이 아니었다. 인근 다른 식당의 30대 종업원 B씨는 불과 이틀 전, 현장 관리소장을 직접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여기는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철거라는 큰 공사를 하면서 정작 서소문 주민들에게는 어떤 설명도 없었고, 설명회를 남대문에서 열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만 들었죠." 그의 목소리에는 현장을 외면한 행정 편의주의에 대한 깊은 불신이 배어 있었다.

주민들이 가장 크게 우려했던 부분은 진동과 부실한 현장 통제였다. 중림동 주민인 40대 여성 C씨는 "수년째 공사가 방치되다시피 했고, 현장에는 고작 안전 고깔 몇 개가 세워져 있던 게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기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차단기만 위아래로 오르내릴 뿐이었다. 기차가 매일 오가며 뿜어내는 거대한 진동이 노후화된 고가도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닌 주민들의 눈에도 뻔히 보였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우려는 끝내 참사로 이어졌다. 당국에 따르면 사고 당시 현장에는 총 13명이 있었으며, 이 중 7명은 무사히 대피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6명 가운데 60대 현장관리소장과 60대 감리단장, 50대 외부 전문가 등 3명이 숨졌다. 나머지 3명 중 1명은 중상, 2명은 경상을 입었다. 현장에는 인력 62명과 장비 16대가 긴급 투입됐으며,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인명 구조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사고의 여파는 도심 교통망 마비로 이어졌다. 고가도로 잔해가 선로를 덮치면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서울역~신촌역 구간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서대문구 역시 안전안내문자를 통해 서대문역에서 경찰청 앞 구간의 도로를 통제하고 우회를 당부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26일 오후 2시32분쯤 붕괴 사고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모습 ⓒ연합뉴스

1966년 건설된 서소문고가도로는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과 시청역을 잇는 길이 335m의 핵심 교통망으로 하루 4만대 이상의 차량이 통행했다. 그러나 2019년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안전성 미달) 판정을 받은 데 이어, 2021년 바닥 판 탈락과 2024년 보 콘크리트 탈락 등 부식과 파손이 잇따랐다. 서울시는 단순 보수로는 안전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해 9월20일 전면 철거에 돌입했지만, 결국 마지막 단계를 넘지 못하고 참사를 빚었다.

"평소에는 나 몰라라 하다가 막상 사고가 터지니 그제야 (정치인들이) 달려옵니다. 이렇게 안일할 수가 있습니까. 선거 표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58년 된 철골조가 선로를 덮친 아수라장 위로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쉴 새 없이 울렸다. 수개월 전부터 붕괴 위험을 호소했던 주민들의 다급한 경고는 결국 매캐한 흙먼지 속,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아래 묻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