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불패’ 뉴질랜드 부동산, 금리 인상하자 거품 터졌다
2200개 건설사 줄줄이 부도
주택거래 5채 중 1채는 손절
자산가치 하락에 지갑도 닫혀

실제 시장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2023년 수도 웰링턴의 주택을 구입한 로셸 히쿠로아(38) 씨는 출산을 앞두고 호주 이주를 위해 집을 매물로 내놨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헐값에 월세를 주고 발이 묶였다. 블룸버그는 “인구 500만 명의 소규모 개방 경제인 뉴질랜드는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 실물 경제가 어떻게 마비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라고 짚었다.
지표도 파국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뉴질랜드의 주택 중위 가격은 지난 2021년 정점 대비 16% 폭락했다. 특히 타격이 큰 수도 웰링턴 지역은 무려 27% 대폭락했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기 시작한 2022년 이후 부도가 발생해 청산 절차에 돌입한 건설사만 2200개를 넘어섰다. 올해 1분기 오클랜드와 웰링턴에서 거래된 주택 5채 중 1채(15~20%)는 매입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린 ‘눈물의 손절 매물’이었다.
뉴질랜드 집값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초저금리와 피터 틸, 래리 페이지 등 미국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대안 피난처’로 주목받으며 연간 30%씩 폭등했었다. 당시 현지에서는 “바비큐 파티에서 소시지가 다 구워지기도 전에 누군가 집값 이야기를 꺼내면 당신은 진짜 키위(New Zealander·뉴질랜드인) 파티에 와 있는 것”이라는 농담이 성행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와 중앙은행의 12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 조치에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자산 가격 하락은 이른바 ‘주택 자산 효과(Housing Wealth Effect)’의 완전한 소멸로 이어지고 있다. 자산 가치가 떨어지자 가계가 지갑을 완전히 닫아버린 것이다. 오클랜드 북부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파울 웹스터-영(49) 대표는 직원을 9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그는 “3년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10만 달러짜리 자잘한 보수 공사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만 인위적인 거품 붕괴가 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카렌 실크 뉴질랜드 중앙은행 부총재는 “뉴질랜드가 보다 균형 잡힌 주택 시장을 갖게 된 것은 건강한 일”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 자산에 투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변화의 바람은 감지되고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ASB은행의 투자자 신뢰 조사에 따르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자가주택과 투자용 부동산이 ‘최고의 수익처’ 자리에서 내려왔다. 대신 국가 연금제도인 키위세이버와 펀드 상품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젊은 세대 역시 더 이상 내 집 마련을 정서적·경제적 안정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 여기지 않기 시작했다. 여기에 집값 회복을 기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매도를 미루면서 주택 자산의 세대 간 이전도 정체되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뉴질랜드의 연착륙 실패 사례가 ‘왜 각국 지도자들이 집값이 크게 꺾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고 진단했다. 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청년층을 위한 ‘부동산 가격 안정’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면서도, 기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집값 폭락’은 절대 원치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현재 세계 주요국은 주택 가격의 급등락 기로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뉴질랜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의존도가 높았던 캐나다는 팬데믹 이후 주택 시장 침체로 건설 경기가 마비되며 경제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호주 역시 고물가와 고금리로 매수 심리가 얼어붙으며 주택 위기에 직면한 반면, 영국은 살인적인 런던 집값으로 잡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등 글로벌 자산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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