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거리의 피아니스트, 하늘에 울리는 ‘사부곡’

박성준 2026. 5. 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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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라운지 공공피아노 단골 연주자 주상수씨
“돌아가신 아버지 듣고 계실 듯”
그리운 마음 담은 ‘특별한 의식’
이웃에 선한 영향력 전파 노력
“용기 얻었다는 댓글이 큰 격려”

“새벽에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와서 피아노를 치는데 느낌이 참 좋습니다. 어둑하고 조용하고 차 소리가 조금씩 나는데 가끔은 까마귀나 비둘기가 와서 옆에 앉습니다. 그럴 때가 정말 좋습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옆 세종라운지를 드나드는 길목에는 국산 업라이트 피아노가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언제라도 칠 수 있는 거리의 피아노다. 단골 연주자들도 생겨났는데 지난 11일 세종라운지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주상수씨도 그중 한 명이다. 평생을 증권맨으로 일하다 지난해 여의도를 떠나 지금은 컨설팅업체 오스카에서 고문으로 근무 중이다. 그가 피아노를 처음 만난 건 다섯 살. 두 살 많은 누나가 배우는 피아노를 어깨너머로 따라 쳤다. 초등학교 때 드문드문 피아노학원에 다녔고, 선화예중 피아노과에도 입학했지만 인문계로 진학하면서 건반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세종문화회관 세종라운지 길목에 설치된 피아노와 주상수씨. 세계일보와 11일 만난 주상수씨는 “선한 마음으로 연주하면 그 소리도 선한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수 기자
주 고문이 공공 피아노를 처음 연주한 건 여의도 증권가다. “2020∼21년쯤 여의도 IFC몰 CGV 근처에 아무나 칠 수 있는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회사 바로 옆이라 10시나 11시쯤 잠깐 나가 한 곡씩 치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더군요.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싶었습니다.”

이후 주 고문은 집 근처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피아노를 만났다. ‘예술도시를 꿈꾸자’던 오세훈 서울시장 아이디어로 2023년 10월 설치된 공공 피아노였다. 처음 친 곡은 영화 ‘쉘부르의 우산’ 주제곡. “그때 ‘우리나라도 문화 선진국이 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피아노가 공공장소에 놓여 있고 누구나 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야외 피아노 연주는 팔순을 두 달 앞두고 말레이시아 여행 중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한 주 고문의 특별한 의식이기도 하다. “생신에 어딘가 모시고 가서 피아노를 쳐 드리겠다고 연습하던 참이었는데, 그게 끝내 이루지 못한 일이 됐습니다. 소리는 파동입니다. 야외에서 피아노를 치면 어디선가 아버지가 듣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었다. 주 고문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면서도 “그런데 피아노는 다르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겁니다.”

그렇게 만난 세종라운지 피아노를 주 고문은 이른 출근길에 주로 연주하고 때로는 밤이나 새벽에도 건반을 두드린다. 더 잘 쳐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피아노학원에도 다니고 있다. 주로 치는 곡은 베토벤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1악장, ‘비창’ 3악장 등 10여곡. 암보로 치다 보니 그 이상은 무리다. 주 고문처럼 자주 연주하는 이들과도 교분을 나누게 됐다. 주 고문은 “자주 보는 분이 10명 정도인데 그중 여덟 분 정도는 상당히 수준 있는 연주자”라며 “가끔 차도 한 잔씩 한다”고 말했다.

“음대 작곡과 교수로 은퇴하고 반주를 하시면서 꾸준히 나오시는 분도 있고, 거리 피아노만 유튜브에 올리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어려서 피아노를 많이 배웠는데 집이 갑자기 망하면서 피아노를 압류당했다고 했습니다. 그게 한이 돼서 나이 들어 계속 피아노를 치고 다니신다고 하더군요.”

주 고문은 “서울에는 피아노 버스킹을 할 수 있는 곳이 스무 군데가 넘는데 장소마다 개성이 다르다”며 “건반이나 조율 상태가 중요한데 세종문화회관이 최고”라고 말했다.

길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주는 ‘가치’에 대해 주 고문은 ‘쓰임’을 이야기했다. 그는 “거리에서 연주하면 ‘내가 세상에 어떤 쓰임이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는 제 연주 영상에 누군가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댓글을 올려 큰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칠 때는 몰입과 알아차림이 동시에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깨어 있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선한 마음으로 연주하면 그 소리도 어떤 선한 영향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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