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부터 덮치는 생성형 AI의 그늘… ‘주니어→숙련’ 경력형성 경로 약화 우려

이희경 2026. 5. 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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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김모(44)씨는 생성형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현장 업무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서비스에 접목시키는 업무가 많아지면서 지금 당장은 필요 인력이 줄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굳이 신입을 뽑지 않더라도 많은 부분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는 서비스 아이디어가 있으면 여러 사람이 디자인, 개발 회의 등을 한 뒤 테스트를 하는 순서로 일이 진행됐다”면서 “지금은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기획자 혼자 AI를 활용해 이 모든 업무를 한 뒤 테스트까지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비나 실수에 따른 교정 비용 등을 감안하면 세무·회계 분야의 경우 신입 채용이 거의 AI로 대체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사무·서무직, 정보기술(IT)·기술직 순으로 AI 노출 수준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직무 자체가 사라진다기보다는 추론 등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AI 특성에 맞춰 과업 구조가 재배치될 것이란 예측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문서작성 등 그간 신입·주니어 인력의 핵심 과업을 AI가 빠르게 대체·보완할 것으로 전망돼 ‘주니어→숙련’으로 이어지는 경력 형성 경로는 약화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사무·서무직, 정보기술(IT)·기술직 순으로 AI 노출 수준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26일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표한 ‘인구·고용동향&이슈’에 실린 ‘AI 기술발전과 노동’ 보고서를 보면 AI 노출도 지수는 100점 만점에 사무·서무직이 82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 직종에서는 문서작성·요약·번역이 대표적으로 영향을 받는 과업으로 분석됐다. 이어 IT·기술직의 노출도가 75점으로 뒤를 이었는데 코드 작성·디버깅(컴퓨터 프로그램 등 오류 찾기)·테스트 과업이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비즈니스·전문직·관리자(68점)의 경우 보고서 작성·자료 분석이, 과학·공학 전문직(60점)은 연구·실험 데이터 분석에서 AI 노출이 클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생산·기능직은 22점으로 AI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지수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지능과 한국의 노동시장’에 나온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

디지털화가 진전된 직무에서 AI 노출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AI 발전 양상과 관계가 깊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화 등에 특화됐던 AI 기술은 2022년 챗GPT 도입과 함께 본격적인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다. 텍스트 등 다양한 결과물을 직접 생성하는 특성을 지닌 생성형 AI는 현재 범용 수준으로 기업 업무에 통합되고 있다. 가령 SK이노베이션은 애저 오픈AI 기반 생성형 AI 플랫폼을 정유, 석유화학 업무에 적용해 엔지니어링 자료 검색, 분석, 데이터 처리를 효율화하고 있다.

2023~2024년에는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 영상 등 서로 다른 유형의 데이터를 하나의 모델이 동시에 이해·처리하는 ‘멀티모달 AI’가 도입되며 회의 지원, 화면·영상 분석 등 복합 업무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AI를 넘어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시스템인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업무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출장 일정 수립을 예로 들면 기존의 AI는 단순히 일정 추천에 그쳤다면, AI 에이전트는 항공권 검색·호텔 예약·일정표 등록까지 일련의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식이다.

보고서는 AI 도입으로 육체노동보다 화이트칼라 직종의 중간숙련 이상 인지 노동을 중심으로 재설계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생성형 AI는 문서작성, 자료조사, 번역, 요약, 기초코딩 등 신입·주니어 인력의 핵심 과업을 빠르게 대체·보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직업의 급격한 소멸보다는 입문 단계 업무와 자동화 대상 과업 간 재구성이 우선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주니어에서 숙련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경력 형성 경로의 약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 수는 올해 3월 6만1000명 감소한 데 이어 지난달 11만5000명 줄며 감소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보고서는 AI 도입이 고용 총량을 감소시킨다는 근거는 제한적이라면서도 현재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AI 에이전트 활용이 본격화하면 고용 변화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현재 ‘AI 활용’에 집중돼 있는 재교육 체계를 ‘직무 전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가령 사무직은 문서 검증, 프롬프트 설계를, 전문직은 AI 산출물 검수 및 책임판단 역량 강화 등에 대한 교육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정혜 서울대 교수(공대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는 “에이전트형 AI는 아직 초기 단계로 과도한 낙관·비관을 경계하고 채용 구조, 직무 설계, 재교육, 노사협의 체계 선제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기술역량과 함께 창의성, 회복탄력성, 협업 등의 역량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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