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AI로 일자리를 만든다고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수만명의 인공지능(AI) 전문가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AI 산업으로 지역 일자리 수만개를 만들겠다”는 정치인이 수십명이다. 또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AI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지역을 ‘피지컬 AI 테스트베드로 내놓겠다”고 공약하는 정치인도 여럿이다. 피지컬 AI는 인간의 행동과 생체 정보를 학습하는데 이를 위해 지역 주민 정보를 기꺼이 내놓겠다니, 지역 이익을 떠나 인류에 공헌하려는 고귀한 희생정신인 걸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을 훑어보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신산업 집중 육성’을 간판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진보와 보수, 다수당과 소수당 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AI, 로봇, 드론, 항공우주 등 개연성이 있든 없든 일단 신산업 명칭을 넣고 보자는 모양새이다. 광역 시도 단위이거나 서울에 가까운 지역,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일수록 이런 공약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에 비해 인구 감소가 이미 진행 중이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기초지자체일수록 신산업, 특히 AI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지방정부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공약이란 점이다. 일단 중앙정부의 사업과 예산을 따 와야 한다. 선거가 “대통령과 친하다” “전국구급 거물이다”라며 경쟁하는 판이 돼 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선거를 했어도 신산업 중심의 첨단도시가 된 예는 들어본 바 없다.
“청년들이 신산업 일자리를 원한다”는 항변도 나올 만하다. 그런데 제대로 알아본 것이 맞을까? 일본의 마을 만들기 전문가 기노시타 히토시는 자신의 책 <마을 만들기 환상-지역재생은 왜 이렇게까지 실패하는가>에서 지역 쇠퇴의 큰 원인으로 ‘청년을 도망치게 하는 노동착취 일터’를 꼽는다. 좋은 인재가 필요하다면서 월급은 많이 주기 싫고, 종신고용은 담보할 수 없으면서도 회사에 충성하길 바라고, 전력을 다해 일하라면서 교육투자는 하기 싫고, 적극적 인재를 원한다면서 자신에게는 순종하기 바라는 경영자들이 지역을 꽉 잡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몇년 전 ‘일·생활 지원 정책’의 지역별 실행 차이를 연구했을 때 일이 떠오른다. 수도권 정책 담당자는 “비혼자도 결혼휴가 제도를 쓸 수 있는지, 반려동물 장례휴가가 필요한지 등이 이슈”라고 했고, 지방도시 담당자는 “가족친화 정책이 있냐고 물으면 ‘여자라곤 미스 김 하나뿐인데 그런 게 필요하냐’고 되묻는 사장님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청년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신산업’이라는 이름일까, 아니면 이런 일터의 차이일까.
현재 근로조건 감독은 지방정부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해 변화를 유도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더구나 고용노동부도 감독 권한 일부를 단계적으로 지방정부에 이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중앙정부 일을 떠넘기느냐”고 반발하기보다, 이를 지역 일자리의 질을 높일 기회로 받아들이는 지방정부는 없을까. 사실 이번 선거에서 이런 공약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후보를 한 명 발견하긴 했다. 공교롭게도 수도권 후보였다. 늘 이런 식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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