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김·다시마·톳은 영양 풍부한 ‘슈퍼 푸드’… 서양은 밥상 오르는 식재료 아닌 골칫거리 여겨[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쿠바의 카리브해라면 응당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밭이 펼쳐져야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갈색 해초 더미가 백사장을 뒤덮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최근 몇 년 사이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며 급증한 해초가 이제는 관광산업의 골칫거리가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이었다면 사람들이 벌써 바구니를 들고 달려왔을 텐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에게 바다는 육지의 텃밭이나 다름없다. 봄이면 산나물을 캐듯 미역, 다시마, 톳, 모자반을 뜯어 상에 올렸다. 가장 친숙한 김은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반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미역국을 끓이고, 매년 생일에도 미역국을 먹는 나라, 해초를 이토록 일상적이고 다정하게 먹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실제로 한국은 국민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 해조류는 오랫동안 ‘시위드(Seaweed)’, 즉 ‘바다의 잡초’에 불과했다. 해안가에 지저분하게 밀려와 썩어 가는 골칫거리이자, 배 모터에 감기는 방해물로 취급받았다. 영어권에서 해초를 뜻하는 개별 단어가 빈약하고 한데 묶어 잡초라 불렀다는 것은, 이들을 식재료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언어적 증거다. 물론 북유럽 일부 지역에서 겨울을 버티기 위해 저장 음식으로 먹거나,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에서 척박한 토양을 살릴 비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구권 전체에서 해조류는 아이스크림이나 젤리를 굳히거나 화장품을 만드는 산업 원료에 불과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식문화의 차이는 인간의 몸마저 바꿔 놓았다. 과학자들은 해조류를 오랜 기간 섭취해 온 아시아인의 장 속에서 해조류의 특정 다당류를 분해하는 특수한 장내 미생물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 세기에 걸친 식습관의 결과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바다의 영양분을 보다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방향으로 적응해 온 것이다.
영양학적으로도 해조류는 주목할 만한 식재료다. 전 세계 인구 중 상당수가 아이오딘 결핍으로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많은 나라가 소금에 의무적으로 아이오딘을 첨가한다. 일부 국가의 약국에서는 한국산 조미김이 아이오딘 치료제로 판매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인은 아이오딘 과잉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최근 글로벌 식품 시장과 푸드테크 업계는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의 대안으로 해조류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를 흡수하고 인공 비료 없이도 빠르게 자라나는 데다 단백질과 미네랄까지 풍부하다는 이유에서다. 나사(미 항공우주국)도 전남 완도군의 해조류 양식장을 보고 담수와 비료 없이 자라는 친환경 식량자원으로 조명한 바 있다. ‘바다의 잡초’가 아니라 이제 ‘바다의 채소(Sea Vegetables)’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재포장되는 중이다. 유럽 셰프들은 해초 버터와 다시마 소금을 선보이고, 미국의 비건 시장은 김을 새로운 슈퍼푸드로 소비한다.

세계가 이제 막 눈을 뜬 미래 식량의 해답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일상의 밥상 위에서 소비하고 있었다. 한국산 김은 이미 120여 개국에 수출되며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김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급해진다. 흔한 김 한 장이 송로버섯이나 캐비아처럼 귀한 대접을 받게 되는 날이 올까 봐. 세계인들이 이 바다의 맛을 아주 천천히, 조금만 더디게 알아 가기를 바라는 것은 고약한 심보일까.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밥상 위의 소박한 김 한 장에는 의외의 영양이 숨어 있다. 흔히 단백질의 보고로 닭가슴살이나 소고기를 꼽지만, 말린 김의 단백질 함량은 40% 안팎으로 100g을 기준으로 소고기보다 높다. 여기에 비타민 A와 C는 물론 식물성 식단에서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 B12까지 풍부하게 들어 있다. 해외 시장에서 김이 단순한 간식을 넘어 영양학적 ‘슈퍼푸드’로 대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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