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따지지 않고 “AI 데이터센터·반도체 공장 유치하겠다”…정치 불신 키운다 [③AI와 6·3지방선거]
6·3 지방선거에서 인공지능(AI)이 화두로 등장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포털과 댓글이,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유튜브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AI다. 이미 해외에서는 일본의 신생 정당 ‘팀미라이’의 사례처럼 AI가 선거판에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만 AI가 정치 지형을 바꿀 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가짜뉴스·딥페이크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3회에 걸쳐 AI 고도화가 선거와 정치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대구를 인공지능(AI)·로봇 수도로”(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경북을 아시아태평양 AI 수도로”(이철우 국민의힘 경북지사 후보) “전남광주를 AI·데이터·에너지 산업수도로”(이정현 국민의힘 전남광주시장 후보) “새만금을 피지컬AI 산업수도로”(무소속 김관영 전북지사 후보) “AI 수도 충남”(박수현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 “AI 수도 울산”(김두겸 국민의힘 울산시장 후보)
6·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이 모두 실현된다면, 전국에 ‘AI 수도’를 표방하는 지역이 6곳에 달하게 된다.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14개 광역 시·도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 반도체 공장도 경기·인천·세종·충남·대구·경북·전남광주·전북 등에 우후죽순 건립된다. 전 국토가 AI 산업기지가 되는 셈이다.
26일 민주당·국민의힘 후보를 중심으로 전국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주요 공약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후보 SNS 등에서 살펴봤다. 공약으로만 보면 이번 지방선거는 AI 산업 유치전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단독 추진이 어려운 사안을 구체적 실행 계획도 없이 장밋빛 공약으로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국민의힘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5대 공약을 보면, 전체 후보 32명 가운데 AI 공약을 포함하지 않은 후보는 5명뿐이었다. 이들 5명 후보는 별도의 기자회견 등에서 AI 산업 육성과 같은 공약을 발표했다. 사실상 모든 후보가 AI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비수도권 후보들은 AI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만능열쇠’로 내세우고 있다. AI 상용화로 반도체·휴머노이드 로봇 등 연관 산업이 성장하자 관련 기업체를 유치해 지역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식이다. 격전지로 꼽히는 대구에서는 기업명까지 경쟁적으로 거론된다.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는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 팹(제조 공장), 테슬라 아시아 제2공장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과 투자·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AI 산업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방산 특화 AI 데이터센터”(김경수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 “초대형 GPU(그래픽처리장치) 데이터센터”(허태정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국가 AI 데이터센터”(위성곤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등 표현도 다양하다. 우상호 민주당 강원지사 후보는 기업명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이 “강릉 일대에 (국내 대기업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유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AI를 시민 복지, 권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흐름이 엿보였다. 서울의 양당 후보가 내세운 ‘시민 대상 AI 기초교육’(정 후보) ‘청년 50만 명에게 챗GPT 등 생성형 AI 이용권 지급’(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이 대표적이다. ‘AI 신호 개편으로 출퇴근 시간 30분 단축’(김정철 개혁신당 서울시장 후보) 등 생활 밀착형 공약에도 AI 기술이 접목됐다.
후보들이 구체적 이행 방안 없이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의 경우 막대한 전력과 물을 사용하는 만큼 관련 인프라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 문제에 대부분 후보들은 구체적 실행 계획 없이 ‘우리 지역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부겸·추경호 후보는 “대구에 용수, 전력은 충분하다”고 했고, 이정현 후보는 “전남광주는 풍력·태양광 등 에너지 기반과 넓은 산업부지·바다 등을 함께 갖춘 지역”이라고 했다.
AI 산업 유치는 예산 지원과 규제 완화, 세제 혜택 등 중앙정부 차원의 산업정책과 맞물려 추진돼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기업체와의 협의도 필수적이다.
당 차원에서 공약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동일한 공약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중복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박찬대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 전재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는 유엔 AI 허브를 각각 서울 용산, 인천 송도,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선미 참여연대 기획팀장은 “AI 산업이 세계적으로 열풍이다 보니 전국의 후보들이 지역의 핵심 동력으로 여기며 물이나 전력 확보 등에 대한 언급은 없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며 “특히 데이터센터의 경우 유지·관리·설비 인력 외에 지역에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닌 데다 오히려 소음이나 전자파 등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이러한 우려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관 기자 b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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