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인간 ‘애증 관계’…기원전 1400년 전부터 시작됐다

도심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비둘기는 성경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인간과 오랫동안 관계해 온 동물이다. 가장 오래된 비둘기의 가축화 증거는 기원전 4~1세기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 유적에서 발견됐는데, 최근 키프로스에서 발견된 뼈 표본을 분석한 결과 비둘기 가축화 시기가 최소 1000년은 앞설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앤더슨 카터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은 “키프로스 남동쪽 항구 도시인 ‘할라 술탄 테케’ 유적지에서 발견된 비둘기 유해를 분석한 결과, 기원전 1400년경 청동기 시대 비둘기가 이미 인간과 밀접하게 공생하며 반가축화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난 21일(현지시각) 고고학분야 국제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밝혔다.
할라 술탄 테케는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650~1150) 이집트, 튀르키예를 오가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연구진은 총 183개의 비둘깃과 뼈 표본을 발견했는데, 뼈의 높이·너비·폭을 측정해 종을 유추한 결과, 바위비둘기 뼈가 159개, 유라시아멧비둘기가 2개, 종을 식별할 수 없는 표본이 22개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바위비둘기 뼈는 최소 55마리인 것으로 추정됐다. 바위비둘기(Columba livia)는 리비아가 원서식지인 종으로, 이 종을 개량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집비둘기다.

연구진이 바위비둘기로 식별한 뼈 159개에서 성체의 비율은 82%로 가장 많았고,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아성체와 성체는 약 18%로 조사됐다. 카터 연구원은 “일부 뼈는 새끼 비둘기 것이었는데, 이는 주민들이 새를 직접 번식하고 관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어 뼈 표본 37개에서 질소·탄소 함량도 분석(안정동위원소 분석)한 결과, 비둘기의 질소 수치는 인간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둘기가 자연 상태의 먹이보다 인간이 제공하거나 흘린 곡물, 씨앗을 주로 섭취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비둘기들의 동위원솟값은 가축화된 소와 비슷하게 매우 좁은 범위를 보였는데, 이는 비둘기들이 특정 구역 내에서 일관된 식단을 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비둘기 뼈의 상당수가 도시 지역이 아닌 종교적·제의적 공간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뼈들은 불에 탄 흔적이 있었으며, 다른 동물 뼈나 화려한 식기류와 함께 발견됐다. 연구진은 당시 비둘기가 단순한 식량 자원을 넘어, 의례 제물로 바쳐졌을 수 있다고 봤다. 키프로스 섬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관장하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 주로 아프로디테를 숭배했다. 아프로디테 역시 비둘기와 산비둘기를 좋아해, 종종 어깨나 손에 비둘기들을 올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안겔로스 하지쿠미스 ‘키프로스 연구소’ 박사는 “이번 연구는 비둘기 가축화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카터 연구원은 “오늘날 전 세계 어디서나 비둘기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그들을 의도적으로 번식시켰기 때문”이라며 “이번 연구가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시작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로, 이후 비둘기들의 생태적 지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국립생물자원관이 낸 ‘야생조류 현안 대응 및 공존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집비둘기는 인간 활동이 활발하고 먹이 자원을 예측할 수 있는 장소에서 높은 밀집도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조사에서 집비둘기 개체 수 평균은 서울시 ‘먹이주기 금지제도’(2025년 3월부터 시행) 지정 구역보다 비지정 구역에서 더 높았는데, 비지정구역 가운데서도 특히 서울역, 청량리역, 올림픽공원처럼 과거부터 지속해서 먹이를 제공해온 공간에서 개체군 밀집도가 높게 나타났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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