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폭락 사이클 잊지말라"… 삼전·SK하닉 호황 속 美 전문가 경고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메모리 산업 특유의 급등·급락 사이클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AI로의 역사적 전환 때문에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메모리반도체 사이클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는 주장이 부각돼 왔던 것과 다른 분위기다.
AI 시대를 맞아 "메모리 산업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기대가 확산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과도한 낙관론 직후 업황이 급격히 꺾인 사례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25일(현지시간) 최근 메모리 관련 종목들의 폭발적인 상승세가 미국과 한국 증시 랠리를 이끌고 있지만, 업계 특유의 순환적 특성을 간과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 주가는 114%, SK하이닉스는 186% 급등했다. 미국 메모리 업체인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역시 140%를 웃도는 상승률을 기록하며 AI 수혜주의 대표 종목으로 부상했다.
시장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과거와 다른 장기 성장 국면이 열렸다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업계 경영진들은 AI 산업 확대가 메모리 시장의 기존 호황·불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대규모 연산 수요 증가로 메모리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 전문가들은 시장의 낙관론이 지나치게 과열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블루박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윌리엄 드 게일은 CNBC 인터뷰에서 메모리 산업은 본질적으로 "극단적인 변동성을 가진 산업"이라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가치 창출 산업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메모리 사이클이 사라졌다"는 주장이 등장할 때마다 이후 업황이 급격히 냉각되는 현상이 반복돼왔다고 강조했다. AI 열풍 속에서도 결국 공급 확대와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 메모리 가격 하락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높은 기업 가치가 장기간 지속될 초고수익성과 공급 통제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게 선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JM 핀의 존 컨리프 투자부문장은 최근 몇 주간 특정 종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시장이 조정에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AI 수요가 향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더라도 증가 속도가 점차 정상화될 경우 향후 3년 동안 생산량 확대가 본격화하면서 현재의 공급 부족 현상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공급 제약이 풀릴 경우 메모리 가격과 수익성 역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란모어 펀드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앤드루 라핑 역시 메모리 산업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놨다. 그는 "표범은 쉽게 자신의 무늬를 바꾸지 않는다"며 메모리 산업 특유의 경기 순환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급등세가 한국 증시 전체의 변동성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선 상태다. AI 기대감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증시 상승을 견인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업황 둔화 조짐이 나타날 경우 시장 전체가 큰 충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스티브 브라이스 스탠다드차타드 글로벌 CIO는 최근 "한국 증시에 대한 낙관론이 정점에 근접했다"며 투자자들에게 일부 차익 실현과 글로벌 분산투자를 권고하기도 했다.
AI가 메모리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시장의 기대가 지나치게 앞서갈 경우 과거와 같은 급격한 조정 국면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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