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 밥 한 그릇, 8년을 남해에서 버틴 원동력이었다 [박수진의 나를 살린 사람들]

박수진 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귀촌 전문가 2026. 5. 2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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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의 나를 살린 사람들>
나의 남해 엄마, 양세령
<나를 살린 사람들>은 남해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다. 책방이 8년간 지족구 거리를 지킬 동안, 그 앞에서 그보다 더 오래 굳건히 거리를 지켜온 식당이 있다. 두 번째 인터뷰로 만나볼 사람은 내가 남해 엄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마루옥 대표, 양세령(57) 씨다.
내가 남해 엄마라고 부르는 마루옥 안주인 양세령 씨. /박수진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노년을 향해서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남해에서 자라고 남해에서 학교에 다니고, 남해에서 장사를 하는 양세령이라고 합니다."

- 빠르게 질주하시다니요. (웃음) 저는 평소대로 '오마니'라는 호칭으로 부를게요. 고향이 지족이신가요?

"아니,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5살 때 아버지 고향인 남해로 왔지. 지족에는 2012년도에 장사하면서 왔으니까, 햇수로 한 15년 됐나 보다."
집밥이 생각나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남해 마루옥. /박수진

- 마루옥 이전에도 자영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남해대교 쪽에서 찻집을 했었고, 그전에 언니랑 고깃집도 같이 했었고. 우리 엄마가 기사식당을 해서 자연스럽게 자영업을 하게 됐나 봐. 다 합치면 거의 20년이 넘었네."

-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반찬 해먹는 걸 좋아했어. 서울에서 처음 자취할 때, 나가서 뭘 사 먹어도 이상하게 늘 허기진 느낌이 들었어. 어느 날 배추 한 통을 사다가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김치를 담가서 밥을 먹는데, 이제야 배부른 느낌이 들더라고. 그때부터 혼자 해먹기 시작했던 것 같아."

- 처음 가게 왔을 때 일단 양에 놀랐고, 행주가 진짜 깨끗한 거예요. 가게가 참 단정하다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가 워낙에 깨끗한 분이어서 걸레가 항상 하얀색이었거든.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청결에 신경 쓰는 편이고, 손님들도 집에 온 것 같다고, 집 밥 먹는 기분이라고 그래."
마루옥의 음식은 정갈하면서도 양이 많다. /박수진

- 진짜 저를 딸처럼 대해주시는데, 손님이 아닌 가족으로 처음 느끼신 건 언제일까요? 우리도 벌써 10년이네.

"처음 봤을 때부터 참 똘망 똘망하게 예쁘게 생겼다 했어. 왜 그냥 좋은 사람 있잖아. 그냥 예쁜 사람. 가게에 삼겹살 먹으러 오라고 부르고, 반찬 새로 하면 챙겨주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같이 병원 갔을 때 간호사가 '따님이신가 봐요~'하니, '모르는 사람한테도 인정받았으니 진짜 내 딸 맞다.' 싶었지."

- 맞아. 나도 남해에 엄마 한 명 더 생겨서 좋아. 그럼 지금까지 차려온 밥 중에 기억에 남는 한 상, 있으세요?

"엄마 여기 모시고 와서 밥 차려줬을 때. 오늘따라 엄마 생각 많이 나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한테 제대로 밥을 차려준 적이 없었어. 그때 이제 밥집을 하니까 반찬 다 내가 해서 한 상 차려드렸지. 엄마가 항상 나한테 꽃 같은 딸이라고 그랬단 말이야. 무조건 내 편인 사람. 꽃같이 살아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긴 쓴 것 같아. 내가 잘사는 거 보고 죽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그랬는데 그걸 못해서 좀 미안하지. 엄마 돌아가신지 지금 한 10년 됐나 보다."

- 나도 잘 해야 되는데. 그래도 서울 엄마 왔을 때 여기 와서 같이 불고기전골 먹은 건 참 잘한 일 같아. 마루옥을 하시면서 힘이 된다고 느낀 적은 언제예요?

"역시 손님들이 진짜 맛있게 드시고 가실 때인 것 같아. 가끔 "진짜 밥 먹은 것 같다"고, "진짜 살 것 같다"고 하고 갈 때. 그럴 때 좀 뭉클하지."
내가 남해 엄마라고 부르는 마루옥 안주인 양세령 씨다. /박수진

- 오마니는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항상 잘 베푸시고,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 잘 이어가시잖아요. 내 마음이 넉넉해야 하는 일일 텐데, 그 원천은 어디서 오나요?

"엄마가 그렇게 하고 사셨어. 없는 반찬에도 지나가는 사람들 꼭 밥 한 그릇씩 먹이고, 사람을 잘 챙겼어. 그걸 보면서 배웠고, 나도 주는 게 참 행복하더라고. 막 많이 있어서 주는 게 아니잖아. 근데 요즘에는, 상대방이 너무 불편해하지 않게끔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해주고 싶은 마음과 절제하는 마음의 균형을, 수진이 보면서 많이 배워."

