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을 무릎 꿇린 고려인 영웅의 발자취"…'황만금 박물관'을 찾다
"모국과의 연결과 마르지 않는 한민족의 뿌리"

(타슈켄트=뉴스1) 김정한 기자 = 사단법인 통일문화연구원(이사장 라종억) 회원들이 수도 타슈켄트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약 25~30km 정도 떨어진 타슈켄트주 유코리치르치크(Yukorichirchik) 구역의 치르치크 마을에 위치한 '황만금 박물관'을 방문했다.
지난 24일 진행된 이번 탐방은 1937년 강제 이주의 비극을 딛고 우즈베키스탄 황무지를 소련 최고의 집단농장으로 일궈낸 고려인의 영웅, 고(故) 황만금 선생(1937-1997)의 삶과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박물관에서 진행된 고려인 2세 현지 관계자의 설명은 강제 이주 당시의 참상과 이를 극복한 고려인들의 눈물겨운 개척사에 대한 감동의 드라마였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황만금 선생의 가족을 비롯한 고려인들은 1937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24시간 만에 열차에 태워져 강제 이주됐다. 준비도 없이 도착한 우즈베키스탄의 척박한 땅은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추위와 질병으로 수많은 아이와 동포들이 목숨을 잃었고, 시신은 기차 밖이나 황무지에 버려졌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기계도 없이 맨손으로 땅을 파고 땀을 흘리며 "우리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은 굶주리는 고려인들에게 자신들의 빵을 나누어주며 따뜻한 손길을 건넸고, 이는 고려인들이 정착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황만금 선생의 탁월한 리더십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동포들을 이끌었다. 그는 1953년부터 집단농장 '폴리토젤'의 의장을 맡아 전설적인 성공을 거뒀다. 삼베를 재배해 고소득을 올리고, 1960년대 소련 전역에 옥수수 심기 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뛰어난 농사 기법으로 엄청난 수확을 올리며 전 소련을 놀라게 했다.

그의 지휘 아래 농장은 현대식 주택, 병원, 유치원, 대형 운동장까지 갖춘 소련 최고의 부유한 마을로 재탄생했다. 인재 양성에도 힘써 마을 청년들의 대학 진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당신들은 우리를 유배 보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한 고려인의 처절한 외침처럼, 황만금과 고려인들은 성공으로써 자신들의 위상을 증명해냈다.
황만금 선생이 이끄는 '폴리토젤'은 1960~80년대 전성기 시절, 이른바 '백만장자 농장'이 됐다.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 당대의 소련 최고 권력자들은 물론 호찌민 등 해외 국빈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할 때 반드시 거쳐 가는 필수 코스였다.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도 이곳을 다녀갔다.
1980년대 후반 소련 해체기 정세 변화 속에서 고려인들은 한때 과거 강제 이주 트라우마 속에서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한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1990년대 초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단의 방문과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황만금 선생에 대한 한국 방문 초청 등으로 고려인들은 "모국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방문 등을 거치며 한국으로의 왕래와 유학의 길이 활짝 열렸다.

현지인 관계자는 "한국은 우리를 받아줬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며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고 멀리 살고 있지만 결국 한 피, 한 뿌리를 가진 한민족"이라고 강조했다.
황만금 선생의 역사는 단순한 생존기를 넘어 척박한 운명을 개척해낸 한민족 특유의 강인한 DNA를 증명하는 대서사시다. 차별과 유배의 고통을 풍요와 교육의 기적으로 되갚아 준 그의 삶은 현지 고려인 사회의 든든한 뿌리가 돼 있다.
소외됐던 동포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이제 모국인 우리의 책무다. '한 핏줄, 한 뿌리'라는 그들의 외침이 무색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민간·정부 차원의 유대와 지원 체계가 더욱 공고해져야 한다.
acenes@news1.kr
<용어설명>
■ 폴리토젤
폴리토젤(Politotdel / 러시아어: Политотдел)은 과거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농장(콜호즈, Kolkhoz)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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