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 두 번 막힐 뻔한 60대, 5개 과 총출동 '패스트 트랙'이 살렸다
구급차 신호 받자마자 대기 태세
골든타임 위해 여러 과 동시 대응
개두술, 혈관시술 전문의 늘 협진
수술과 시술 장점 결합, 정밀 치료
편집자주
한 사람의 명의에게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의료 현장은 이제 '협진'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을 위해 여러 진료과의 의료진이 모여 함께 고민하고 최선의 치료법을 찾는 방식은 미래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 한국일보는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고자 진료실 벽을 허물고 있는 치열한 협진 현장을 조명하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불과 1시간 만이었다. 안정을 되찾는 듯했던 64세 남성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측 편마비 증세로 응급실에 이송된 급성 뇌경색 환자였다. 응급의학과와 신경과, 중재시술팀이 급히 혈전용해제를 투여한 뒤 혈전제거술을 시행했지만 회복세도 잠시, 또다시 뇌혈관이 막히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응급환자 신속진료시스템(UTPS)으로 상황을 공유받으며 시술 후 악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기하던 신경외과 수술팀이 즉시 투입됐다. 수술팀은 지체 없이 응급 뇌혈관문합술을 했고, 두 번의 고비를 넘긴 환자는 후유증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뇌혈관문합술은 막힌 혈관을 우회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혈관을 이어주는 고난도 수술이다.
윤원기 고려대 구로병원 뇌혈관센터장(신경외과 교수)은 “뇌혈관질환은 ‘시간이 곧 뇌(Time is brain)’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료 속도가 예후를 좌우하는 응급 질환”이라며 “진단부터 시술, 수술까지 모든 과정이 지체 없이 이뤄져야 환자 생명을 살리고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 응급실 도착 전부터 패스트 트랙 가동
고려대 구로병원 뇌혈관센터 협진팀은 응급의학과와 신경외과, 신경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의 총 5개 진료과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김치경 신경과 교수는 “한 진료과에서 진료와 검사를 마친 뒤 다시 다른 과로 환자를 의뢰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뇌혈관질환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며 “여러 분야 전문의가 초기 단계부터 함께 참여해 환자 상태와 혈관 병변 특성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뇌혈관질환에서는 협진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 뇌혈관센터가 ‘패스트 트랙’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곳의 패스트 트랙은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구급차 이송 단계에서 뇌혈관질환 의심 환자에 대한 사전 알람이 접수되면 병원은 즉시 대응 태세에 돌입한다. 환자가 도착하면 응급의학과 의료진과 전담 간호사가 일반 접수 절차보다 중증도 분류와 응급 처치를 우선 진행하며 치료 준비에 들어간다.

급성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강하게 의심되면 UTPS를 통해 신경과·신경외과·영상의학과 등 관련 전문의로 구성된 뇌졸중 신속대응팀이 즉시 가동된다.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의료진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뇌 영상 촬영과 신경학적 평가를 동시에 진행한다. 영상 검사 결과가 나오는 즉시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하면 혈전용해제 같은 약을 투여한다. 이후 환자는 별도 대기 시간 없이 필요한 수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윤 센터장은 “진단부터 치료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여러 진료과가 동시에 움직이는 시스템을 구축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외과 수술 중 이동 없이 즉시 혈관조영술
전문의 인력 구성 또한 이 센터의 강점이다. 현재 센터에는 고난도 뇌혈관문합술이 가능한 전문의 3명과 혈관 내 중재시술 전문의 5명이 상시 협진 체계를 이루고 있다. 윤 센터장은 “개두수술과 혈관 내 치료를 모두 시행할 수 있는 인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환자 상태와 혈관 병변 특성에 따라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신속하게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가 한밤중이나 주말에 내원하더라도 맞춤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들의 의학적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은 최첨단 진단·수술 인프라다. 고해상도 MRI와 다중 채널 CT, 최신 혈관조영 장비 등을 활용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뇌 속 미세 혈관의 이상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통적인 외과 수술과 혈관 내 중재시술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시행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수술’ 환경이다. 외과 수술 도중에도 환자를 이동시키지 않은 채 수술대 위에서 즉시 혈관조영술을 시행해 치료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외과 수술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깊고 복잡한 병변이 발견되면 혈관 내 시술을 즉시 병행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수술과 시술의 장점을 결합한 치료 방식이기 때문에 보다 정밀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치료 이후에도 의료 질 향상 노력은 계속된다. 뇌혈관센터 전담 간호 인력은 치료 환자의 95% 이상을 대상으로 3개월 뒤 예후를 추적 관찰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치료 과정 전반을 분석해 문제점과 개선 사항을 진료 시스템에 반영한다.
윤 센터장은 “우리 병원 뇌혈관센터는 협진 체계를 바탕으로 급성기 치료부터 재활·예방까지 아우르는 통합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며 “수도권 서남부 뇌혈관질환 치료의 핵심 거점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민병욱 병원장은 “앞으로도 중증질환 특화 상급종합병원으로서 환자 생명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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