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토해낸 '밀양'의 신애처럼… 평온하지 않은 회복도 있다

2026. 5. 2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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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30> 영화 '밀양'의 신애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왼쪽·전도연). 파인하우스필름 제공

오래전 큰 상처를 겪은 뒤 반듯하게 살려고 애써온 한 환자가 있다. 그는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한 주의 일을 긴장되지만 정확히 정리해 들려주려 노력했다.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의 요구도 잘 표현하지 않던 그가 평소와 다르게 부탁을 해 왔다. 영화 ‘밀양’(2007)을 보고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한 번 보고 최근에 다시 봤는데 같은 영화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고 했다.

신애(전도연)는 남편을 잃은 뒤 어린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온다. 그저 남편의 고향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약국에서 김 집사가 안부를 묻자 신애는 소리내 웃으며 받아친다. "저 불행하지 않아요, 아줌마. 잘 살고 있어요." 이 장면은 별일 아닌 듯이 넘어가지만 내용이 진행될수록 뼈가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신애는 남편을 그저 갑작스럽게 사별한 것뿐만 아니라 남편의 외도까지 겪었던 것이다. 동생이 신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직면시키자 신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자신과 아들만 사랑했던 사람이라며 끝까지 부인한다. 약국에서 김 집사에게 보였던 것과 같은 결의 반응이다. 그녀는 '남편의 꿈을 이루러 온 아내', '밝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너무 큰 고통이었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였다.

상실 직후의 사람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더 멀쩡해 보이기도 한다. 더 성실해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괜찮은 사람처럼 지낸다. 회복과 수용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안쪽에는 여러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억눌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신애가 약국에서 보인 웃음에서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분들을 만난다. 큰 상실 직후에 오히려 더 부지런해지신 분, 회사에서 더 잘해 보려고 애쓰시는 분, 주변 사람들에게 더 신경 쓰시는 분. 그렇게 살다 보면 본인도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른 채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 탓'을 놓지 못하는 이유

영화 '밀양'의 신애와 아들 준. 파인하우스필름 제공

밀양에서 신애의 아들 준이 납치된다. 신애가 땅을 알아본다며 돈이 있다는 소문이 난 뒤의 일이다. 게다가 신애는 아들을 혼자 집에 두고 모임 자리에 가 있었다. 자책을 할 여지가 많아 더더욱 괴롭고 남편의 외도와 사별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기 너무나도 어려웠을 것이다. 밀양에 온 것이 잘못이었나, 돈 있는 척한 것이 화근이었나, 자리를 비운 것이 결정적이었나. 신애의 마음속에서 자책할 거리는 끝없이 늘어난다.

자책은 흔히 자기를 괴롭히는 일로만 보이지만 다른 면도 있다. 자책은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붙드는 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이유 없는 고통을 잘 견디지 못한다. 아무 이유 없이 내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마음은 차라리 자기 탓을 한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면도 있다. 비록 그 원인이 자기 자신이라 해도 원인이라도 있는 편이 더 견디기 쉽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도 큰 상실을 겪은 분들이 자기 탓을 반복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옆에서 아무리 말씀드려도 잘 닿지 않는다. 잘못이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일이 정말 이유 없이 자신을 덮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책을 놓는 일이 사실은 자책을 계속하는 일보다 더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막아 둔 감정이 터져 나온 순간

영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가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 CJ ENM 제공

이런 상태의 신애에게 종교는 거의 유일한 출구처럼 다가온다. 부흥회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운다. 통성기도 속에서 오열하고 사람들이 곁에서 함께 운다. 그것은 분명 위로의 시간이었다. 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무너진 일상을 붙들게 하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신애의 경우에 조심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충분히 애도할 틈도 없이, 감정을 수용하기도 전에 너무 빠르게 신앙으로 건너간 면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사람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한 번도 화내지 못한 사람이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책마저 제대로 꺼내본 적 없는 사람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 말들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을 충분히 겪지 못한 채 그 말들로 너무 빠르게 감정이 덮인 측면이 있다. 신애는 가해자를 면회한다. 그를 용서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면회 창을 마주보고 가해자에게 들은 말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고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신애의 표정이 굳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실신한다.

