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50% 급등' 비상 걸린 美…소비 둔화 경고음
휘발유·디젤 가격 50% 상승
소매 업계 하반기 둔화 대비

트럼프 행정부의 세금 환급 효과가 약화하는 가운데 기름값 급등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지출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비가 미국 경제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만큼 가계 부담 확대는 성장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전쟁발 인플레이션에 지워지는 세금 환급 효과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기업 경영진과 이코노미스트들은 세금 환급금 소진과 이란 전쟁에 따른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미국 소비자들이 수개월 안에 현금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국세청(IRS)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예산 법안에 따른 세금 환급은 신고 건당 평균 약 3500달러였다. 이 자금은 미국인들의 소비를 지탱했지만, 소매업체들은 여름부터 휘발유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에 대비하고 있다.
그레고리 다코 EY파르테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금 환급 효과는 중동발 가격 압력 증가로 상당 부분 지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분쟁이 길어질수록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되고 소비 지출 증가를 잠식하는 부정적 시나리오로 이동한다고 봤다.
미국 소비는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보다 빠르게 확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강한 소비 지출에 기술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견조한 생산성 지표가 더해지며 성장세를 지탱했다. 그러나 2025년 7월 법제화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예산 법안인 ‘원 빅 뷰티풀 빌 법’에 따른 대규모 감세 환급 효과가 약해지면서 소비 여력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월마트와 타깃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번 주 실적 발표에서 세금 환급이 매출을 떠받쳤다고 밝혔다. 400만 미국 가구의 직불·신용카드 지출 자료에서도 연료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와중에 다른 상품 소비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개량 유통업체 로우스는 6월에도 환급금에 힘입은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브랜든 싱크 로우스 최고재무책임자는 "불확실성 때문에 일부 고객이 환급금 일부를 남겨뒀을 것"으로 봤다.
임금보다 크게 뛴 물가
하지만 2월부터 지급된 환급금이 소진되면 연료비가 재량소비를 더 크게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월 식료품 가격은 2.9% 올랐고, 과일과 채소 가격은 6.1% 상승했다. 기록적 수준에 근접한 디젤 가격이 운송비를 밀어올린 영향이다. 짐 리 타깃 최고재무책임자는 "세금 환급의 긍정적 효과가 올해 남은 기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셰인 오켈리 어드밴스 오토 파츠 최고경영자도 여름 운전 성수기를 앞두고 세금 환급 순풍이 지나가면서 매출이 둔화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소비자 부담은 지난 2월 28일 중동 분쟁 발발 이후 더 커졌다. 전 세계 원유의 5분의 1이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이 원유 수송을 막으면서 휘발유와 디젤 가격은 절반가량 뛰었다. PNC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휘발유 카드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거의 40% 늘었다. 필수재 성격이 강한 연료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미국 가계가 가격 상승을 그대로 떠안고 있다는 의미다. 밥 에디 BJ’s 홀세일 클럽 최고경영자는 "4월 한 달에만 회원들이 주유소에서 전년보다 1억4300만달러를 더 썼다"고 말했다.
전쟁은 임금과 물가의 균형도 흔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임금 상승률을 앞지르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네이선 시츠 씨티그룹 글로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중반 이후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 속도에 계속 뒤처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와 최근 이란 관련 원유·원자재 가격 압력이 임금보다 물가를 더 밀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피어스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전쟁에 따른 소비 둔화가 미국 성장에 '과속방지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미국 경제가 매우 좋은 흐름을 보일 수 있었지만, 이 충격이 그 빛을 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봤다. 특히 트럼프 감세의 혜택을 덜 받은 저소득층은 이미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고소득층이 소비 떠받쳐
4월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트럼프 예산 법안의 가장 큰 수혜자이면서 연료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고소득층 소비가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소득 상위 3분의 1 가구의 세금 환급 증가율을 약 13%로 추정했다. 반면 하위 3분의 1의 증가율은 약 6%에 그쳤다. 마이크 리드 RBC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환급금 혜택이 물가 압력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가구에 불균형적으로 흘러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압박을 더 크게 느끼는 쪽은 중산층이라고 말했다.
소비심리도 악화하고 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콘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도 하락했다. 미시간대 조사에서는 높은 가격이 개인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고 답한 소비자가 57%로, 전월 50%에서 늘었다. 엘프뷰티의 타랑 아민 최고경영자는 거의 모든 연령대와 인구 집단에서 소비심리가 부정적이라며 인플레이션과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가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일반 가계의 재정 스트레스 신호도 늘고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 자동차 대출, 학자금 대출 연체가 모두 증가했다. 존 데이비드 레이니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는 고소득 고객은 자신 있게 소비하고 있지만, 저소득 고객은 예산에 더 민감하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관건은 세금 환급금 소진 이후 연료비와 물가 상승이 소비 전반으로 얼마나 빠르게 번지는지 여부다. 소매업계는 여름부터 환급 효과 약화와 에너지 비용 부담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핵심 버팀목인 소비가 둔화할 경우,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물가뿐 아니라 성장률과 기업 매출에도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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