- 제가 더 많이 배워요. 책방 힘들다고 어리광도 부리고. 오마니 없었으면 이렇게 오래 있지 못했을 거야.

"나도 여기서 친구도 없고 외롭기도 하고 힘든 부분이 있거든. 근데 너를 보면 여기가 불모지 같은 곳인데, 남해에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혼자서 이렇게 해 나가는 게 대단하고 참 잘한다 싶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고 진짜 응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수진이도 저렇게 잘 견디고 있는데 내가 약해지면 안 되겠다'싶기도 하고, 약간 엄마의 마음으로 내가 잘 버티는 걸 보여줘야 쟤도 더 잘 버티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어."

- 저 그만 울리세요. (웃음) 남해에서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이 사람 덕분에 내가 여기서 잘살고 있구나" 싶었던 순간.

"일단 가게 건물주 어머니께 너무 감사하지. 상황이 안 좋을 때 월세를 1년 가까이 밀렸던 적도 있었거든. 그래도 군말 없이 기다려 주셨어. 굉장히 의리가 있는 분이야. 단골 할머니들도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주셔. 우리 가게 음식이 특별한 음식이 아니잖아. 근데 나라는 사람 때문에 오는 거지. 나가면서 저기 인형한테 "곰돌이야 곰돌이야, 잘 있었나. 내가 또 올게." 하시고, 어떨 때는 "아이고 내가 또 오겠나" 하는 분도 있고 그러면 마음이 안 좋지. 신발을 신고 들어오게 바꾼 것도 다 할머니들 때문이야. 내가 이까짓 청소하는 게 뭐라고 할머니들을 저렇게 엎드려 신발 벗게 하나 싶어서. 스스로 너무 부끄럽더라고."
마루옥 식당 주방 풍경. /박수진

- 신발 신고 들어오는 지금도 좋지만, 전에 신발 가지런히 정리해 주시는 것도 감동이었어요.

"엄마가 항상 집에 있을 때 신발을 그렇게 가지런하게 놓고, 내가 학교 가기 전에 깨끗하게 닦아놓고 그랬거든. 그렇게 했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걸 우리 손님들도 느꼈으면 해서 신발을 바로 놓으면서 기도도 했어. 이 신발을 신고 가시는 분들이 오늘 하루 무사히 마치고 집에까지 잘 가서 잠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들 안 아팠으면 좋겠다 하고."

- 지금의 나를 살게 해준 사람을 한 명 떠올린다면, 역시나 엄마일까요?

"엄마지. 세상에 무조건 내 편인 사람이 그렇게 있을까. 이혼하기 전에 남편이랑 크게 싸운 날 밤이었어. 자정이 거의 다 됐는데 엄마가, 집에 가자, 하더라고. 짐 챙기지도 말고, 그냥 가자. 내 새끼 이런 꼴 당하는 거 못 본다고. 둘이 택시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엄마가 소주를 한 병 시키더라. 종이컵에 한 잔씩 따라놓고, 울지 마라 내 딸아, 엄마랑 살고 돈 벌고 나중에 애들 데리고 오면 된다고. 지금도 힘들 때마다 그 터미널 냄새가 기억나. 다 생각이 나. 나중에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 순간 누가 내 손을 잡아준 것 자체로 힘이 됐어. 내가 수진이한테도 마찬가지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내 편이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

- 우리 엄마가 식당 할 때 밥 한 그릇 4000원에 팔면서, 택배 부칠 때 꼬깃꼬깃 모아둔 돈 8만 원, 10만 원, 어쩔 땐 6만 원도 보냈어. 목 늘어난 거 입지 말고 예쁜 옷 사 입으라고. 내가 너한테 옷 줄 때도 그런 마음이야. 지금도 예쁘지만, 더 예쁘게 단정하게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

-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이네…. 마지막으로, 오마니에게 남해는 어떤 곳인가요?

"나한테 남해는 고향이고, 엄마가 있는 곳이고, 언제나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도는 곳이지. 그래서 어디 가고 싶지 않고, 계속 남해에서 있으면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 자리를 지키는 게 미련해 보이고 힘들 수 있어도, 그에 대한 보답처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이 생기긴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항상 수진이 볼 때마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어."
남해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은 내가 8년을 버틴 원동력이 됐다. /박수진
깊은 대화 속에, 어느덧 모녀 앞에는 젖은 휴지가 수북이 쌓였다. 나의 비빌 언덕, 무조건 내 편. 언젠가 오마니께 예쁜 옷 한 벌과 따뜻한 밥 한술 선물해 드리고 싶다. 세령 씨의 어머니, 이두순님께도. 얼굴도 모르는 당신의 사랑이 나에게까지 와 넘쳐흐르고 있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

/박수진 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귀촌 전문가

☞ 필자는 아름다운 섬 남해를 닮고 싶은 작은 서점, 아마도책방을 운영한다. 반려묘 바람, 노을, 별, 달과 함께 남해에서 어느덧 열 번째 해를 맞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