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스타벅스와 5.18 전야제···혐오놀이터 된 광주

극과 극은 통한다.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표현하는 유명한 격언이다. 비슷하게 서양 철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극단적인 정의는 실제로는 부정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옮음에 매몰된 나머지 합리성과 보편성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누구보다 극렬하게 독재와 권위에 싸우던 이들이 전향하고 나서는 그 누구보다도 반(反)민주적인 파시스트가 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이와 비슷한 속된 표현으로는 ‘빠가 까를 만든다’가 있다. 강요할수록 반발심을 만들어내는 걸 의미한다.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라는 극단주의의 한 단면이다.
2026년 5월 18일 대한민국, 더 좁게는 광주라는 도시에서 이 같은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나는 ‘스타벅스’의 5·18민주화운동 비하, 또 하나는 5·18전야제에서 발생한 혐오다. 방식은 다르지만 매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몰보편적 인식을 토대로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공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에서다.
5·18민주화운동은 독재와 권위에 맞선 민중항쟁이고 국가폭력에 다수의 무고한 이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이미 평가가 끝난 사안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정치 진영 간 ‘상징 투쟁’의 희생양이 돼 왔다. 1980년 이후 줄곧 보수 진영에서 ‘광주학살’이라는 원죄를 끊어내지 못하면서 이른바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해 왔고, 그 사이 진보 진영에서는 5·18을 정신적 토대이자 성역화를 진행해 오면서다.
올해 5월 18일 일어난 두 가지 사안 모두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연속된 상징 투쟁인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도 극단화된 이들은 5·18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반보편성을 띤 그들의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길 두려워한다. 익명화된 온라인을 중심으로 5·18을 향한 왜곡과 폄훼는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없기에 선택한 것이 이른바 ‘상징 놀이’다. 자기들끼리 아는 표현으로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인정 투쟁)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은 극우들의 상징 놀이이자 인정 투쟁이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이다. 갈수록 파묘되며 드러나고 있는 과거 스타벅스의 4·16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극우들의 놀이에 영양분을 계속 공급한 것은 광주를 중심으로 한 일부 단체와 인사들이다. 5·18은 광주만의 것도, 특정 진영의 것도 아니다. 5·18이 광주와 전남·전북을 넘어 대한민국과 전세계에서 ‘숭고함’을 인정 받고 대표적인 ‘시민 저항 운동’으로 각인된 데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노력과 투쟁이 있었다. 그렇기에 5·18을 기리는 데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광주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간 5·18를 참배하려는 이들을 정치적 노선의 반대에 있다는 이유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아온 행위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 5·18전야제에서 일어난 만큼 참담하지는 않았다. 백금렬과 촛불밴드는 액맥이 타령에 맞춰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준석이로 드는 액은 매불쇼가 막아내고’, ‘조중동으로 드는 액은 뉴스공장이 막아내고’ 등의 가사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그간 보수정당에서는 5·18 포용에 가장 앞장서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건은 둘째로 하자. 5·18전야제는 광주의 각계각층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비록 지자체에서 비용을 지불하지만 시민사회가 주축이 돼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렇기에 풍자와 해학은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 오히려 권력이 민중이 권력을 향해 내지르는 것은 건강한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은 결코 풍자도, 해학도 아니다. 본인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5·18을 판 거고, 5·18을 고립시키는 자해다. 5·18전야제에서 이 같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23년에는 당시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전야제에 참석했을 때 사회자가 앞에 앉을 자격이 없다며 뒤로 내쫓으려고 했다. 아무리 보수정권의 최고위 인사라곤 해도 5·18과 함께 하기 위해 먼 길을 온 사람이다. 그 전 해인 2022년에도 사회자가 윤석열을 ‘서울을 활보하는 멧돼지’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결국 계속 반복된 것은 성찰하지 않아서다.
5·18전야제는 진보와 보수, 정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다. 누구도 배제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5·18은 배움의 장소이다. 5·18을 모르는 이들도, 부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 이들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5·18을 체화하고 더 나아가 5·18 정신을 알리는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지역 사회에서는 성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조용하다. 주최 측인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말할 것도 없다. 스타벅스의 논란에는 ‘내가 광주다’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 내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먼저 반성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5·18을 모욕하는 이들을 향해 떳떳하게 반성과 사과를 요구할 수 있겠나. 성찰하지 않으면 광주는 극단주의자들의 ‘혐오놀이터’가 될 뿐이다.
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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