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밖으로 나온 콘텐츠…극장·엔터가 'AI 안경'에 꽂힌 이유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5. 26. 06:00

영화 자막이 스크린이 아닌 안경 렌즈 위에 뜨고, 공연장에서는 아티스트의 시선을 그대로 공유한다. 인공지능(AI) 안경이 더 이상 IT업계의 미래 기술에 머물지 않고, 콘텐츠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극장과 공연,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앞다퉈 AI 안경 기술을 도입하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생성형 AI 확산 이후 빅테크 기업들이 '다음 플랫폼'을 두고 경쟁에 나서면서, 손에 들고 보는 스마트폰 이후 가장 유력한 인터페이스로 AI 안경이 부상하고 있다. 콘텐츠 업계 역시 이를 단순 웨어러블 기기가 아닌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으로 주목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컬처웍스의 AI 자막 안경이다. 롯데컬처웍스는 제46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특별 상영회를 진행하며 AI 안경 기술을 활용했다. 이 안경을 착용하면 영화 화면 아래 삽입된 자막 대신 렌즈 위에 대사가 실시간 자막 형태로 표시된다.
이는 청각장애인의 콘텐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새로운 관람 방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멀리 떨어진 좌석의 관객이나 외국인 관객,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도 보다 편리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컬처웍스가 운영하는 샤롯데씨어터는 지난해 뮤지컬 '킹키부츠'부터 자막 안경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연 대사를 실시간으로 인식해 다국어 자막을 렌즈 위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공연 몰입도를 유지하면서도 언어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미디어 접근 서비스가 특정 이용자층을 넘어 새로운 콘텐츠 소비 문화로 확장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영희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는 "배리어프리 서비스는 미디어 접근성을 단순한 '장애인 복지' 차원을 넘어, 모두가 함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이자 산업의 미래 전략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콘텐츠 업계는 AI 안경을 단순 웨어러블 기기가 아닌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평가한다. 스마트폰과 TV 화면 중심이던 콘텐츠 소비가 사용자의 움직임과 음성, 공간을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엔터 업계 역시 AI 안경을 새로운 팬 경험 플랫폼으로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AI 엔터테크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AI 안경 기반의 미래형 공연 경험을 공개했다.
최용호 대표는 "아티스트의 시선을 팬과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안경은 내장 카메라를 통해 아티스트가 실제로 보고 있는 장면을 팬에게 전달하고, 아티스트의 말을 실시간으로 번역하거나 숨소리까지 공유하는 기능을 갖췄다. 단순한 공연 관람을 넘어 아티스트와 현장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회사 측은 이를 '화이트홀(White Hole)'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아티스트의 경험과 감각을 팬들에게 확장해 연결하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라는 의미다.
AI 안경은 공연을 단순 시청형 콘텐츠에서 참여형 콘텐츠로 확장하려는 엔터 업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팬덤 플랫폼과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이 커지면서, 업계는 단순 시청보다 실시간 상호작용과 현장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쟁을 확대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도 AI 안경 시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I/O 2026'에서 구글과 공동 개발한 AI 안경 2종을 처음 공개했다. 스마트폰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기능을 보완하는 '컴패니언 디바이스' 형태로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를 내장했다.
핵심은 구글 AI 모델 제미나이와의 연동이다. 사용자가 음성으로 목적지를 말하면 길 안내를 해주고, 외국어 메뉴판이나 표지판을 바라보면 이를 인식해 한국어로 번역해 들려준다. 메시지 요약과 일정 등록,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사용자의 주변 환경을 AI가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AI 시대의 새로운 플랫폼 경쟁으로 해석하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빅테크 기업들은 AI 비서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녹여낼 수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안경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활용 범위가 넓은 기기 형태로 꼽힌다.
특히 콘텐츠 산업과의 결합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주목된다. 실시간 번역과 자막, 음성 인터페이스 기술 등이 결합되면 공연과 영화, 스포츠,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소비 방식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 안경이 실시간 번역과 광고, 커머스 기능까지 탑재할 경우 새로운 콘텐츠 유통 창구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예를 들어 외국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에서 실시간 번역 자막을 제공하거나, 공연장 안에서 아티스트 관련 정보를 즉시 보여주는 형태의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여행·관광 분야에서도 공간 정보와 콘텐츠를 결합한 활용 역시 기대된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배터리와 발열, 착용감,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은 여전히 숙제로 꼽힌다. 과거 구글 글라스가 사생활 침해 논란 속에 대중화에 실패했던 사례도 있다.
현재 AI 안경 경쟁은 단순 하드웨어 성능보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일상과 콘텐츠 경험에 스며들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 시대 콘텐츠 경쟁이 손안의 화면을 둘러싼 경쟁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사용자의 시선과 청각, 공간 전반으로 경쟁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이 이제 화면 밖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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