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미래를 묻다…서울문화재단, 9∼12월 '연극의 질문들'

임순현 2026. 5. 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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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원로 연출 5명 참여…심리음악극부터 형식 파괴 연극까지
'92세' 김우옥 연출 "50년 전 작품, 아직도 유효한지 관객과 실험"
'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기자간담회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해가는 '초기술 시대', 가장 인간적인 예술로 꼽히는 연극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가 오는 9월 8일부터 12월 27일까지 '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연극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연극의 본질인 '텍스트'에 주목하며,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는 한국 연극의 힘을 통해 동시대 연극의 현실과 미래를 탐색하는 자리다.

김아라(70), 김광보(62), 김우옥(92), 이성열(64), 한태숙(76) 등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연출가 5인이 각자의 독창적 미학과 통찰로 고전과 현대의 텍스트를 오늘의 무대언어로 재구성한다. 관객은 이들의 무대를 통해 연극의 본질과 확장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9월 8∼13일 쿼드 무대에 오르는 김아라 연출의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음악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필사적이면서도 부질없는 몸부림을 음악과 언어, 소리의 융합으로 풀어낸다.

2000년대 초부터 실험적 연극과 음악극을 주로 선보여온 김 연출은 블랙박스 극장의 공간적 특성을 살려 소리와 빛, 배우의 움직임이 어우러진 실험적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 연출은 26일 쿼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의) 대사를 읽을 때마다 인간의 본능과 심리가 결국은 끊임없는 전쟁·희생·정복·학살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파멸로 향해 가는 인간의 극단적인 심리를 음악화·소리화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기자간담회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9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는 김광보 연출의 '옥상 밭 고추는 왜'가 상연된다. '무대화된 일상의 텍스트는 어떻게 우리 사회의 단절을 비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오래된 빌라 옥상에 심은 고추를 둘러싼 이웃들의 갈등을 통해 개인의 도덕과 사회적 윤리가 어떻게 충돌하고 무너지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연출을 맡은 김광보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사회적 이슈와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작품은 2017년 세종문화회관 초연 이후 재구성된 버전으로, 일상적 소재로 동시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김 연출은 "사회적 합의와 개인의 신념의 충돌을 다루면서, 정의를 부르짖는 개인의 독선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작품"이라며 "고추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라는 일상적 소재로 정의와 위선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고 소개했다.

'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기자간담회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0월 28일부터 11월 8일까지는 '혁명의 춤'이 관객을 만난다. 1976년 뉴욕에서 초연된 실험극으로, 전통적 서사 중심의 형식에서 벗어난 8개의 독립된 장면으로 구성된다. 각 장면은 혁명의 파편적 순간들을 조명하면서 반복되는 대사와 소리, 오브제와 빛, 배우의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작품 연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대 원장을 지낸 김우옥 연출이 맡는다.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약해온 김 연출은 실험적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며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예정이다.

김 연출은 "50년 전 작품을 지금 다시 들고나온 가장 큰 이유는 '그때 살아있었던 연극이 지금도 살아있는가'를 관객들과 실험해 보기 위해서"라며 "혁명과 관련된 8개 장면은 전쟁 중인 우리 세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성열 연출의 '화염'은 11월 14일부터 12월 6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연극은 인간의 비극을 어떻게 기록하고 증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국립극단,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이 연출은 동시대적 시선으로 인간 존재의 비극과 그 기록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할 예정이다.

이 연출은 "증오와 혐오가 어떻게 타인을 죽음으로까지 끌고 가고, 그것이 어떻게 후대에 이어져 가는가를 추적하는 작품"이라며 "이 작품을 통해서 증오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수 있는지 다 같이 한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기자간담회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미를 장식할 한태숙 연출의 '서안화차'는 12월 16∼27일 관객을 만난다. '연극은 인간 내면의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집착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동성 친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주인공 상곤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집착과 소유욕, 근원적인 불안과 구원을 탐구한다.

2003년 초연 이후 여러 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된 작품으로, 한태숙 특유의 비극적 미학과 밀도 높은 무대 연출을 선보인다.

한 연출은 "한 인간이 결코 갖지 못하는 인간을 갖고 싶어서 했을 때의 절망감과 그 외 모든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으로 만든 작품"이라며 "현대인들이 같은 성별에서 가지는 편안함과 동료 의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열리는 대학로극장 쿼드는 2022년 개관한 블랙박스 극장으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예술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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