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뚫고 피어난 초록… 빛과 색이 포옹하는 순간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2026. 5. 2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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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김의 초록 - 생태적 인간으로 걸어 들어가기
나무와의 대화로 시작된 구원의 여정
초록은 빛과 어둠의 안식·화해의 장소
변방에 내몰린 생명력을 복원하는 장
바래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빛 목도
색이 빛이 되고 빛이 색이 되는 순환
근대적 오만 거두고 자연 질서 합류를

기술 중심 사회가 도래하던 20세기 말, 생태사상가 고(故) 김종철(1947∼2020) 선생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통해 시적 감수성의 중요성과 생태적 자각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시’라는 장르가 단순한 말의 잔치나 현실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문명의 폭력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근원적 감수성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라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파괴를 멈추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자각과 실천이 중요하며, 주객의 분리를 넘어 우리가 거대한 자연이라는 질서 속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통찰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오늘, 그의 문장 속 ‘시’에 ‘미술’을 대입해 본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기술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는 현시대에도 그의 사유는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인간을 장악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지만, 기술을 도구로 잃어버린 인간성을 성찰하거나 더욱더 원초적으로 자연을 들여다보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퍼머넌드 그린 라이트(Permanent Green Light)’, 2026, 벽화, 180×2086㎝. 작가 제공
◆안식의 빛

호크마김은 직관적으로 자연의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는 작가다. 삶의 어두운 시기, 나무와 대화하며 위안을 얻은 순간부터 수년간 치열하게 나무를 관찰하고 그려 왔다. 나무는 그에게 자신과 타인을 비추는 매개이자,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존재론적 표상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주로 장지나 종이 같은 아날로그적 물성 위에 초록을 덧입힌다.

호크마김에게 초록은 단순한 조형적 요소가 아닌, 지난한 시간을 통과하며 벼려낸 정체성의 색이다. 언젠가 그는 자신이 그리는 것이 ‘나무인지 색인지 구분되지 않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상을 관찰하는 시선이 외형의 재현을 넘어 존재의 본질적 파동과 맞닿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슬 맺힌 서늘한 새벽부터 모든 형체를 집어삼키는 심연의 밤까지, 호크마김의 초록들은 나무가 통과하는 모든 시간의 얼굴을 증언하는 기록과도 같다.

과천 알파룸에서 진행되는 개인전 ‘퍼머넌트 그린 라이트(Permanent Green Light, 2026. 5. 4. ∼5. 30)’는 실제 존재하는 물감 색의 이름인 동시에, 영원히 바래지 않을 생명과 그 존재를 증명하는 빛에 관한 이야기다.

자라나는 새싹이 빛을 필요로 하듯, 색은 빛을 통해 완성된다. 어둠 속에 잠식된 것을 흔들어 깨워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빛. 괴테는 ‘색채론’에서 “색채는 빛의 행동, 다시 말해 빛의 행위이자 고통”이라고 했다. 어둠의 심연을 뚫고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빛이 감내한 마찰이 바로 색이라는 것이다.

‘더 라이트(The Light)’, 2026, 장지에 과슈, 140×200㎝.
나아가 그는 빛과 어둠이 완벽한 평형을 이룰 때 탄생하는 조화를 초록이라 정의했다. 초록은 즉 빛과 어둠이 안식을 찾은 ‘화해의 장소’다. 신작 ‘더 라이트(The Light)’는 빛과 색의 관계를 구체적 사건으로 시각화한다. 작년 겨울, 작가는 짙은 우울의 시기를 지나며 도망치듯 제주를 찾았다. 칠흑 같은 산길, 오롯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숙소를 찾아가던 막막함 속에서 그는 인생의 단면을 마주했다. 헤드라이트는 노란빛을 지니지만, 그 빛을 받는 잔디는 빛의 색에 물드는 대신 제 몫의 초록을 회복한다. 쏟아지는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잔디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라 털을 주뼛 세운 고양이처럼 곧추선 모습이다. 어둠을 걷어내는 빛은 이토록 대상을 제압할 만큼 강렬하면서도, 존재의 고유성을 되돌려놓는 자애로운 속성을 지닌다. 존재의 긍정인 빛 앞에서 호크마김은 자신을 수년간 괴롭혀온 어두운 자리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었음을 깨닫는다.

◆초록의 포옹 속으로

개인의 ‘구원’에서 시작된 서사는 이제 광활한 초록의 우주로 진입한다. 전시명을 그대로 옮겨온 ‘퍼머넌트 그린 라이트(Permanent Green Light)’는 폭 21m에 달하는 대형 벽화다. 작가는 동명의 물감을 바탕에 물들여 자신의 세계가 영원한 초록빛으로 확장되었음을 선언한다. 이곳에서 초록은 대상이 입고 있는 색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부유하는 하나의 ‘상태’이자 ‘환경’이 된다.

바오밥나무와 뉴질랜드 슬로프 포인트의 기울어진 나무, 직접 목격한 단풍나무와 겨울 소나무 등, 서로 다른 기후와 장소에 서식하는 나무들이 초록이라는 하나의 파동으로 일렁인다. ‘초록의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 360도 구조 안에서, 관객은 관찰자의 지배적 지위를 내려놓고 환경에 편입되는 현상학적 체험을 하게 된다. 색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이 경험은, 나와 세계의 경계를 지워내며 마침내 우주적 질서와 합치되는 인식의 전회(轉回)를 선사한다. 화면 한쪽에는 녹색 픽셀들이 흩날린다. 나뭇잎이 빛에 따라 매 순간 색을 달리하듯, ‘평정한’ 초록의 상태를 들여다보면 부지런히 교차하고 있는 빛과 색의 긴밀한 움직임이 자리한다. 완벽하게 반듯하지 않은 네모 형태는 자연 속에 기하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자연과 문명, 과학과 예술의 경계 없이 만물이 하나의 근원에 기인함을 암시한다.

색이 빛이 되고 빛이 색이 되는 끝없는 순환.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가장 깊게 포옹한 이 완벽한 평형의 상태에서, 우리는 바래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빛을 목격하게 된다.

◆나무 한 그루를 세우는 일

나무와의 대화라는 사적인 여정에서 출발해 나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보고, 나무로부터 세상을 읽어내는 호크마김의 작업은 생태적 감수성이 예술로 발현된 생생한 현장이다. 여기서 초록은 인간 중심적 감각을 뒤흔드는 매개이자, 기술의 진보로 인해 변두리로 내몰린 근원적 생명력을 복원하는 장(場)이 된다.

호크마김의 작업은 우리에게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근대적 오만을 내려놓게 하고, 비인간 존재들과 대등한 동반자로서 자연의 질서에 합류하도록 이끈다. 김종철 선생이 거시적 문제의 해결은 개인의 자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듯, 호크마김의 예술 역시 개인의 깊숙한 구원적 서사에서 출발해 세계의 질서를 압축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사유의 궤를 같이한다.

시적·생태적 감수성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 한 장의 잎과 같은 개개인의 세계가 모여 자라날 때 비로소 드높이 푸르른, 창연한 나무가 세워진다. 공동체적 연대와 조화가 시급한 오늘, 다시 그 초록의 마음을 되새겨 본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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