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톱10' 실적·주가 보니 … 삼전닉스 아직도 가성비 있네

"프로가 그것밖에 못하냐."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다. 사상 유례없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을 맞아 급등세를 연출하는 국내 주식시장 뒷얘기다. 수백 개 종목을 분석하고 현장 발품을 팔아 종목을 고른 펀드매니저들이 초보 개인투자자들에게 연전연패 중이다. 개인들이 무장한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코스피200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막강한 화력을 뽐내고 있어서다.
매니저들의 정교한 주식 포트폴리오는 코스피200을 좇는 ETF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 코스피는 2026년 들어 5월 21일까지 80% 급등했다. 한때 8000을 찍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또다시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며 코스피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시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마구 먹어치우는 하마'다. 엔비디아가 매 분기 역대 최고 매출을 갈아치울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납품 물량도 그만큼 늘어나고, 주가는 다시 한번 폭발한다.
'AI 제왕' 엔비디아의 '부하들'은 삼전닉스 외에도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실제 만들어주는 대만 TSMC, 그런 TSMC에 반도체 장비를 파는 네덜란드 ASML, 지금은 경쟁자지만 시장이 커질수록 함께 성장하는 브로드컴·AMD, GPU끼리 소통을 잘 시켜주는 마벨, AI로 인해 중앙처리장치(CPU) 수요가 늘어난 인텔, 가장 후방에서 장비를 지원하는 램리서치까지 모두 '한 가족'이다.
이들은 글로벌 반도체 업종 내에서 시가총액 기준 '톱10' 기업들이다. 분산투자자라면 10곳이 두루 포함된 ETF를, 수익률 게임에서 제대로 승부를 보려면 특정 종목을 선정해야 한다. 다만 실적 대비 주가를 따져 저평가된 종목을 고른다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 엔비디아가 만든 AI 반도체 톱10
톱10을 팹리스(설계 전문)·파운드리(위탁생산)·D램·장비와 이들 사업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IDM) 등 5개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그 유명한 엔비디아·브로드컴·AMD·마벨이 팹리스 업체다. TSMC는 유일하게 파운드리 업체로 구분되는데, 삼성전자와 인텔이 도전자다. ASML·램리서치가 장비 회사이며, 삼성전자와 인텔은 각각의 국가를 대표하는 IDM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인 HBM에서 독점주이며 D램 회사로 분류된다. 엔비디아 GPU 하나에는 HBM이 6~8스택씩 탑재된다. 엔비디아의 역대급 실적은 HBM의 수요가 여전히 폭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AI 시장(주로 엔비디아)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은 'HBM3E'다. 엔비디아 '블랙웰 울트라' 시리즈를 비롯해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들이 이 제품을 주로 쓴다. SK하이닉스는 이 제품 점유율이 71%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은 각각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ASML과 램리서치는 반도체(칩)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칩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를 독점 공급하는 상장사들이다.
AI 시장이 폭발해도 각 상장사의 실적과 주가가 폭등하는 시기는 다르다. 그래서 주가수익비율(PER)·주가순자산비율(PBR)·잉여현금흐름 대비 시총(PFCF) 등으로 주가 저평가 여부를 본다. 매출증가율·매출총이익률을 통해 성장 속도를 가늠하고, 배당수익률은 주주환원 지표로 쓰인다.

◆ 삼전닉스와 엔비디아 '60·60클럽'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빠르고 제대로 실속을 챙긴 상장사는 SK하이닉스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52조6000억원으로, 2025년 1분기 대비(1년 새) 198% 폭증했다. 매출총이익률(마진율)은 무려 79.3%다. 마진율은 제품 자체의 수익성을 뜻하는데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HBM의 위력을 알 수 있다. 그 대단한 엔비디아 마진율은 지난 1분기에 74.9%로 다소 주춤했다. 직전 분기에는 75%였다.
엔비디아는 이르면 2026년 하반기에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 시리즈를 내놓는다. 여기엔 HBM4가 장착되는데,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마이크론이 치열한 수주전을 펼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와 여의도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가 기존 점유율 1등을 사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6년 말 예상 PER 기준으로도 톱10 중 가장 싼 주식이 SK하이닉스(6.87배)다.
5월 21일 PBR 기준으로는 삼성전자와 인텔처럼 공장 등 많은 자산과 설비가 있는 IDM들의 주가가 저렴해 보인다. 그러나 PBR은 주가 상승 가능성을 내다보는 지표라기보다 주가 저점을 알려주는 수치다. 두 기업 모두 PBR이 역사적 '고점' 수준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경우 PBR 3배를 주가 고점으로 판단해왔는데, 현재 3.5배를 지나가 거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톱10 중 마진율이 60% 이상인 상장사는 5곳이며, 이들 모두가 시총 상위 5곳이다. 마진율이 장기적으론 주가 수준을 결정한다는 논리에 들어맞는다. 이 중 삼성전자만이 유일한 IDM이다. IDM은 항상 막대한 설비투자와 많은 인건비에 시달린다. 노조 리스크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마진율 61.2%(2026년 1분기)를 기록했다. 게다가 분기 매출성장률 69%를 달성하며 '60·60클럽'에 가입했다. 최근 분기 실적 기준으로 이 클럽에는 삼전닉스와 엔비디아 등 3곳만 초대됐다.
◆ 현금 대비 주가 엔비디아 제일 저렴
블룸버그와 구루포커스를 비롯해 각 사의 예상 실적 안내(가이던스)를 분석해보니 잉여현금흐름(FCF) 기준 주가가 가장 저렴한 상장사는 엔비디아로 나타났다. 현재 시총으로 올해 예상 FCF를 나눠서 계산한 지표(PFCF)를 통해서다.
엔비디아가 2027회계연도 1분기(2026년 2~4월) 실적 발표 때 제시한 2026년 FCF를 기초로 나온 PFCF는 27배다. 기본적으로 공장 설비투자(CAPEX) 부담이 작은 엔비디아가 AI 사업의 '주춧돌'인 GPU를 더 많이 팔 수 있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40배, 43배다. 삼전닉스의 PFCF가 과거 기준에 머물러 있어 미국 상장사보다 높게 나온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 증권가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의 가이던스 발표는 주가 변동성을 낮추는 긍정적 요소"라며 "폭등과 폭락이 반복되는 국내 주식시장과 달리 미국 시장은 분기마다 경영진이 향후 실적 전망을 수치로 제시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톱10 중 AMD와 인텔은 배당을 주지 않는다. 반도체처럼 고속 성장 기업들은 주로 연구개발(R&D)이나 CAPEX에 돈을 쓰느라 배당 등 주주환원액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TSMC의 배당수익률이 5월 21일 기준 1.11%로 유의미한 수치를 보여준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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