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시인 새 시집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출간…“그대만이라도 의롭게”

김지은 기자 2026. 5. 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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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 'ㅣ'가 두 개나 있다.

오세영 시인이 새 시집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서정시학 발행)를 펴냈다.

"시정잡배나, 장삼이사나, 정치가나, 기업가는 말할 것 없지만/이 나라/ 교수도, 목사도, 의사도, 언론인도, 스님도, 판·검사도, 시인도 모두/돈벌이에 혈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오 시인은 이런 세상에서 시인의 역할을 새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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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
시집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표지.

한국어 ‘시인’이라는 말에는

모음 ‘ㅣ’가 두 개나 있다.

영어에도 불어, 중국어에도, 아니

세계 그 어느 외국어에도 없는 우리 말

단어가 아니냐.

‘ㅣ’는

하나를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지만

똑바로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글자.

그래서 지혜로운 우리의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지으시며

땅은 ‘ㅡ’, 하늘은 ‘.’,

‘ㅣ’는 인간이라 하셨느니.

이외 이 지상에서

직립(直立)해 하늘을 우러르는 동물이 어디

있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한국의 시인들이여.

시방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자칭 인간도 막된 동물도 모두 한 통속이 되어

꿀꿀거리며

땅의 먹잇감에만 온통 눈독을 들이고 있나니

그대만이라도 ‘ㅣ’처럼

이 지상에 홀로 우뚝 두발로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 시,「‘모음 ‘ㅣ’」 전문

오세영 시인이 새 시집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서정시학 발행)를 펴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오 시인은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꾸준히 탐색해 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앞에 소개한 시편「‘모음 ‘ㅣ’」에서처럼 각다귀 세상에서 인간, 그 중에서도 시인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지를 설파하고 있다.

오 시인의 당대에 대한 인식은 시 ‘인간론 1- 막된 세상’에 들어 있다. “시정잡배나, 장삼이사나, 정치가나, 기업가는 말할 것 없지만/이 나라/ 교수도, 목사도, 의사도, 언론인도, 스님도, 판·검사도, 시인도 모두/돈벌이에 혈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오 시인은 이런 세상에서 시인의 역할을 새삼 다짐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일찍이 ‘인간과 신의 중간에 사는 자’라고 했던 시인이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자신의 날개를 펴고 외롭고도 의롭게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의 시편들은 그 역할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시는 영혼의 술,

술은 육신의 시,

높이 들어라 술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푸른 하늘을

날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마시자.

취하자.

우리들

자유로운 영혼이여.

- 시「건배(乾杯)」 전문

인연과 인연이 실처럼 얽히고 설켜

윤회하는 중생이라고들 하더라만

인간은 또 누구나

언어와 언어로 연결되고 묶여진

사회적 존재가 아니더냐.

그런데

대낮에도 환하게 램프를 켜든

장미꽃을 보아라. 아니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쿵쾅거리는 심장의 발전(發電) 소리를 들어보아라.

산다는 것은 각자 서로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머리와 머리에 밝은 등불 하나씩

밝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언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일말의

전류.

내 노년 들어 청력이 약해지니

주위에서 자꾸

귀가 어둡다고 구박들을 하더라만

그 전선에 걸린 불빛,

점차 약해지는 전압에 깜빡깜빡 수그러드는 것을

난들 어찌할 수 있으랴.

-시「어둡다는 것」 전문

한국 시단의 ‘어른’ 중 한 사람인 오 시인은 이번 시집 뒤쪽에 평론가의 글을 싣지 않았다. 대신에 ‘잡념(雜念)의 시학’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시론을 게재했다.

“하나 보태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같은 진실은 오직 삶을 편안하게, 안락하게 영위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필요한 진실일 뿐이다. 보다 중요하고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 논리적, 과학적 진실을 벗어난 곳에 있는, 한마디로 모순에 토대한 진실, 그러니까 간단히 모순의 진실이다. 이 생은 과학적 진실이 아닌 바로 사랑과 같은 모순의 진실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시라고 부른다.”

오 시인은 요즘 우리 문단에서 유행하고 있는 소위 이야기체 시를 경계한다. 함축, 은유를 바탕으로 하는 시의 본령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한 해체시, 미래시라는 이름으로 소통 부재, 혹은 소통 부정의 난해시 창작에 매달리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그는 “해체주의와 정반대의 철학적 계보를 이끌고 있는 테어도어 아도르노(1903~1969)의 견해를 빌려서 해체시를 옹호하는 것은 지적망발”이라고 비판한다.

오 시인은 “글은 진실한 내용을 정확히 써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글에 대한 비평 역시 정직해야 한다. 자신이 소속된 패거리 집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솔직하게 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1942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한 오 시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충남대와 단국대 등을 거쳐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1965~1968년 『현대문학』지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시간의 뗏목』, 『봄은 전쟁처럼』, 『문 열어라 하늘아』, 『바람의 그림자』, 『갈필(渴筆)의 서(書)』, 『등불 앞에서 내 마음 아득하여라』 등을 펴냈다. 시선집 『시사백 사무사(詩四百 思無邪)』 등이 있다. 연구서로『한국현대시인연구』,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한국낭만주의 시 연구』, 『시쓰기의 발견』 등을 출간했다.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받았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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