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깊은 산속에도 자본주의는 칼처럼 작동했다 [산으로 간 남미]

김송희(유튜브 ‘잼쏭부부’ 크리에이터) 2026. 5. 2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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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콩카과 베이스캠프 카라반

유튜브 '잼쏭부부' 부부 크리에이터인 김송희, 전재민씨가 50여 일간의 남미여행 중 대륙 최고봉 아콩카과(6,962m)를 등정했다. 원정 후에는 페루와 볼리비아, 파타고니아 등지를 여행했다. 이들의 원정기를 연재로 싣는다. _ 편집자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풍경.

남미 안데스산맥의 최고봉 아콩카과(6,962m)는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히말라야를 제외하면 지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거대한 안데스산맥 한가운데 우뚝 솟은 이 산은 주변 산군보다 압도적으로 큰 산체를 드러낸다.

나는 2026년 1월 25일부터 2월 4일까지 11일간 남편 재민과 아콩카과를 등반했다. 우리에게 아콩카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 산이었다. 2017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5,642m)를 시작으로 2024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0m)에 이어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까지 부부가 함께 오른 세 번째 대륙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아콩카과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 바싹 말라

아콩카과의 첫인상은 '건조함'이다. 히말라야의 산들은 등반 초입까지는 숲과 초지가 이어지지만 이곳은 시작부터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콩카과가 자리한 지역은 강수량이 매우 적은 고산 사막 기후이기 때문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도와 강한 바람까지 겹치면서 나무 대신 황갈색의 바위와 먼지뿐인 풍경이 이어진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이국적인 이 풍경이 좋았다. 산을 걷고 있는데 사막을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한국의 산들은 대부분 나무로 우거져 있어 풍경이 가려져 있는데 아콩카과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서 경치 구경하기엔 최고였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몰랐다. 나무들이 산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해발고도 4,40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까지 보통 이틀에 걸쳐 들어간다. 주차장에서 베이스캠프까지 25km라서 아침부터 열심히 걸으면 하루 만에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해발 3,000m대에 있는 중간 캠프에서 하루 쉬면서 고소 적응을 하고, 이튿날에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출발하자마자 해발 4,400m까지 한 번에 무리해서 올라가면 쉽게 고산병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등반가들이 결국 이 고산병을 극복하지 못해 정상 등정에 실패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은 천천히 편안하게 적응하는 길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1일차 일정은 주차장에서 약 7km 떨어진 콘플루엔시아 캠프까지 가는 게 끝이라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안데스의 고지는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출발지점의 해발고도는 3,000m에 가깝다. 조금만 경사가 심해져도 숨이 가빠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숨을 고르려고 잠시 쉬기라도 하면, 훅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미세한 모래가루가 입으로 들어와서 호흡을 더 어렵게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안데스 똥바람이구나!"

이곳에 오기 전 사전조사를 위해 한국에서 아콩카과를 올랐던 사람들을 만났다. 저마다 여러 난관을 맞닥뜨렸었는데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한 단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바람'.

안데스산맥은 남북으로 7,000km 이상 이어진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이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공기가 이 산맥에 막히면서 위로 솟아오르고 능선을 따라 가속된다. 그래서 산 정상 부근에는 제트기류에 가까운 강풍이 분다.

아직 등반 시작점인 베이스캠프도 못 들어갔는데 바람이 이 정도면 대체 정상의 바람은 어떨지 상상이 안 되었다. 새파란 하늘에 바람 한 점 없는 것 같다가도 가끔씩 훅 불어오는 돌풍은 매서웠다. 뻥 뚫린 풍경이 좋다지만 바람 막아 주고 모래도 덜 날리게 해주는 푸른 숲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쉽지만 앞으로 짧게는 10일, 길게는 20일간 나무 한 그루 없는 황야를 걸어야 한다.

아콩카과 등반 시작점 호르코네스. 아콩카과 산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호화 텐트 속 아늑한 우리 텐트.

호화 에이전시 캠프 vs 개인 텐트

콘플루엔시아 캠프에 도착하니 거대한 돔 텐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 시즌 동안 등반가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형 에이전시들이 상설 캠프를 구축해 놨다. 대형 에이전시 텐트에는 냉장고부터 오븐, 바비큐 기계까지 없는 게 없다.

이것과 비교하면 우리가 이용한 작은 에이전시인 안데스포르트Andesport는 키친 텐트와 다이닝 텐트, 그리고 침실 텐트까지 세 개의 허름한 돔 텐트가 전부였다. 심지어 이마저도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우리는 개인 텐트에서 잠을 자고 식사는 직접 해결하는 최저가 로지스틱 패키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구석에 우리 텐트를 치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아늑한 텐트 안에서 멘도사 시내의 슈퍼에서 공수해 온 신선한 당근을 동결 건조식에 넣어 먹고 있으니, 우리 10m 앞에서 아르헨티나 소고기 바비큐를 먹는 외국인 등반가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는 물론 거짓말). 그래서 기름이 흐르는 소고기를 연신 칼질하는 사람들을 보며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멘도사 시내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한테는 당근만 해도 등반 중반부터는 없어서 못 먹는 소중한 신선식품이어서 둘도 없는 고급식량이었다. 그렇게 소박하고도 고급스러운 저녁을 먹으며 아콩카과 여정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해발 3,400m에 위치한 콘플루엔시아 캠프.
콘플루엔시아 캠프의 밤. 대형 돔텐트들 사이에 우리 텐트. 마치 달에 온 것 같다. 