이 장면을 흔히 '용서의 실패'로 본다. 그런데 다르게 보면 너무 오래 억눌렀던 감정이 드디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순간으로 볼 수도 있다. 면회 이후 신애는 음반 가게에서 CD를 훔친다. 기독교 야외 부흥회에서 ‘거짓말이야’ 노래를 울려퍼지게 하며 교회에서 모임을 함께 하던 강 장로를 유혹하려 한다. 그리고 끝내 자해한다. 일련의 행동들 안에는 그동안 한 번도 표현되지 못했던 분노, 모욕감, 외로움이 들어 있다. 자해 이후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으며 그제야 고통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회복의 모습은 다르다. 회복의 과정이 늘 안정적이고 평온해 보일 수는 없다. 처음으로 화가 나는 것, 처음으로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 처음으로 '나는 아직 용서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 이런 순간들은 퇴행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막혀 있던 감정을 비로소 표현하는 시작 신호일 수 있다.


곁에서 거울 들어주는 사람

영화 '밀양'에서 김 사장(송강호)이 직접 머리를 자르는 신애가 잘 볼 수 있도록 거울을 들어주고 있다. 파인하우스필름 제공

영화에서 신애 옆에는 항상 김 사장(송강호)이 있다. 신애를 짝사랑해서 그녀의 주변을 계속 맴도는 인물이다. 사실 영화 내내 김 사장은 그리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다. 세속적이고 속물적이기도 하다.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다. 신애의 학원에 가짜 상장을 들고 와 걸어주려 하고, 부흥회와 교회 모임에도 어색하게 따라붙는다. 그의 도움은 대부분 신애가 청하지 않은 도움이다. 신애가 분명히 필요 없다고 거절하는데도 김 사장은 계속 나서서 도와준다. 신애는 그런 김 사장을 부담스러워하고 거리를 두려 하며, 때로는 차갑게 끊어내듯 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신애의 이기심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김 사장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점도 있지만, 신애가 바라는 위로나 구원은 김 사장이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의 고통을 단번에 해결해 줄 무언가나 잃은 것을 되돌려 줄 누군가가 와 주기를 신애는 어딘가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종교에 매달리는 마음에도 그런 기다림이 일부 섞여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신애가 현실에는 없는 무언가를 계속 잡으려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신애가 원하던 것은 영화 내내 오지 않는다.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이 오는 것도 아니고 신앙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지도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는 좁은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스스로 머리를 자른다. 미용실에서 가해자의 딸이 떨면서 잘라주는 손길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 자기 손으로 나머지를 자른다. 그때 김 사장이 다가와 거울을 들어준다. "내가 들어줘도 되겠지예?"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지도 않고, 대신 잘라주지도 않는다. 그저 거울을 들고 옆에 서 있을 뿐이다.

영화 '밀양'의 포스터. 파인하우스필름 제공

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는데 그 이유는 영화 내내 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자꾸 들이밀던 김 사장이 마지막에는 자기 의견을 내거나 무엇을 대신 해주려 하지 않고 가만히 거울만 들고 옆에 서 있어 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애의 고통을 대신 덜어주지 못한다. 다만 신애가 자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뿐이다. 신애가 영화 내내 기다리던 구원은 아닐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현실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형태의 도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진료실에서도 환자의 고통을 내가 대신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자주 실감한다. 트라우마는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확하다고 생각한 해석이 닿지 않을 때도 많다. 결국 환자가 천천히 자기 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옆에서 버텨주는 일, 잠시 거울을 들어주는 일과 같은 시간이 더 많다. 진료실의 어떤 분은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버릴 수도 없고, 안고 가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밀양’은 어쩌면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서성이는 사람의 영화 같다. 신애도 끝내 고통을 버리지 못했고, 안고 가는 법도 아직 모른다. 다만 영화는 그 옆에서 누군가가 거울을 들어주는 장면으로 닫힌다.

회복이 꼭 행복한 결말을 뜻하지는 않을 수 있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누군가 옆에서 거울을 들어주는 시간이 쌓이면 사람은 자기 모습을 조금씩 다시 보게 된다. 고통은 남아 있어도 그렇게 자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회복일 수 있다.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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