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또 사라진 리플 사기 사이트 ‘wXRP’…이번엔 35명이 22억원 털렸다
FXRP 사건과 ‘사실상 동일한 수법’…조직적 자금 세탁 정황도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리플(XRP) 스테이킹 사기 사이트 'wxrpnetwork.com'의 피해자 10명이 지난 19일 서울경찰청에 단체 고소장을 제출했다. 시사저널이 앞서 두 차례 보도에서 제기한 '동일 조직의 추가 범행' 가능성과 맞닿은 사건이다.
대표 고소인 하아무개씨 등 10명은 성명불상의 'wxrpnetwork.com' 운영자들을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장에 적시된 피해 리플은 20만4835개, 18일 종가 기준 시가는 약 4억2325만원이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추가로 확인된 전국의 피해자는 35명 이상이며, 전체 피해 추정액은 22억원이 넘는다.
이번 고소는 시사저널이 지난해 11월18일부터 보도한 'FXRP→wXRP 사건'의 세 번째 국면이다. 2025년 10월, 가짜 스테이킹 사이트 'FXRP 네트워크'는 약 75억원어치 리플 170만여개를 끌어모은 뒤 10월24일경 돌연 폐쇄됐다(관련 기사 「"허위 리플 스테이킹으로 편취"…서울경찰청, '75억 코인 사기 사건' 수사 착수」). 그로부터 5개월 뒤인 지난 3월25일, 위종욱 법무법인 대륙아주 파트너변호사는 디자인과 홍보 수법이 FXRP와 동일한 'wxrpnetwork.com'을 발견하고 추가 의견서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제출했다(관련 기사 「사라졌던 코인 사기 사이트 'FXRP', 'wXRP'로 돌아왔다…이름만 바꿔 투자자 다시 노려」). 당시 의견서에는 "광고 개시 약 2~3주 후를 기준으로 사이트를 닫고 자금을 들고 잠적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전망은 대체로 들어맞았다. 'wxrpnetwork.com'은 지난 11일경부터 접속이 끊겼고, 이와 거의 동시에 홍보용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게시물도 차례로 삭제됐다. 운영진과의 연락은 두절된 상태다.
수법은 FXRP 사건과 사실상 동일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유튜브·블로그를 통한 광고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본뜬 영상 △인터넷 매체를 가장한 허위 기사를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영상에서는 '연 15~18%' 또는 '월 1.5~1.8%' 수준의 이자를 약속했고,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와 협업한 공식 스테이킹 서비스"라는 거짓 설명이 반복됐다. 한 피해자는 진술서에서 "영상 속 인물이 유명 유튜버와 외모·목소리가 매우 유사해 사기를 의심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딥페이크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기망의 핵심은 처음 며칠 동안 실제로 이자가 지급됐다는 점이다. 한 피해자는 4월20일 새벽 바이낸스 지갑을 통해 1만836개의 리플을 입금한 뒤, 매일 약 6개씩 이자가 적립되는 화면과 함께 국제발신 문자로 입금 안내까지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피해자도 4월27일부터 5월8일까지 11일 동안 매일 약 15개의 리플을 이자 명목으로 받은 사실이 입금 내역상 확인된다. 소액 이자 지급은 추가 입금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홍보 문구와 실제 약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사이트와 유튜브 영상에서는 "7일 이내 언스테이킹(예치 해제) 가능"이라는 문구가 반복됐지만, 정작 입금 이후 화면에 표시된 약관에는 "최초 스테이킹 후 60일이 지나야 해제 신청이 가능하고, 신청 이후 다시 7일이 지나야 출금된다"는 조항이 등장했다. 자금 회수까지 최소 67일이 걸리는 구조다. 사이트는 그 67일이 도래하기 전에 문을 닫았다.
'연 15% 이상' 이자?…"가짜일 수 있다"는 의심 필요
피해자들이 추적한 자금 이동 경로는 범행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취재진이 확보한 자금 흐름 분석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가 보낸 리플은 △사기 사이트 입금용 지갑 △중간 집금 지갑 △대형 거래소(바이낸스·바이비트·HitBTC 등) 핫월렛으로 이어지는 4단계 구조를 거쳤다. 입금용 지갑은 2~3일에 한 번씩 새 주소로 교체됐고, 자료에 정리된 것만 61개에 이른다. 4월22일을 기점으로는 중간 집금 지갑의 출금 경로 자체가 한 차례 통째로 바뀌었다. 추적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적 교체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조직적 자금 세탁의 정황도 확인된다. 입금용 지갑 상당수는 같은 바이낸스 계좌를 통해 활성화됐고, 출금에 사용된 데스티네이션 태그(DT·거래소 내 수취 주소를 식별하는 번호)도 반복적으로 일치했다. 자금이 이동하는 길목마다 유니언체인(Union Chain) 같은 비주류 네트워크가 등장한다는 점 역시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꼽힌다.
이번 단체 고소가 비교적 빠르게 성사된 데에는 'FXRP 보도'의 영향이 작지 않았다. 다수의 피해자는 진술서에서 "시사저널의 FXRP 사기 기사를 접한 뒤 동일한 수법임을 깨닫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한 피해자는 입금 직후 사이트가 비정상 작동하는 것을 보고 검색을 통해 시사저널 보도를 발견했고, 이후 카카오톡 단체방을 찾아 다른 피해자들과 연결됐다고 진술했다.
관건은 'wXRP 다음'을 막을 수 있느냐다. FXRP와 wXRP가 거의 같은 디자인을 두 차례 재활용한 점, 동일한 자금세탁 경로가 4월22일을 기점으로 한 차례 갈아탄 점은 같은 조직이 또 다른 이름의 사이트를 띄울 여지를 시사한다. FXRP와 wXRP가 똑같이 내건 미끼는 '리플 스테이킹'이었다.
리플 스테이킹은 본래 '리플 보유자가 코인을 일정 기간 맡기고 이자를 받는' 형태의 상품을 가리킨다. 그러나 리플(XRP)은 구조상 정통적 의미의 스테이킹이 성립하지 않는 코인으로 평가된다. '연 15% 이상 이자', '바이낸스 공식 협업', '얼굴 없는 AI 홍보 영상' 가운데 한 가지라도 결합돼 있다면, 일단 가짜 사이트일 가능성부터 의심하는 편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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