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e]김상열의 예술ON도 2012년 소향엔 환호, 2026년 엄지영엔 거센 비판 ‘고음 차력쇼 시대’의 종료
최근 프로야구 경기에서 애국가를 제창한 밴드 ‘큰그림(Big Picture)’의 보컬 엄지영이 부른 애국가 영상이 예상보다 SNS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밴드 큰그림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애국가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글이 게재되었다.
▶▶▶[관련 뉴스] 야구장서 '기교 가득' 애국가 제창…결국 "생각 짧았다" 사과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반응이 불과 몇 년 전 소향에게 쏟아졌던 ‘201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애국가 제창’ 당시의 찬사와 정반대라는 점이다. 2010년대 한국 사회는 소향 같은 보컬리스트를 압도적으로 환호했다. 폭발적인 성량과 극단적인 고음, 숨 막히는 애드리브와 클라이맥스는 ‘진짜 가창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유튜브에는 외국인이 소향의 라이브를 보고 충격을 받는 리액션 영상들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한국에 이런 가수가 있다’며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비슷한 방식의 보컬은 오히려 피로감과 거부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밴드 큰그림의 보컬 엄지영의 애국가 제창 논란은 왜 일어난 것일까. 결국 변한 것은 가수가 아니라 시대이다.
한국은 왜 고음을 숭배하게 되었는가
사실 한국 대중음악은 유독 ‘고음 중심 가창력’을 숭배해온 시장이었다.
그 시작에는 1990년대 록발라드 문화가 있다. 김경호, 박완규, 김종서, 임재범 같은 보컬리스트들은 폭발적인 샤우팅과 극단적인 고음을 통해 대중을 압도했다. 특히 IMF 이후 한국 사회의 집단적 우울감 속에서 절규하듯 터지는 록발라드는 노래방 문화와 겹쳐 일종의 일상 속의 카타르시스로 소비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식 보컬 문화가 강하게 유입된다.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등의 영향 아래 벨팅과 애드리브, 초고음 중심의 보컬 스타일은 ‘최상급 가창력’의 기준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것을 흑인음악 특유의 감각보다는 ‘기술 경쟁’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가와 호흡을 누가 더 오래 끄는가, 발성을 누가 더 강하게 터뜨리는가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고 이러한 기준이 ‘노래를 잘한다’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한국 대중에게 ‘고음’이라는 요소가 음악과 노래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자리 잡았다.
특히 한국 특유의 노래방 문화까지 이러한 흐름에 결합되며 한국에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은 점점 ‘얼마나 어려운 곡을 부르는가’와 비슷한 의미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 흐름의 정점이 바로 MBC의 가창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였다. 모든 무대의 음정은 더 높아야 했고, 편곡은 더 극적이어야 했으며, 감정은 더 처절해야 했다. 하지만 노래는 점점 음악적 감정 전달보다 ‘보컬 퍼포먼스’ 중심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대를 대표했던 보컬 가운데 한 명이 소향이었다.
소향은 사실 시대를 너무 정확하게 관통한 보컬이었다. 후크송(Hook Song)과 아이돌의 전성시대에서 엄청난 성량과 초고음, 극적인 감정 처리와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는 당시 한국 사회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가창력’의 총합에 가까웠다.
즉 소향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당시 시대가 요구하던 보컬 미학의 완성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향을 보며 “저게 진짜 가수다”라고 생각했다. 고음은 곧 실력이었고, 무대에서 고음을 통한 관객의 압도는 곧 감동이었다.
하지만 곱씹어 볼 것은 소향은 자신을 대표하는 ‘자신만의 곡’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단순한 가창 기술보다 아티스트 고유의 음악적 세계관과 감정 전달 방식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빌리 아일리시와 뉴진스의 시대
2020년 이후 대중음악 산업의 변화는 음악의 소비와 제작 측면에서 이전 세대와 분명히 결을 다르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빌리 아일리시와 뉴진스이다. 그리고 글로벌 음악 시장 흐름을 보면 이러한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빌리 아일리시는 속삭이듯 노래한다. 과거 한국형 가창력 기준으로 보면 힘이 빠져 있고, 성량도 크지 않으며, 극적인 고음도 많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비과시성’이 지금 시대의 핵심 감각이 되었다.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은 “얼마나 크게 부르는가”보다 “얼마나 가까이 들리는가”에 집중한다. 청자는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숨을 섞어 말하는 듯한 질감에 몰입한다.
기존의 K-POP의 전통적인 폭발형 보컬과는 거리가 먼 뉴진스 역시 비슷하다. 뉴진스 역시 자연스러운 톤, 힘을 뺀 감정 위주의 발성, 편안한 무드 등을 중심으로 음악을 표현한다.
과거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었다면 ‘가창력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대중들은 오히려 그 지점에서 세련됨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순히 노래를 ‘못 부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시대의 청자들은 더 이상 ‘음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가’보다 ‘얼마나 감정적이고 음악적으로 처리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엄지영의 애국가 제창 논란의 본질
바로 여기서 엄지영 논란의 본질이 드러난다. 엄지영의 보컬이 부족해서 비판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 ‘2010년대적’이라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단적인 고음, 과감한 감정 처리, 클라이맥스 중심의 빌드업 구조 설계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가 열광했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자들은 그 문법 자체에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소향과 다르게 엄지영의 보컬이 성량이나 기교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대중들의 평도 있지만, 이미 'KBS 2026 카운트다운 쇼'에서의 소향의 ‘골든 논란’은 비단 음정 불안과 화음의 충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 역시 시대가 변했고 대중들의 기대와 요구가 변화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번 엄지영의 논란에서 대중들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소향 같은 보컬을 보며 ’한국 최고의 가창력‘이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슷한 방식의 보컬을 두고 ’너무 힘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사실 이 장면은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변한 것은 보컬이 아니라 시대의 감각과 요구이다.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가
물론 앞으로도 뛰어난 고음 보컬은 계속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폭발적인 성량과 초고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더 이상 시대를 대표하는 감동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한국 사회는 노래를 통해 ‘압도적 기교’를 원했다. 더 높고 더 강한 목소리, 더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통해 감정을 폭발시키는 보컬이 곧 ‘진짜 가창력’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소향은 바로 그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완성도 높은 보컬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2020년대의 청자들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고음을 통해 ‘와 잘한다’에서 끝나는 음악보다, 자신이 공감하고 오래 듣고 싶은 목소리를 원한다. 지나치게 완벽한 고음보다 약간의 숨소리와 흔들림, 과시되지 않은 감정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0년대에는 환호의 대상이었던 폭발형 고음 보컬이 2020년대에는 피로감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밴드 큰그림의 보컬 엄지영 논란의 본질은 특정 가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이 오랫동안 숭배해왔던 ‘고음 중심 가창력’이라는 미학 자체가 시대 변화와 충돌하고 있다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한국 대중음악이 30년 가까이 이어왔던 ‘고음 차력쇼 시대’의 종료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