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AI, 산업 질서 다시 쓴다…골든타임 맞은 대한민국의 승부수 [GCC 2026]

조유빈 기자 2026. 5. 2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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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밖으로 나온 지능…‘제조 강국’ 한국에 역전의 무대 열렸다
미·중 속도전 속 규제 장벽 혁파 시급…GCC 2026에서 해법 모색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두뇌 싸움에 몰두하던 인공지능(AI) 패권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모니터 안에서 이뤄지던 AI 경쟁이 현실세계로 무대를 옮기며 '피지컬 AI' 시대가 막을 올렸다. 진짜 관전 포인트는 지금부터다. 거대언어모델(LLM)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의 뒷모습만 좇아야 했던 한국에 예상치 못한 역전의 무대가 열렸다. 자동차와 가전 산업에서 축적된 한국의 견고한 기반은 피지컬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떠올랐다. 수십 년간 갈고닦은 튼튼한 근육과 심장에 AI 두뇌를 이식할 골든타임이 도래한 것이다.

피지컬 AI가 인간의 개별적 지시 없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자율적 지능인 '에이전틱 AI'와 결합하면 새로운 경제 질서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디지털 지능과 물리적 세계가 결합하는 '대융합'의 시대다. 시사저널은 5월26일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제14회 굿컴퍼니컨퍼런스(GCC) 2026에서 이 흐름을 조명한다. 한국이 새로운 전장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ChatGpt 생성 이미지

시장 규모 7경…체급이 다르다

챗GPT로 대표되는 LLM이 인공지능의 두뇌를 진화시켰다면, 피지컬 AI는 정신을 넘어 육체노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열쇠다. 대규모 데이터로 학습한 지능형 모델이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하드웨어의 움직임을 직접 제어해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게 만든다. 기존 AI가 '병 속의 뇌'였다면, 피지컬 AI는 현실에서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몸을 가진 뇌'인 셈이다.

전 세계가 피지컬 AI에 몰두하는 이유는 앞으로 창출될 시장의 체급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피지컬 AI가 창출할 시장 규모가 50조 달러(약 7경50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는 2035년까지 청소기·드론·자동차·휴머노이드·돌봄 로봇 등 로봇 13억 대가 현실세계에 확산되고, 2050년이 되면 전 세계에 40억 대의 AI 로봇이 생산·보급될 것으로 예측했다.

글로벌 패권 국가들이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규모 양산과 상용화의 문턱은 아직 넘지 못했다. 현실세계의 변수를 통제하면서 물리적 실체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지컬 AI는 한국에도 분명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제조업은 자동차와 가전 산업에서 탄탄한 생산·품질 관리 역량을 다져왔고, AI 반도체 생태계도 기틀을 잡아가고 있다.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1012대를 보유한 '로봇 밀도 세계 1위' 국가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과 해외 빅테크가 한국의 생태계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젠슨 황 CEO는 한국을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과 제조 기술, AI 연구 기반을 동시에 갖춘 나라라고 평가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한국이 피지컬 AI 시대의 글로벌 중심축이 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며 2031년까지 12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피지컬 AI는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타개할 카드가 될 수도 있다. 2025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 10곳 중 8곳(82.3%)은 자사 주력 제품 시장을 이미 성장 한계에 다다른 '레드오션'(성숙기·쇠퇴기)으로 진단했다. 글로벌 경쟁 우위를 상실했다는 기업도 83.9%에 달했다. GDP 대비 제조업 비중(27.6%)이 OECD 평균을 압도하는 한국이 인력 부족과 숙련공 고령화, 공급망 위기 등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현실세계 전반을 재편할 피지컬 AI로의 체질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숙련공의 노하우를 AI로 옮겨 엔지니어의 상향 평준화를 이끄는 '디지털 장인' 시스템도 해법으로 거론된다.

로봇을 통한 자율화는 제조 현장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은 물론 재난·안전 등 영역과 건설, 국방, 농업, 돌봄 등 전방위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켜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스스로 목표를 이해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틱 AI가 피지컬 AI와 결합하면 현장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 지능형 시스템이 최적의 효율을 찾아내고 운영을 통제하는 '운영 주체'로 거듭나면서 사실상 무인 경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제조업 맷집' 강한 한국엔 새 기회

변화는 이미 현장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은 LG 계열사 제조 현장의 일부 공정을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물류·생산공정·품질검사 등 제조 전 과정에 에이전틱 AI를 적용해 자율형 생산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성공적으로 성능 시연을 마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통해 미래형 전장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는 중이다. 에이로봇은 인간처럼 판단하고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 시점을 2년 후인 2028년으로 예상했다.

미·중은 속도 내는데…혁신 막는 규제 장벽

이 시점에서 제조 역량과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글로벌 표준'을 주도할 필요성이 거론된다. 피지컬 AI 분야의 통합 글로벌 표준 체계는 아직 정립 초기 단계다. 로봇 액추에이터와 센서 간 실시간 통신 프로토콜, 제조·물류 현장에서 수집되는 작업 영상 데이터 규격, 온디바이스 AI 반도체의 성능 규격을 누가 먼저 설계하고 확산시키느냐에 따라 향후 시장 주도권의 향방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산업 현장의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가적 데이터 표준을 선점하고, 기업들이 안심하고 데이터를 공유·결합할 수 있는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배경이다.

주도권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이미 2023년 8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관리 임시 방법'을 전격 시행하며 데이터 선점과 속도전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기술적 완결성보다 현장에 충분히 좋은 수준의 서비스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데 방점을 찍겠다는 전략으로 AI의 일상화를 실현하고 있다. 한국도 자체적 강점을 지닌 피지컬 AI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혁신의 최전선에 선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나서기에 앞서 안방의 규제 장벽부터 넘어야 하는 처지다. 부품 공급 업체가 하나만 바뀌어도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 조항, 이동형 CCTV 규제에 가로막힌 영상 데이터 학습 제한 등이 대표적인 규제로 거론된다. 기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일부 특례를 확보한 사례도 있지만, 복잡한 규제 구조와 긴 심의 기간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 관계자들은 4월20일 국회에서 열린 '피지컬 AI 최강국 도약을 위한 입법 논의 라운드 테이블'에서 자유로운 데이터 수집과 임시 운영 허가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미국과 중국이 여객·물류 현장에서 관련 데이터를 발 빠르게 수집하며 자율주행 기술 등을 선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설명이다. 업계는 AI가 산업의 실행 주체가 되는 '실행 경제'에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낡은 규제에서 벗어나 속도를 내야만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사저널이 이번 GCC 2026을 통해 규제 장벽 혁파와 생태계 조성 등 한국 산업계가 뚫고 나가야 할 구체적인 생존 전략과 해법까지 심도 있게 모색하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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