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열려도, 배 다 빠져나가는 데만 수개월도 걸려”

이철민 기자 2026. 5. 2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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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이상 정박된 1500~2000척이 일정 속도 유지하며 좁은 항로 지나야
기뢰 제거, 달라붙은 해양생물 청소, 엔진 점검 外에, ‘교통 안전ㆍ통제’ 확보돼야
JP 모건 “국제 공급 정상화는 수개월 뒤에나…각국 의 수요 제한 조치는 당분간 불가피”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협상을 시작했지만, 국제 해운업계와 에너지업계는 해협 재개방과 공급 정상화는 별개의 문제로, “전세계 원유 공급이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려면 빨라도 9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가 25일 보도했다. NYT는 갇힌 배들이 빠져나가는데만 수주~수개월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의 CEO 술탄 알 자베르 최고경영자는 FT에 “전쟁 이전에 하루 130척에 달하던 해협 통과 물동량이 80%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최소 4개월이 필요하다”며 “해협 통항의 완전 정상화는 2007년 상반기 이전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약 2000척이 폭 3.7㎞의 해협 진출 항로 통과해야

현재 페르시아만에 갇힌 선박 수는 1500~2000척으로 추산된다. 유조선뿐 아니라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자동차 운반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이 포함돼 있다, 2000척이 여느 때처럼 하루에 130척이 해협을 빠져나간다면 15.3일이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평시’가 아니다.

5월25일 호르무즈 해협 근처에 정박해 있는 배들. 현재 해협 안 페르시아만에 갇힌 배들은 1500척 이상으로, 이들 선박이 모두 해협을 빠져나가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로이터 연합뉴스

이들 선박이 해협 재개방과 함께 동시에 빠져나갈 수 없으므로, 위험 화물 적재 선박, 목적지 항,선박의 종류 등을 따라 통과 순서를 정해야 한다.

하지만 통항 관리권을 주장하는 이란과 국제수로라는 미국과 서방의 입장이 여전히 맞서, 해운사들은 누가 통항 허가를 발급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NYT는 “실제 운항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통항 절차와 관할권 문제를 둘러싼 협의는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충돌 위험이 커지고, 지나치게 느리면 교통 흐름이 마비된다. 발틱국제해운협회(BIMCO)의 최고안전책임자인 야코프 라르센은 “선박들이 일정한 속도 제한을 적용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에,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장 좁은 구간 폭은 21해리(약 39㎞)에 불과하다. 실제로 선박이 항해하는 구간은 훨씬 좁다.

국제 항행 규정상 대형 선박이 이용하는 진입 항로와 진출 항로는 각각 폭이 약 2해리(3.7㎞) 정도다. 사이에는 약 2해리 폭의 분리수역이 있다. 세계 최대 유조선들이 사실상 왕복 4해리 남짓한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셈이다.

특히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은 길이가 300m를 넘는다. 완전 적재 상태에선 제동 거리도 수㎞에 달한다. 좁은 수로에서 수백 척이 줄지어 이동하려면, 교통관제센터의 정밀한 통제가 필수적이다. 단 한 건의 해상 사고도 전체 수송망을 다시 마비시킬 수 있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 LNG 수송량의 약 25%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최대 변수는 기뢰

영국 군 당국은 이란이 해협에 여러 종류의 기뢰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특히 해저(海底)에 설치되는 기뢰(bottom mine)가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이 해저기뢰는 접근하는 배의 자기장과 수압, 음향 변화를 감지해 폭발한다. 기뢰가 폭발하면 고온ㆍ고압의 가스가 순식간에 팽창하면서 거대한 기포(bubble)를 형성한다. 이 기포는 선박 아래의 물을 밀어내고 다시 붕괴하면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킨다. 기포가 선체를 직접 맞히지 않아도, 배 밑 부분을 심하게 휘게 만들어 선박을 두 동강 낼 수 있다.

해저기뢰는 위치 확인부터 제거까지 매우 어렵다. 해류를 따라 이동하거나 토적물에 묻혀 있을 수 있고, 잠수부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심에서는 무인(無人) 수중장비를 동원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기뢰 제거함이 투입돼도, 실제로 안전을 확보하기까지는 수주~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뢰 제거가 끝났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주요 선주(船主)들은 배를 이동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3개월 정박하면서, 배 상태도 엉망

대부분 선박은 최소 인력만 남긴 채 장기간 정박 상태를 유지해 왔는데, 페르시아만의 높은 수온은 선체 오염을 가속시킨다. 따개비와 조개류, 해조류 등이 선체 하부에 대량으로 달라붙는 이른바 ‘해양생물 부착(bioiofouling)’ 현상이 심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는 “해협 봉쇄 기간 중 단 한 척을 이동시켰는데 선체 청소 작업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고, 청소 후에도 최고 속도는 정상보다 훨씬 낮아졌다”고 NYT에 말했다.

3개월 이상 가동하지 않은 엔진과 각종 기계 설비에 대한 정밀 점검도 필요하다.

◇멈춰선 일부 유전, 재정상화에 7개월 걸려

해협이 열린다고, 산유국이 수도꼭지를 돌려 틀듯이 곧바로 원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쟁 기간 동안 상당수 유전은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고, 정상 가동하기 전에 압력 관리와 배관 점검, 저장시설 확인, 안전성 확보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S&P 글로벌은 “일부 유전의 경우 생산 정상화에 최대 7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생산이 재개되더라도 초기 생산분 상당량은 각국과 기업들이 이미 쓴 상업적 재고와 전략 비축분 복원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즉 시장에 즉시 공급되는 물량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

JP모건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이미 3개월 이상 위험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재고 감소가 진행됐기 때문에, 해협이 다시 열려도 석유 시장의 긴장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 측은 “유조선 확보ㆍ정유시설 가동 확대ㆍ항만 운영 정상화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해, 공급 부족 현상은 올해 하반기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해협 통과 물동량의 정상화는 “선박을 이동시키는 문제뿐 아니라 생산ㆍ저장ㆍ수송ㆍ보험ㆍ금융ㆍ물류 전반이 함께 복구돼야 하기 때문에, 물동량이 전쟁 이전의 80%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최소 4개월이 필요하며, 완전 정상화는 2027년 상반기 지나서야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해운 데이터 기업 클레르(Kpler) 측은 FT에 “선박 통과를 위한 질서 있는 절차가 마련되더라도, 교통량은 3~4주 동안 정상 수준의 40~50%까지만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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