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청소년 위해 미용기술 나눔기부 계속”

임훈 기자 2026. 5. 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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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남 대한민국 미용 명장

- 미용인 권익 향상·후학 양성에 매진
- 일흔 넘은 나이에도 봉사·교육 왕성

신화남 명장이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0여년 미용인으로 살아온 삶의 자취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효 선임기자


부산진구 부전동에 자리 잡은 한 미용실. 대한민국 미용 부문 명장인 일흔 두 살 신화남 대표가 운영하는 신화남뷰티갤러리는 미용실이라기보다 이름 그대로 갤러리에 더 가깝다. 수백 점의 헤어아트 작품과 전통의상, 액세서리 등이 건물 7층 사무실에 가득하다. 40여년 미용분야 한길을 걸어온 신 명장이 후학에게 미용기술을 전수하고 미용인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유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30평의 공간은 미용실과 연구실로 운영 중이다.

“30여 명의 직원을 두고 미용업을 하던 때도 있었어요. 이젠 미용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직원 두 명이 예약손님이 있을 때만 근무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지요. 30년 넘게 쉼 없이 사업을 했으니 이젠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과 미용기술 전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신 명장은 지금도 하루 세 시간은 꼭 일을 한다. 2008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앞으로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마음먹었다. 최근 갑상선 이상까지 생기면서 강의는 줄였지만 봉사는 놓지 않았다. 혼자 염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가 머리를 다듬고 염색을 해준다. 그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1956년생인 그는 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 부산의 한 은행에 입사했다. 부산에서 근무를 시작했지만 온라인 은행 업무를 배우기 위해 서울 근무를 자원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사촌언니가 하던 미용일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평생직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아버지는 끝까지 반대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어머니의 도움으로 결국 1980년대 초 미용을 배우기 시작해 1년 만에 자격증을 땄다. 이내 부산으로 내려와 미용실에서 2, 3년 일하면서 기술을 익혔고 곧바로 과감하게 개인 미용실을 열고 미용학원을 함께 운영했다. 일반적인 미용인과는 다른 과감한 결단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용은 대접받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죠. 결국 교육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후학을 키웠어요.”

전국 곳곳에서 제자들을 배출했다.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재취업을 도왔고 중장년층에게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열어줬다. 그 공로로 2007년 대통령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석탑산업훈장까지 받았고 이듬해 미용분야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는 현재 2015년 만든 신화남나눔봉사단 봉사활동과 청소년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1985년 한 청소년 직업학교에서 미용 재료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을 계기로 그는 수입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다. 그 약속을 40년 가까이 지키고 있다. 부산시와 협약을 맺은 비영리민간단체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 봉사단은 집수리 봉사 현장에 함께 가 미용봉사를 하고 경로당을 돌며 어르신 머리를 손질한다. 현재 봉사단 회원은 100여명으로 대부분 현직 미용실 원장들이다. 나이 예순이 넘은 원장들도 봉사가 있는 날이면 가게 문을 잠시 닫고 현장으로 향한다. 신 명장이 특히 마음을 쏟는 건 청소년이다. 부산 강서구 청소년자립센터에 음식과 생필품을 후원하고 특수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육기부에도 꾸준히 참여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어릴 적 뭐든 이웃과 나누던 부모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온 일이다.

2년 전 그는 ‘한 해를 빛낸 대한민국 명장상’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수상보다 ‘미용인의 사회적 가치’를 더 높이는 게 가치있다고 말한다. 부산시 명장 1호인 그는 수십 차례 전시회를 열고, 고등학교에 헤어 작품 수백 점을 기증했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전국을 다닌다. 그리고 여전히 봉사 현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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