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품은 초록 심장 … 낯선 체코의 매력에 스며들다

여행지가 영화라면 체코 프라하는 '천만 영화'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고, 왜 사랑받는지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곳. 그만큼 실패 확률이 낮은 여행지다. 하지만 때로는 독립영화가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기도 한다. 후기도 적고 어떤 장면이 기다릴지 예상되지 않지만 보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 화려하지 않아도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 말이다. 프라하가 천만 영화라면 비소치나는 독립영화다. 언덕과 숲, 작은 마을과 느린 풍경이 보여주는 체코의 또 다른 얼굴. 아직은 이름조차 낯설지만 프라하 너머의 체코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발견하게 될 비소치나를 먼저 만나보고 왔다.
비소치나. 대부분이 처음 들어봤을 이름이지만 한국과 의외의 연결고리가 있는 지역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두코바니'가 바로 이 비소치나주에 있다. 이를 계기로 현지에서는 비소치나가 새로운 체코 여행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프라하에서 차로 1시간30분가량 달리면 닿는 비소치나는 체코의 13개 주 중 하나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접경지에 자리한다. 면적은 서울의 약 10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52만명에 불과해 인구 밀도가 아주 낮다. 덕분에 사람에 치이는 프라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비소치나는 고원지대다. 해발 600~800m의 완만한 구릉지가 끝없이 이어져 '하이랜드'라고도 불린다. 건물이 빽빽한 도시와 달리 이곳에선 눈앞에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광활한 풍경이 오히려 더 익숙하다. 이런 장면을 온전히 담는 데는 자전거만 한 것이 없다. 능선을 타고 질주하면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이 가슴을 '뻥'하고 뚫는다. 사람보다 바람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비소치나는 체코에서도 손꼽히는 사이클링 지역이다. 특유의 완만한 구릉지 지형 덕분이다. 주 전체에 다양한 난이도의 자전거 코스와 인프라를 촘촘하게 갖추고 있어 초보 여행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텔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숲이 이어진다. 자전거를 빌려 산 위의 로슈테인 성까지 약 8㎞를 달렸다. 시내를 지나 초원과 숲길, 완만한 언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성 앞에 닿는다. 풍경이 계속 바뀌어 지루할 틈이 없다. 체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지역인 만큼 전기자전거 대여소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덕분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비소치나의 바람을 가르며 달릴 수 있다.
이날 동행한 가이드는 "텔치는 언덕이 적당히 많고 자전거 도로 관리가 잘돼 있어 자전거 타기에 최적"이라며 "특히 자전거 도로 중간중간 비어가든이 있어 사이클링 후 맥주를 즐기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라이딩 후 맥주 한잔은 이 지역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화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지인들은 자전거를 타는 이유로 맥주를 꼽을 정도로 체코는 맥주에 진심인 나라다. 체코는 전 세계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필스너 우르켈이나 코젤처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맥주 양조장들과 달리 비소치나에는 지역 기반 소규모 양조장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양조장들은 생산 시설을 넘어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훔폴레츠(Humpolec)에 위치한 '베르나르트(Bernard) 양조장'이 그런 곳이다.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가족 경영 독립 양조장으로 맥주가 만들어지는 전 공정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건 '맥주 따르기 클래스'다. 체코에서는 거품과 맥주의 비율, 따르는 방식에 따라 맥주 종류와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전문가에게 그 미묘한 차이를 배우고 직접 신선한 맥주를 따라보는 체험이 가능하다. 양조장에서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갓 양조한 맥주와 체코 전통 음식을 곁들일 수 있는 로컬 명소다. 양조장 투어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로도 북적여 마치 마을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사랑방 같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맥주의 맛보다도 맥주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체코 사람들의 일상에 더 눈길이 간다.
비소치나에서 '쉴 틈 없는 여행'은 의미가 없다. 비소치나의 가치는 '쉼'과 '틈'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코인들은 맑은 공기와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 온전히 '고립'되고자 비소치나의 숲을 찾는다. 빠른 속도와 자극에 익숙한 전형적인 한국인이지만, 이번만큼은 용기 내어 느린 세계에 갇혀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비소치나 여행의 명장면을 만났다.

비소치나를 대표하는 웰니스 휴양지 '스바타 카테르지나 리조트(Resort Svata Katerina)'는 해발 700m의 고원지대에 자리해 공기와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17세기 당시 영주의 딸들이 장티푸스를 앓다 이 숲의 물을 마시고 치유됐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투숙객들은 머무는 내내 이 천연 샘물을 마실 수 있고 리조트의 스파 역시 모두 이 치유의 샘물을 끌어다 사용한다. 이 리조트에는 자동차와 TV가 없다. 투숙객은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전기차 셔틀을 타고 들어와야 하며 객실 안에 TV를 두지 않았다. 소음과 방해 없이 자연에만 집중하라는 리조트의 철학 때문이다. 대신 5000년 전통의 인도 정통 아유르베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요가, 스파, 노르딕 워킹, 승마 등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는 액티비티가 가득하다. 창밖에서는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새소리가 들려오고 산책로에서는 노루와 토끼 등 야생동물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어스름히 노을 지던 오후, 고요한 산책로를 홀로 걷다 새끼 노루 한 마리를 만났다. 눈이 마주친 노루는 급히 방향을 틀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대사도, 극적인 사건도, 증거 사진도 없는 그 평화로운 순간이 비소치나에서 만난 명장면이었다. 이곳에서 '쉼'이라는 건 무언가를 비우는 게 아니라 도리어 채워가는 과정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체코 여행 100배 즐기는 법
1. 인천~프라하 노선은 아시아나항공이 주 7회 직항 운항 중이다. 프라하까지 비행 시간은 11~12시간 정도 걸린다.
2. 체코는 유로존 국가가 아니어서 유로 대신 '코루나(CZK)'를 사용한다. 관광지 일부에서는 유로 결제가 가능하지만 환율이 불리한 경우가 많아 코루나 사용이 유리하다.
3. 비소치나 지역은 대중교통보다 차량 이동이 훨씬 편리하다. 프라하에서 텔치까지는 차로 1시간30분~2시간 정도 걸리며 버스로 이동할 경우 환승 포함 3시간 이상 소요된다.
[비소치나 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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