3,000m 남벽 경유

보통이라면 이제 베이스캠프인 플라자 데 뮬라스Plaza de Mulas까지 가면 된다. 우리는 하루를 더 들여 아콩카과 남벽을 볼 수 있는 플라자 프란시아Plaza Francia에 들르기로 했다. 수직 높이 3,000m에 달하는 거대한 남벽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명소다. 아콩카과 남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거벽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산할 때 들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때는 아마 다음 여행을 위해 서둘러 산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 같았다. 그래서 고소 적응도 할 겸 미리 다녀오기로 했다. 해발 4,200m에 위치한 플라자 프란시아를 하루 다녀오면 이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몸이 한결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플라자 프란시아는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빠져 약 10km 들어가면 닿을 수 있다. 정상 등반을 하지 않는 일반 등산객들도 남미 최고봉의 위용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많이 찾는다. 이들은 보통 콘플루엔시아 캠프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트레킹 둘째 날에 이곳을 왕복하는 일정으로 다녀온다.

물과 간식 정도만 싸서 배낭은 가볍지만 그래도 왕복 20km가 넘는 길이라서 아침 일찍 캠프를 출발했다. 끝없는 오르막길 옆으로 거대한 빙하가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양옆으로 이름 모를 산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빙하의 시작점이 나타났고, 그 위로 아콩카과의 거대한 남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펼쳐진 높이 약 3,000m의 거벽은 압도적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쪽 면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우리가 오르는 길은 이 벽의 반대편이다. 산을 크게 돌아 북서쪽 능선, 즉 노멀 루트를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저 거대한 벽을 뒤로한 채 우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 산의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3일차, 드디어 등반의 본격적인 시작점인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오늘은 약 1,000m 고도를 올려야 하고 18km에 이르는 거리를 캠핑 장비를 짊어진 채 걸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어제 남벽을 보러다녀온 탓인지 몸도 조금 무거웠다.

게다가 사흘째 이어지는 황량한 풍경도 슬슬 지루해질 무렵이었다. 그때 길가에 푸른 기운이 나타났다. 사실 초원이라기엔 강 옆 평원에 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자라 있는 정도였지만 사막 같은 풍경 속에서 만난 그 초록빛이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잠깐이었지만 그 푸른 기운 덕분인지 몸에 다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자 다시 풀 한 포기 없는 건조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 사이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짐을 실은 노새들이 베이스캠프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가 실어 보낸 카고 백도 베이스캠프에 잘 도착해 있겠지?"

분실보다 더 걱정되는 건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의 상태였다. 배낭에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3일치 식량과 최소한의 캠핑 장비만 넣어 왔다. 대신 노새에 실어 보낸 카고백 안에 약 20일치의 식량이 들어 있다. 그 속에는 과자도 초코바도 풍족하게 들어 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짐을 찾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싱싱한 사과를 하나 꺼내 베어 무는 것이었다. 건조한 공기 속을 걷다 보니 신선한 과일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그후 이어진 황량 건조한 돌길.
플라자 프란시아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아콩카과 남벽.

아콩카과에서 맛본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

우리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등반가들도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줄을 지어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한 시간에 몇 명씩은 꾸준히 마주쳤다.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정상에 도전할 것이다. 부디 이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날씨의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랐다.

마침내 베이스캠프인 플라자 데 뮬라스에 도착했다. '노새들의 광장'이라는 뜻이다. 노새들이 등반가들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이곳부터는 모든 장비를 사람이 직접 짊어지고 올라가야 한다.

아래 콘플루엔시아 캠프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국립공원 레인저 사무실이 있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퍼밋을 제출하고 체크인을 해야 한다. 등반을 마치고 내려올 때도 이곳에서 체크아웃을 한다.

캠프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은 콘플루엔시아보다 훨씬 크고 활기가 넘쳤다. 대형 에이전시가 운영하는 카페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갤러리'라는 간판을 단 작은 전시 공간도 있었다. 돈을 내면 짐을 옮겨주는 포터 서비스 가격표도 붙어 있었다. 이 안데스산맥 깊숙한 골짜기에서도 돈만 있으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되는 듯했다. 얼마 전 눈이 내렸는지 캠프 주변에는 듬성듬성 눈이 남아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눈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밤에는 기온이 꽤 떨어질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가 보낸 카고 백은 무사히 도착해 있었다. 베이스캠프까지 잘 와 준 내 자신에 대한 상으로 사과 하나를 꺼냈다. 한 입 베어 물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과였다. 생명이 다 말라버린 듯 건조한 산속에서 유일한 생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과를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하나씩 먹을 수 있을 만큼 챙겨오길 정말 잘했다. 긴 등반을 버티려면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중요하다.

이제 비로소 실감이 났다. 정말 아콩카과 정상으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부터는 이 산이 우리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 줄지 마주할 차례다.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노새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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