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가 천만 영화라면 이곳은 독립영화… 체코 비소치나주 여행

김지은 여행플러스 기자(kim.jieun@mktour.kr) 2026. 5. 2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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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밖 소도시 여행 [체코①]
전기자전거 타고 해발 600m 질주
사랑방 같은 동네 양조장 ‘버나드’
산책하다 토끼·노루 만나는 휴양지

여행지가 영화라면 프라하는 ‘천만 영화’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고, 왜 사랑받는지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곳. 그만큼 실패 확률이 낮은 여행지다.

하지만 때로는 독립영화가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기도 한다. 후기도 적고 어떤 장면이 기다릴지 예상되지 않지만, 보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 화려하지 않아도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 말이다.

비소치나 텔치/사진=체코관광청 제공
​프라하가 천만 영화라면 비소치나는 독립영화다. 언덕과 숲, 작은 마을과 느린 풍경이 보여주는 체코의 또 다른 얼굴. 아직은 이름조차 낯설지만 프라하 너머의 체코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발견하게 될 비소치나를 먼저 만나보고 왔다.
비소치나가 어딘데?
비소치나. 대부분이 처음 들어봤을 이름이지만 한국과도 의외의 연결고리가 있는 지역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두코바니’가 바로 이 비소치나주에 있다. 이를 계기로 현지에서는 비소치나가 새로운 체코 여행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비소치나 텔치/사진=체코관광청 제공(@Jan Kasl)
​프라하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 달리면 닿는 비소치나는 체코의 13개 주 중 하나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접경지에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서울의 약 10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52만 명에 불과해 인구 밀도가 아주 낮다. 덕분에 사람에 치이는 프라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전기자전거 타고 해발 600m 질주
비소치나는 고원지대다. 해발 600~800m의 완만한 구릉지가 끝없이 이어져 ‘하이랜드’라고도 불린다. 건물이 빽빽한 도시와 달리, 이곳에선 눈앞에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광활한 풍경이 오히려 더 익숙하다.
​비소치나 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런 장면을 온전히 담는 데는 자전거만 한 것이 없다. 능선을 타고 질주하면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이 가슴을 ‘뻥’하고 뚫는다. 사람보다 바람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비소치나는 체코에서도 손꼽히는 사이클링 지역이다. 특유의 완만한 구릉지 지형 덕분이다. 주 전체에 다양한 난이도의 자전거 코스와 인프라를 촘촘하게 갖추고 있어 초보 여행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비소치나 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대표적인 예가 텔치(Telč)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숲이 이어진다. 자전거를 빌려 산 위의 로슈테인 성까지 약 8km를 달렸다. 시내를 지나 초원과 숲길, 완만한 언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성 앞에 닿는다. 풍경이 계속 바뀌어 지루할 틈이 없다.

체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지역인 만큼 전기자전거 대여소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덕분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비소치나의 바람을 가르며 달릴 수 있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로슈테인 성에 도착한 관광객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날 동행한 가이드는 “텔치는 언덕이 적당히 많고 자전거 도로 관리가 잘 돼 있어 자전거 타기에 최적”이라며 “특히 자전거 도로 중간중간 비어가든이 있어 사이클링 후 맥주를 즐기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라이딩 후 맥주 한 잔은 이 지역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화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사랑방 같은 동네 양조장 ‘버나드’
체코는 전 세계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를 자랑한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실제로 현지인들이 자전거를 타는 이유로 맥주를 꼽을 정도로 체코는 맥주에 진심인 나라다. 전 세계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가 바로 체코다.

필스너 우르켈이나 코젤처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맥주 양조장들과 달리 비소치나에는 지역 기반 소규모 양조장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양조장들은 생산 시설을 넘어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훔플레츠에 위치한 버나드 양조장/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훔플레츠(Humpolec)에 위치한 ‘버나드(Bernard) 양조장’이 그런 곳이다.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가족 경영 독립 양조장으로, 맥주가 만들어지는 전 공정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건 ‘맥주 따르기 클래스’다. 체코에서는 거품과 맥주의 비율, 따르는 방식에 따라 맥주 종류와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전문가에게 그 미묘한 차이를 배우고 직접 신선한 맥주를 따라보는 체험이 가능하다.

맥주 따르기 시범을 보이는 전문가/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양조장에서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갓 양조한 맥주와 체코 전통 음식을 곁들일 수 있는 로컬 명소다. 양조장 투어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로도 북적여 마치 마을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사랑방 같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맥주의 맛보다도 맥주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체코 사람들의 일상에 더 눈길이 간다.

산책로에서 토끼·노루 만나는 숲속 휴양지
포차트키 숲속에 위치한 스바타 카테리나 리조트/사진=스바타 카테리나 리조트
비소치나에서 ‘쉴 틈 없는 여행’은 의미가 없다. 비소치나의 가치는 ‘쉼’과 ‘틈’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코인들은 맑은 공기와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 온전히 고립되고자 비소치나의 숲을 찾는다.

​빠른 속도와 자극에 익숙한 전형적인 한국인이지만, 이번만큼은 용기 내어 느린 세계에 갇혀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비소치나 여행의 명장면을 만났다.

화강암 위에 지어 올린 독특한 모습의 건축물/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물이 맑기로 소문난 리조트의 샘물/사진=스바타 카테리나 리조트
비소치나를 대표하는 웰니스 휴양지 ‘스바타 카테리나 리조트(Resort Svatá Kateřina)’는 해발 700m의 고원지대에 자리해 공기와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17세기 당시 영주의 딸들이 장티푸스를 앓다 이 숲의 물을 마시고 치유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투숙객들은 머무는 내내 이 천연 샘물을 마실 수 있고 리조트의 스파 역시 모두 이 치유의 샘물을 끌어다 사용한다.

리조트의 승마 체험/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100가지 이상의 웰니스 프로그램이 있다. 최근 한국인을 위한 코스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 리조트에는 자동차와 TV가 없다. 투숙객은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전기차 셔틀을 타고 들어와야 하며, 객실 안에 TV를 두지 않았다. 소음과 방해 없이 자연에만 집중하라는 리조트의 철학 때문이다.

​대신 5000년 전통의 인도 정통 아유르베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요가, 스파, 노르딕 워킹, 승마 등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는 액티비티가 가득하다.

리조트 부지에 있는 체코에서 가장 큰 스톤 서클/사진=스타바 카테리나 리조트
창밖에서는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새소리가 들려오고, 산책로에서는 노루와 토끼 등 야생동물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어스름히 노을 지던 오후, 고요한 산책로를 홀로 걷다 새끼 노루 한 마리를 만났다. 눈이 마주친 노루는 급히 방향을 틀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대사도, 극적인 사건도, 증거 사진도 없는 그 평화로운 순간이 비소치나에서 만난 명장면이었다.

이곳에서 ‘쉼’이라는 건 무언가를 비우는 게 아니라 도리어 채워가는 과정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비소치나(체코) = 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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