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로 빼앗기는 '성장 사다리'
초년병 직무 경험 박탈해선 안돼
윤참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한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AI 활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의 63.5%가 AI를 활용하고, 업무용 활용률만 51.8%에 달한다. 이는 미국(26.5%)의 약 두 배다. 하루 1시간 이상 사용하는 ‘헤비유저’ 비중도 78.6%에 이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일터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를 두고 진단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일자리 절반이 사라진다’는 종말론을, 다른 한쪽에서는 생산성 혁명을 기대한다.
해외의 현장 실험은 AI가 경험이 적은 인력의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객 상담 직원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I 도입 후 평균 생산성이 14% 상승했고, 특히 신입 직원의 성과는 35% 개선돼 숙련자와의 격차가 크게 줄었다. 컨설턴트 대상 실험에서도 GPT-4 활용 시 작업 속도가 25% 빨라지고 결과물 품질은 40% 높아졌다. 효과는 하위 성과자에서 가장 컸다. AI는 주니어가 시니어를 빠르게 따라잡는 ‘평탄화 효과’를 만든다.
거시적 현실은 이와 다르다. 한국은행의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청년(15~29세) 일자리는 21만1000개 감소했고, 이 중 98.6%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다.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증가했으며, 증가분의 69.9%가 같은 업종에서 나왔다.
이 모순은 기업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청년이 맡는 정형화된 지식 업무는 AI가 가장 쉽게 자동화하는 영역이다. 동시에 청년이 AI를 활용해 가장 빨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시니어의 업무 맥락 이해, 조직관리, 대인관계 등은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결국 기업은 ‘주니어+AI’에 투자할 수도, ‘시니어+AI’로 주니어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다. 한국 기업은 후자를 택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에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인재 파이프라인을 고갈시킬 수 있다.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다. AI를 누구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다. 첫째, 교육의 중심을 ‘정보 암기’에서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으로 옮겨야 한다. 표준 답안을 잘 만드는 인재보다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경쟁력을 지닌다. 대학과 직업훈련기관은 AI 활용 역량을 모든 전공의 기초 역량으로 통합하고, 졸업 전 AI 협업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청년의 직무 경험 사다리를 보존해야 한다. AI가 진입 직무를 대체하면 청년은 숙련된 인력으로 성장하는 경로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채용 전 인턴십 확대, 직장 내 신규 학습 체계 등이 필요하다.
셋째, 기업의 AI 도입을 ‘인력 절감’이 아니라 ‘인간+AI 생산성’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사람을 대체하는 기업보다 사람을 증강하는 기업에 세제·조달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AI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을 위해 기본소득 같은 사후 소득 보전 장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일자리는 단순한 소득의 원천이 아니다. 개인이 경험을 쌓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핵심 기반이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경제적 이동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람을 노동시장 밖으로 밀어낸 뒤 보상하기보다 AI 활용 역량을 키우고 인간 중심의 AI 전환을 유도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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