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을 위한 국립호텔 스위트룸?

이한 기자 2026. 5. 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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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었던 지난 22일, 충청남도 서천 국립생태원 부지에 색다른 호텔이 들어섰다. 투숙객은 사람이 아니다. 벌, 나비, 딱정벌레, 풀잠자리 등 작은 곤충들이 손님이다. 이곳의 이름은 곤충호텔. 인간 방문객이 로비에서 체크인하는 대신, 곤충들이 좁은 대롱과 구멍 사이를 파고들며 보금자리를 찾는 곳이다.
벌과 나비가 보금자리를 찾는 '곤충호텔'이 국립생태원에 들어섰다. (사진 러쉬코리아)/뉴스펭귄

이 호텔을 세운 건 국립생태원과 러쉬코리아다. 두 기관은 생물다양성 보전 및 생태가치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협약 당일 현장에 곤충호텔 1호점을 정식 설치했다.

버려진 공병으로 만든 곤충의 보금자리 

곤충호텔 건축(?) 자재는 고객들이 직접 매장에 반납한 러쉬의 폐플라스틱 공병 '블랙 팟(275g)'이다. 이 브랜드는 'BIB(Bring It Back)'라는 자원순환 캠페인을 운영 중이다. 고객이 매장에 공병 5개를 가져오면 제품으로 교환해주거나 멤버십 보증금을 적립해주는 제도다. 이를 통해 매년 약 20% 내외의 공병이 회수되고 있다. 

이렇게 모인 공병이 곤충호텔 핵심 재료로 쓰였다. 폐플라스틱을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대신 곤충 서식 구조물로 재활용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생태적 가치를 창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버려질 수 있는 제품이 생태 서식지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자원순환과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두 가지 환경 가치를 동시에 실현한 사례다.

국립생태원과 러쉬는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에게 블랙 팟을 재활용해 만든 식재화분 300개도 나눠줬다. 방문객들이 일상에서 직접 식물을 가꾸며 생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는 "고객들이 지구를 위해 모아주신 '블랙 팟'이 생태원에서 곤충들의 쉼터와 화분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자원순환의 진정한 가치를 느낀다"고 밝혔다.

자연·재활용 소재로 세워지는 곤충호텔

곤충을 위한 호텔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생태학자와 환경운동가 사이에서는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개념이다. 속이 빈 갈대, 나뭇가지, 원통형 파이프, 건초, 나뭇잎 등 다양한 자연 소재나 재활용 소재로 만든 구조물을 설치해 곤충이 서식하거나 월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인공 서식지다.

이는 급격한 도시화와 농업 개발로 곤충들이 알을 낳고 쉬어갈 공간이 급감하면서 고안된 대안이다. 도심에서는 죽거나 상처 난 나무, 맨 흙바닥처럼 곤충이 선호하는 환경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개발사업이 이어지고 주민 민원 등을 통해 '정비'라는 이름으로 치워지는 사례가 많아서다. 곤충호텔은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 중 하나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국립세종수목원은 2021년 '꽃가루매개자 정원'에 나무 등 친환경 소재로 만든 곤충호텔을 조성했다. 이 장소 역시 꿀벌이나 나비 등이 비와 바람을 피해 쉬거나 겨울을 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2020년 9월 곤충호텔을 개관하고 야생벌이 선호하는 종이와 나뭇잎을 채운 공간, 날개 없는 곤충을 위한 원통형 파이프와 건초로 꾸민 객실 등을 만들었다.
고객들이 직접 반납한 폐플라스틱 공병을 재활용해 만든 곤충호텔 내부 모습. (사진 러쉬코리아)/뉴스펭귄

"벌 사라지면 밥상 무너져"...잇따르는 해외 곤충호텔 

곤충호텔이 주목받는 배경엔 꿀벌을 비롯한 수분매개 곤충의 급격한 감소가 있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를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된다. 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식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위기는 경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도한 살충제 사용, 기후위기, 서식지 파괴 등으로 전 세계 꿀벌 개체 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멸종 흐름도 위기를 가속화한다.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가 2019년 발표한 지구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동식물의 25%가 이미 멸종위기에 처해 있으며, 빠른 조치가 없으면 수십 년 내 100만 종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외에서는 곤충호텔이 정책 수준으로 자리잡은 사례가 적지 않다. 네덜란드는 2018년 일부 도시를 중심으로 '벌 호텔'과 '벌 정류장' 보급을 시작했다. 벌 호텔은 얇은 대나무 묶음으로 만들어 벌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구멍을 제공하는 구조물이고, 벌 정류장은 지붕을 토착 식물로 덮은 버스 정류장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여러 개의 꿀벌 호텔을 추가로 건립하고, 고속도로·철도·수로 주변에 야생화를 심는 '꿀벌 도로'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엠폴리시에서도 2022년 공원 내 꿀벌 호텔이 문을 열었다. 비영리단체가 제작한 18채의 꿀벌 호텔이 도시 각지에 설치됐으며, 뿔가위벌, 가위벌, 뒤영벌 등이 주요 '투숙객'으로 활동했다. 당시 해당 지자체 부시장은 "꿀벌 호텔은 꿀벌을 돕고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방법이자, 시민들이 매우 중요한 수분매개자인 꿀벌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2024년에는 미국 뉴욕시가 지구의 날 주간을 맞아 도심 공공광장 7곳에 '벌 호텔과 벙커'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위험에 처한 토종 벌들의 생존을 돕기 위한 도시 차원의 정책적 결단이었다. 

한편, 국립생태원과 러쉬코리아는 이번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22일부터 전국 15개 러쉬 매장에서 국립생태원과 공동 제작한 '생태정보카드'를 배포하고 멸종위기종 보호와 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알린다. 

1995년 영국에서 탄생한 러쉬는 '동물, 자연, 사람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세상'을 브랜드 비전으로 삼고, 네이키드 패키징, 동물실험 반대, 윤리적 구매 등 6가지 핵심 가치를 실천해 왔다.

양 기관은 앞으로도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공동 가치를 바탕으로 대중이 직접 참여하고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