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교황의 ‘AI 무장해제론’

회칙은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세계 인류에게 보내는 공식 사목 교서다. ‘순환하는 서한’이란 의미의 회칙은 격변기마다 시대를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권고, 담화, 강론 등 교황이 발표하는 문서 중 회칙이 가장 권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황의 회칙이 시대를 이끈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빈부격차와 부의 편중이 심각했던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은 회칙 ‘새로운 사태’를 통해 자본의 탐욕을 꾸짖고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했다. 국내에서 ‘노동헌장’으로 알려졌고, 서구 국가들의 노동법 제정의 사상적 배경이었던 ‘새로운 사태’는 가톨릭교회의 첫 사회 회칙으로 유명하다.
냉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63년, 요한 23세 교황은 ‘지상의 평화’에서 핵무기 감축과 대화를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2021년 ‘찬미받으소서’에서 지구를 ‘공동의 집’이라 부르며 기후위기에 직면한 인류에게 묵직한 경고를 던졌다. 회칙이 다룬 주제는 각기 다르지만, 관통하는 핵심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지난해 즉위한 레오 14세 교황이 처음으로 발표한 회칙은 ‘마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위대한 인간성):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 보호에 관하여’다. 레오 14세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이 회칙에서 “신기술과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허위 정보가 양극화와 반감을 증폭시킨다”며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도록 제어해야 한다는 ‘AI 무장해제론’을 설파했다.
레오 14세는 보이지 않는 노동력 착취에 기반한 디지털 경제를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로 규정했다. 빅테크의 폭주가 인간의 집단지성과 사유를 약탈하고, 노동 소외와 실업을 부추긴다는 진단이다. 다만 이것이 기술의 발전을 멈추자는 맹목적 거부가 아니라고 바티칸은 강조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AI”가 ‘마니피카 후마니타스’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AI를 인류의 공유 자산으로 전환해 인간을 섬기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기술의 시대를 만들자는 레오 14세의 메시지에 우리는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 기술 권력으로부터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겠다는 선언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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