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끔찍할수록 호러 소설은 더 짜릿해진다

황지윤 기자 2026. 5. 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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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소설 인기… ‘바디 호러’ 급부상
여성의 불안·외모에 대한 강박 등
신체 훼손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

“호러가 왜 유행하냐고요? 세상을 좀 봐요. 끔찍한(horrific) 세상에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르잖아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문학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의 말이다. 최근 영미 출판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를 꼽으라면 호러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닐슨IQ에 따르면, 영국 출판 시장에선 2024년 호러 장르가 사상 최고 실적(800만 파운드)을 달성했다. 미국 출판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작년 10월 “호러 장르 유행에 따라 호러 전문 서점이 미국 각지에 문을 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출판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 서점 예스24 집계에 따르면, 작년 공포·스릴러 소설 판매량은 1년 전보다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러 클래식’으로 꼽히는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도 인기다. ‘토미에’ ‘소용돌이’ ‘인간실격’ 등을 포함해 올해 1~3월 이토 준지 만화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9% 늘었다.

영화·OTT 분야에서의 호러 유행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언 쿠글러의 공포 영화 ‘씨너스’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 1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공포 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줬다. 지난달 말 공개된 국내 하이틴 공포 드라마 ‘기리고’도 넷플릭스 상위권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 중이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국내 출판사들은 적극적으로 호러 소설을 펴내고 있다. 특히 여성 작가가 쓰거나 여성 인물이 서사의 중심에 있는 ‘바디 호러’가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받는다. 바디 호러란, 신체 변형이나 훼손 등을 다루는 도발적 장르다. 정체불명의 약물을 통해 젊음을 얻지만 극단적 신체 훼손을 경험하는 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2024년)가 이 장르. 이 영화는 국내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다양성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50만 관객을 모았다.

이달 번역·출간된 아일랜드 작가 로즈 키팅의 소설집 ‘오드바디’는 최근 출간된 호러 소설 중에서는 가장 담대하게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등 뒤에 날개를 이식하는 여자, 매일 아침 알을 낳는 웨이트리스 등 여성들의 기괴한 신체적 경험을 초현실적으로 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열림원의 정진우 실장은 “호러는 인간 내면의 불안과 균열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장르”라고 했다.

최근 다산책방에서 출간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모니카 킴의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도 바디 호러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차별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눈알을 파먹는 잔혹한 복수극이 탄생했다.

K문학이 세계 출판인들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국내 작가가 쓴 호러 소설이 해외에 소개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희주 작가의 ‘성소년(Holy Boy)’은 지난 2월 영국 팬맥밀런·미국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됐다. 여성 팬 넷이 자신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남자 아이돌을 납치해 벌이는 광기 어린 호러·스릴러. 광팬이 소설가를 납치하는 내용의 스티븐 킹 원작 ‘미저리’를 연상시켜 영국 더 타임즈는 이 책을 “K팝 버전의 스티븐 킹”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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