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대통령의 만기친람
스타벅스 찍어내기 등
참견 안 하는 것이 없다
유대인은 건드리면 손해
是非나 好惡가 아니라
국익으로 판단해야 한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에 나선 느낌이다. 만기친람이란 과거 왕정 시대에 백성을 향한 군주의 애민 정신과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말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인기에 집착한 지도자가 사소한 것까지 직접 챙겨 오히려 조직의 방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오지랖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마디로 요즘 이 대통령이 산지사방 참견 안 하는 것이 없다는 비판이다. 단순히 의욕 과잉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이재명식(式) 의지의 표시인가.
그 첫 번째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체포’에 관한 언급이다. 그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한국인 구호 활동가를 체포한 이스라엘에 석방을 요구한 것까지는 적절하고 옳았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발부된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을 언급하며 “우리도 검토해 보자”고 한 것이 문제다. 자국인 석방 요구와 그 나라 수장(首長)의 체포는 별개 차원의 문제다. 다행히 한국인은 곧 석방했고, 이스라엘은 ‘조용’하다.
이스라엘을 지탱하고 있는 유대인은 무서운 민족이다. 수천 년의 박해와 유랑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을 밀어내고 그 땅에 나라를 건설한 집요한 민족이다.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 세계의 방대한 자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을 모욕하거나 폄하하는 세계의 어떤 정치 또는 정치인도 그냥 두지 않는다. 근자에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주 미국 켄터키주 공화당 하원 예비선거에서 일어났다. 7선 현역 의원인 토머스 매시가 하원 선거 사상 최고가(한화 480억원)의 피해자가 돼 낙선됐다. 반(反)네타냐후, 반(反)트럼프의 기수와도 같았던 매시는 결국 미국 내의 AIPAC(아메리칸-이스라엘 공공 정책위원회)라는 이스라엘 로비 단체의 낙선운동 표적이 돼 밀려난 것이다. 지금 미국의 모든 정치 세력은 유대인 로비 단체의 가공할 만한 자금과 조직 그리고 영향력 앞에 먹이사슬이 되고 있다는 자조(自嘲)에 빠졌다.
매시 의원은 “나는 반(反)이스라엘도, 반(反)유대도 아니고 다만 반(反)네타냐후일 뿐”이라고 했는데도 결국 그 유대인 로비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유럽의 송 페스티벌(유로비전)에 이스라엘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 행사를 보이콧한 스페인의 총리도 반이스라엘로 찍혀 그의 정치 생명줄이 순탄하지 않다는 보도도 있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친람은 ‘스타벅스 찍어내기’로 이어졌다. 스타벅스는 하필 5·18 날에 ‘탱크’를 들먹이고 거기다가 ‘책상 탁’까지 곁들이다니 의도적이었다면 족히 반(反)혁명적이고, 실수였다면 당해도 싸다. 하지만 이것이 일국의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셜미디어 맹공에 앞장설 일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달아 두 번씩이나 언급함으로써 그의 어떤 개인적 맺힘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들고 있다. 그가 쓴 용어 ‘금수 같은’, ‘악질 장사치의 패륜’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행안부와 법무부 등은 스타벅스 불매에 나섰고 검찰 조사까지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의 코멘트에 따라 춤추는 정부 부처들의 장단 맞추기는 우리가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것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게 한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창업주인 하워드 슐츠는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벅스가 이스라엘에 군자금을 댄다는 소문도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직후 스타벅스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친이스라엘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좌파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던 차제에 한국의 스타벅스가 불씨를 키우니 우리가 자칫 시오니즘 논쟁에 뛰어들어 반(反)유대 쪽에 선 모양새가 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 정치 집단의 정치생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나라의 안보·동맹 관계, 경제적 여건 등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다. 미국 또는 유럽 여러 나라의 조야(朝野)에 한국의 위상과 상황을 부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여론 조성,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조직이자 장기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자기들은 자기 나라 지도자를 싫어하고 비난하면서도 다른 나라가 자국의 대통령이나 총리를 욕하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트럼프와 미국이 그렇고,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이 그렇다.
대통령은 그 나라의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 나라의 대표성을 갖는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나라의 이익이나 손실에 직결된다. 더구나 지금 세계는 모든 면에서 시공간적으로 연결돼 있다. 세계의 이목, 특히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각에서는 한국의 대통령이 누구를, 어느 나라를, 왜 공격하고 비판하는지를 그냥 액면 그대로 수용할 뿐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중도국의 대통령은 싫어도 ‘오냐 오냐’ 하면서 가는 것이 그 나라가 사는 길이다. 나라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판단의 준거가 아니다. 국가 이익이 그 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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