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직함 없이 베네수엘라 주무르는 ‘트럼프의 비공식 총독’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6. 5. 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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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때 백악관 국장…현재는 민간인
쿠바계 이민자 출신 클라베르카로네
마두로 축출 막후 조율…별명 ‘남미 쿠슈너’
석유 등 이권 개입 논란…美 정가 거센 비판
마우리시오 클라베르카로네 [위키피디아]
미국 정부에 공식적인 직함이 없는 민간인이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뒤흔드는 ‘미국의 비공식 베네수엘라 총독’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정가가 떠들썩해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1월 3일,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압송 작전 직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의 2인자였던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 통화에는 마우리시오 클라베르카로네도 함께 했다.

당시 통화에서 루비오와 클라베르카로네는 델시 로드리게스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다만 베네수엘라를 운영하는 것은 워싱턴(미국)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전제조건으로 붙었다.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마두로를 체포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군사 공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다.

WP는 이 막후 작전의 핵심 설계자가 바로 클라베르카로네였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백악관의 밀명을 받고 사적인 신분으로 베네수엘라의 ‘포스트 마두로’ 계획을 수립했다. 그가 제시한 안정화, 경제 회복, 정치 전환의 3단계 계획은 그대로 미국의 공식 정책이 되었고 마두로 축출 작전의 기반이 되었다.

클라베르카로네는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쿠바계 이민자 출신의 변호사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서반구 담당 국장을 지내며 마두로 정권을 압박하는 ‘최대 압박 정책’을 주도했다. 당시 마두로 정권 측 작전 대리인들이 그에게 붙인 암호명이 공포의 대상을 뜻하는 ‘코메니뇨스(Comeniños·어린이를 잡아먹는 자)’였을 정도로 육식성 외교관으로 악명을 떨쳤다.

트럼프 1기 말에는 미주개발은행(IDB) 총재로 선출되기도 했으나, 이듬해 내부 윤리 위반 및 미디어 스캔들에 휘말려 이사회 만장일치로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와의 두터운 신임 덕에 2024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정부 요직인 ‘라틴아메리카 특사’로 임명되어 화려하게 복귀했다. 비록 130일짜리 단기 임시직이었지만, 상원 인준조차 거치지 않고 트럼프와 루비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현재 임기가 끝나 다시 민간인(투자펀드 라라펀드 대표) 신분으로 돌아갔음에도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비대해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이 라틴아메리카의 자레드 쿠슈너냐’고 물으면, 나는 농담조로 ‘아니, 자레드가 중동의 마우리시오지’라고 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임시 대통령이 된 델시 로드리게스는 루비오 국무장관의 개인 번호를 가지고 있지만, 장관이 전 세계 외교 현안으로 바쁠 때면 언제나 클라베르카로네에게 연락해 지침을 구하고 소통한다. 클라베르카로네는 이를 “트랙 투(Track-2·민간 구도) 외교의 정상적인 형태”라고 주장했다.

그의 권력 행사는 단순한 외교적 조율에 그치지 않고 베네수엘라의 거대한 자원과 이권 사업으로 향하고 있다. 마두로 축출 이후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미국 기업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클라베르카로네는 투자자들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막강한 심판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1700억 달러에 달하는 국가 채무 조정 재구조화 사업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건 중 하나인 이 사업의 자문사로 뉴욕의 금융회사 ‘센터뷰 파트너스’가 선정되었는데, 이 과정에 클라베르카로네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직함도 없고 공식 급여도 받지 않는 민간인이 미국의 국가 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그 과정에서 거대 금융 자본의 이권과 얽히는 모습은 워싱턴 정가에서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WP에 따르면 전직 미 정부 관료는 “정부 내에 아무런 직책도 없는 사람이 이토록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의회의 감시나 예산 승인, 공직자 윤리 규정에서 완벽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판매 대금이 미국 시티은행 계좌로 입금되어 미 재무부의 통제를 거쳐 분배되는 상황은,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신식민지’처럼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자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국무부 대변인은 “클라베르카로네는 지역 전문가로서 사적으로 의견을 공유할 뿐이며, 미국 정부를 대행하거나 외국 관료에게 지시를 내리는 공식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공식 부인했다. 클라베르카로네 본인 역시 “나와 내 펀드는 베네수엘라에 단 1달러도 투자하지 않았으므로 이해충돌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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