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세 차례 고개 숙였지만···‘뭘 사과하는지’는 빠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에 대해 육성으로 사과했다. 논란이 벌어진 지 8일 만이다. 사과문 발표와 대표 경질에도 여론이 악화하고, 정쟁의 대상으로까지 사태가 확산하자 직접 나서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 회장의 공개 사과에 대해서도 ‘무엇에 대해 사과한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고, 재발방지책이 담겨있지 않은 ‘알맹이 빠진 사과’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신세계그룹은 내부 의사결정 체계의 문제는 인정했지만, 의도를 가지고 행사를 기획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 3층 그레이트홀에 입장한 정 회장은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 무겁고 죄송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입을 뗐다. 정 회장은 “이번 일로 깊은 상처와 실망을 느끼신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 시민, 그리고 국민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 드리며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은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 제 잘못”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사과 시작 전, 중간, 종료 후 등 세 차례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정 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건 2024년 3월 회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정 회장은 논란 이후 일부 시민이 스타벅스 매장 직원에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책임은 조직과 저를 포함한 경영진에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정 회장은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며 “다시 한번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스타벅스코리아의 매출 타격이 커지자 정 회장이 직접 등판했지만, 비판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우선 정 회장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 부사장은 이날 정 회장이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고 한 말의 의미에 대해 “그룹 회장으로서 이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재발방지 대책이라든가, 그룹 전체 직원들의 역사의식 수준 제고라든가, 경찰 수사결과 나오는 것까지 모든 부분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로 폄훼 당한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지에 대한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전 부사장은 정 회장이 5·18 관련 단체를 찾아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적절한 시점에 광주 현장 방문 등에 대해 공개적인 의사표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곽도성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왜 사과하는지가 아예 없는 보여주기식 사과”라며 “민주화운동 관련 반성적인 사회공헌 활동 계획도 전혀 논의가 안 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재발방지책도 아직 부족하다. 신세계그룹 측은 “내부조사 결과를 신속하게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며 “차례차례 재발방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수완 신세계그룹 대외협력본부장 부사장은 조직문화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이번 행사를 기획한 스타벅스코리아) 마케팅팀 직원들 연령을 보면 20대 초반이 2명, 30대 후반이 3명이다. 그들이 갖는 역사의식이 회사나 사회가 느끼는 역사인식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태도”라며 “기업의 역사 인식과 사회적 책임은 최고경영진과 이사회가 책임져야 할 경영의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확산시키는 데 원인이 된 정 회장 본인의 과거 언행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전 부사장은 이날 조사결과 발표가 ‘꼬리자르기’ 아니냐는 질문에 “회장님의 과거 발언은 이번 스타벅스의 부적절한 프로모션과는 관계가 없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고 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다음달 1일부터 14일까지 한시적으로 선불충전금을 조건 없이 환불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스타벅스는 현재는 이용약관에 따라 최종 충전 잔액의 60% 이상을 사용해야 잔액을 환불해 왔다. 하지만 ‘5·18 탱크데이’ 행사 이후 충전금 환불 요구가 빗발치자 이 같은 대책을 내놨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무거운 책임감과 자숙의 마음을 갖고 최근 환불을 요청하는 고객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기준을 완화해 운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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