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넘치는 EPL, 그게 전부가 아님을 보인 시즌[EPL 결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결국 돈의 리그다. 거대한 자본과 막대한 연봉 구조가 성적을 좌우한다. 하지만 2025~2026시즌은 그 안에서도 여전히 ‘운영의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방만함과 무능은 아무리 큰 구단이라도 추락시킬 수 있다는 점도 동시에 드러났다.
우승팀 아스널은 압도적인 지배력을 보여준 팀은 아니었다. 전성기 맨체스터 시티처럼 화려하거나 완벽한 축구를 펼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시즌 내내 불안과 의심 속에서 흔들리며 버텨낸 팀에 가까웠다. 가디언은 26일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의미 있게 받아들여진다”며 “천문학적인 연봉 규모로 리그를 짓누르는 방식이 아닌 다른 형태의 우승 모델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 EPL은 상·하위권 격차가 다소 줄어들었다. 승점 90점 후반대 우승 경쟁이나 승점 30점대 잔류 같은 극단적 구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리그 경쟁력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로 평가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토트넘의 잔류였다. 토트넘은 최종전에서 에버턴을 1-0으로 꺾으며 가까스로 강등을 피했다. 동시에 웨스트햄이 리즈 유나이티드를 3-0으로 이기면서 끝까지 긴장이 이어졌지만, 결국 토트넘은 살아남았다.
토트넘이 애초에 강등권 싸움에 휘말렸다는 사실 자체가 구단 운영 실패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몇 년간의 선수단 관리와 투자, 방향성 설정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시즌 EPL은 “어떤 팀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웨스트햄의 추락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사실상 유리한 조건으로 사용하며 수용 인원을 대폭 늘렸고, 기업 시설 확대를 통한 상업적 이점도 누렸지만 결국 챔피언십으로 강등됐다. 2023년 데클런 라이스 이적으로 확보한 1억파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반면 선덜랜드는 이번 시즌 최고의 성공 사례였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리그원(3부리그)에 있었던 팀이 불과 1년 만에 EPL 7위까지 올라섰다. 첼시를 꺾은 최종전 결과와 경쟁 팀들의 동반 부진이 맞물리며 선덜랜드는 1958년 이후 최고 성적과 함께 유럽대항전 진출권까지 따냈다.
2부리그 중위권 팀이었던 선덜랜드는 승격 이후 단 한 시즌 만에 유럽 무대에 오르는 기적 같은 성과를 냈다. 이는 단순한 자본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다. 체계적인 선수 영입과 방향성 있는 운영, 명확한 축구 철학이 만든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리즈 유나이티드 역시 승격팀으로는 안정적인 시즌을 보냈다. 리즈는 강등권보다 승점 8점 높은 14위로 시즌을 마쳤다. 최근 2년간 승격팀 세 팀이 모두 강등됐던 흐름을 고려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다. 결국 현명한 영입과 운영이 이뤄진다면 승격팀도 단순 생존 이상의 목표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겼다.
브라이턴과 본머스 역시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브라이턴은 최종전 대패로 유로파리그 대신 UEFA 콘퍼런스리그로 밀려났지만, 유럽대항전 자체가 여전히 구단 역사에서는 특별한 경험이다. 팬들도 해외 원정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본머스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17년 전만 해도 구단 해체 위기에 몰렸던 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특히 안도니 이라올라 감독은 주전 골키퍼와 수비진 대부분이 떠나고, 공격 핵심 앙투안 세메뇨마저 시즌 중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상황에서도 팀을 6위까지 끌어올렸다.
가디언은 “EPL은 여전히 철저히 계층화된 리그다. 구단주의 자본 규모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면서도 “동시에 이번 시즌은 올바른 운영과 명확한 철학이 있다면 구단 규모를 뛰어넘는 성과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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