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실패한 사과'…'국민 분노' 이유도 파악 못했다
결과에 대한 사과일 뿐 원인에 대한 사과는 못돼
문제의 책임자이면서 자신을 제3자로 여기는 듯
무엇보다 먼저 이해할 건 그 자신에 대해서부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깊이 고개를 숙이면서 짧은 사과문 속에서 몇 번이고 사죄한다고 했으며, 언론도 이를 '사과'로 불러주면 사과가 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날 몇 분간 준비된 사과문을 낭독하고 퇴장한 정 회장의 사과의 형식과 내용이 과연 사과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정도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적잖게 의문이 든다.
일단 이를 사과라고 해 보자. 그러나 이 사과는 어느 하나에 대한 사과이면서 동시에 다른 것들에 대한 사과의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사고의 결과에 대해 사과한 것일 순 있어도 사고의 원인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긴 힘들다. 무언가 사과한 것 속에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사과를 하면서 동시에 사과하지 않겠다는 것을 동시에 얘기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과를 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애초에 사과를 할 만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실상이 엿보였다.
정 회장의 이날 사과에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은 결국 이번 사고의 핵심이며 문제의 근원인 당사자 자신이 이날 사과를 '지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날 사과 기자회견의 기획에서부터 실행까지 그가 최종 지휘하에, 최소한 그의 최종 승인하에 모든 것이 진행됐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날의 사과에서 '제3자'였다. 그는 짧은 사과문을 읽고는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준비된 사과문을 읽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국민을 대신한 언론으로부터의 질문과 추궁을 받아낼 준비는 안돼 있는 듯했다.
그는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했지만 그러나 문제는 정작 그 책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건 그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많은 분들이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끼셨다는 사실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이라고 했지만 그가 국민들의 분노의 이유를 제대로 살피려 했는가 의문이다. 이 말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국민들의 분노에 대해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쉽게 수긍하기 힘든 이 사태에 대한 항변의 심정이 엿보인다.
정 회장은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며 "더 좋은 대한민국과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남기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 말이야말로 정 회장이 이날 사과라는 형식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듯하다.

그가 쓴 '이해'라는 말을 빌어보자면 그가 무엇보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사실은 그 자신에 대한 이해, 그 자신의 사고와 언행에 대한 이해였다. 멸공과 반공, 종북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분법으로 구성된 극우적 인식의 틀이 이번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자신의 그같은 사고와 언행이 그룹의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굳혀 놓았는지에 대한 이해였다. 세월호 추모 문구를 조롱하고 '멸공'을 해시태그로 내걸며 극우 개신교 단체의 행사에 축사를 하는 등 수년간 자신의 극우적 세계관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듯 보여준 것이 조직 내부에서 어떤 메시지로 전파되고 하달됐을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어야 했다. 최소한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선 결국 단 한마디의 말도 들을 수는 없었다.
그가 '현장 직원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의 자제를 호소하면서 "전국 매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직장인들"이라고 했듯이 자신에 대해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그것이야말로 그 자신이 보여줬어야 할 '성실성'이었다. 5·18에 '탱크데이'를 내건 실무자들이 성실한 직장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 '오너'의 세계관이 만든 문화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식하는 감각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됐는지에 대해 그 자신에게 물어보는 성실성이었다.
정 회장은 "조사 결과 발표가 늦어진 것은 경위를 철저히 파악하고 사실관계를 상세히 설명드리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했지만 이날 기자회견이 보여준 것은 사고의 경위에 대한 철저한 파악과는 거리가 있었다. 앞으로 더 상세한 조사가 있을 것이며 더 자세한 사고 경위가 설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 사실관계가 확인되고 그에 따라 몇 사람의 문책이 있을 것은 예상되지만 사고의 경위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을 살피려는 성실성이 없는 한, 아무리 철저한 사고 경위의 조사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을 이날의 기자회견은 보여줬다.
정 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사회적 책임 기준을 더욱 높이고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고 했다. 정 회장과 신세계는 이날의 기자회견을 전면 재정비의 시작으로 삼으려 한 듯 보인다. 많은 언론들도 그렇게 평가한 듯하다. 그러나 사과의 실패라기보다 사과 능력의 결핍, 반성의 무능을 보여준 이 사과는 그 '시작'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상업광고를 받지 않는
독립언론입니다.
시민들의 작은 후원이 언론 지형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후원 참여하기]

- '스벅 불매' 전 부처 확산…국힘은 거꾸로 "보수 아지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 불매운동이 전체주의라는 비판, 그 자체가 야만이다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 '탱크데이'가 불붙인 국가 폭력, 극우 망동 "강력 처벌"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 정용진이 키운 '탱크 참사'… 언론이 키워준 '정용진 탱크'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 '탱크 데이 참사' 재벌총수 격노가 부르는 국민의 격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 정용진 사과에…5·18단체 "진정성 없는 사과 필요 없다"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