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상흔, 붓끝으로 새겼죠”

광주일보 2026. 5. 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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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작가 ‘시간을 품다’전
9월 2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4·3과 5·18 잇는 작품 43점 전시
강요배 작가의 ‘시간을 품다’전이 오는 9월 2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작품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강 작가.
강요배 작가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올해 우리 나이로 만 74세다. 제주 출신인 그는 그동안 고향의 역사와 상흔뿐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과 심미적인 미학을 캔버스에 구현해왔다.

작가 누구에게나 ‘시간’은 무거운 주제이자 철학적이며 탐미적인 모티브다. 범박하게 말한다면 작가에게 시간은 모든 창작의 열정을 쏟아부어야 구현할 수 있는 광대한 주제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지나고 나면 명징하게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게 시간이다.

지난 8일 개막해 오는 9월 2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강요배 작가의 ‘시간을 품다’전.

이번 전시에는 강 작가가 살아온 삶, 녹록치 않은 예술의 시간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다양한 바다와 삶의 풍경의 작품들은 따스하면서도 아늑한 기운을 담고 있거나, 세찬 폭풍우가 발현하는 두려움과 경외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첫 개인전을 연 이후 50주년이 되는 전시를 광주에서 열게 돼 무엇보다 의미가 있고 기쁩니다.”

‘억새꽃’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강 작가는 민주·인권·평화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가 빛고을에서 열린다는 것을 남다른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1992년 제주로 귀향한 이후 그린 풍경 연작을 비롯해 최근작 등 60여 년 예술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특유의 제주 사투리를 쓰는 작가는 전형적인 선비의 인상이었다. 조근 조근 이야기 실마리를 풀어낼 때는 강직하면서도 곧은 이미지가 배어나왔다.

어쩌면 ‘시간을 품다’라는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사유의 토대에는 제주4·3과 한국전쟁, 광주5·18,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굴곡이 드리워져 있다.

강 작가는 “민주와 인권, 평화 정신을 조명하는 취지의 전시를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광”이라며 “관람객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실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뛰기도 한다”고 전했다.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에게 고향은 늘 안쓰러움과 경외, 슬픔의 대상이었다. 4·3의 굴곡진 역사와 무거운 침묵과 강요는 고향의 바람과 풍토로 다져진 그의 예술적 DNA를 더욱 견고하게 했을 터다.

“당시 아버지는 제주 4·3항쟁을 겪었습니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이들이 오해를 받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본 터라 제 이름을 특별하게 지었습니다. 요나라 ‘요’(堯), 북돋울 ‘배’(培)라고 지었던 거죠.”

서울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군사독재 치하의 어두운 현실을 자신만의 필선으로 포착했다.

강 작가에게 시간은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테마이자 제주 출신인 작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생래적인 모티브였을 것 같다. 사실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창작을 접거나 방향 전환을 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70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그가 꾸준히 작업을 한다는 것은 창작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실에서 조우하는 심미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시각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한다. 제주4·3기록화 연작을 영상작품으로 재제작한 ‘동백꽃 지다’ 외에도 이번에 공개된,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그린 ‘철목(鐵木)’, ‘광음(光音)’은 시대의 어둠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들이다.

한편으로 시대적 상처를 걷어내고 풍경 그대로를 표현한 작품들에선 특유의 서정과 서경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섬’은 물리적인 개념의 섬이라는 뜻도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섬’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도 ‘섬’이라는 생각을 하구요.”

그의 붓질로 구현된 작품은 제주 특유의 온화한 풍경을 드러내기도 하고 더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폭풍의 시간을 담고 있기도 하다. 바람과 돌, 하늘과 구름 등 제주의 자연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과 결합돼 새로운 감성의 작품으로 전이된다.

바로 시간의 힘이다. 강 작가가 지고하게 품어온 시간이 잉태한 ‘무늬’다.

한편 강 작가는 고려시대부터 4·3까지 지역 항쟁사를 모티브로 한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을 그려 역사 주제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중섭 미술상, 이인상 미술상,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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