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 ‘세력권 분할’ 아닌 ‘패권 경쟁 장기전’에 대비해야”
“‘천하 삼분지계’ 가능성 낮아…韓, ‘적극적 안정자’ 역할로 경쟁 장기화 대비해야”
“미중 갈등 속 진짜 함정은 ‘제한 전쟁’의 유혹…韓, 자유진영의 병기창 역할해야”
“외교안보, 대선 직전 벼락치기 과목…참모 대신 대통령 스스로 전문가 돼야”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대한민국을 향한 압박도 커졌다. 중동 사태와 한미 관세협상의 후속 과제는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 서반구를, 중국은 아시아를, 러시아가 유럽을 각각 나누어 담당할 것이라는 이른바 '천하 삼분지계'의 세력권 정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될 정도다. 정부의 모호한 외교·안보 좌표가 대내외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동치는 국제질서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중장기적인 국가 대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홍태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 연구원(1998년생)은 5월2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세력권 정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일축하면서도, 미중 갈등에 숨겨진 '제한 전쟁' 유혹의 함정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이 됐다'는 과신이 빠르게 자라고 있다"며 "미중 갈등에서 상호확증파괴의 대규모 핵전쟁은 피하는 대신 제한적인 무력 충돌은 시도해볼 수 있다는 오판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홍 연구원은 "한미일-북중러 구도 속 진영 선택에 그치지 말고 '적극적 안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지역별·대내외 전략을 연계하는 큰 그림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 해법이 아닌 장기 목표를 역산해 오늘의 선택을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홍 연구원은 미국 스탠퍼드대 조기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사를 땄다. 현재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미국 비영리·비당파 싱크탱크인 FPRI에서 근무를 병행 중인 국제질서 전문가다. 국내에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등에게 조언하며 범보수 진영 외교·안보 신진 전략통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을 어떻게 보고 있나.
"지난 14~1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결정적 돌파구는 없었지만 결정적 파국도 없었다. 양국 관계가 '건설적인 미중 전략적 안정 관계'로 규정되면서 표면적인 휴전을 이뤘다. 하지만 휴전 기간이라고 해서 미중 간의 경쟁 구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갈등 관리'와 '구조적 경쟁의 소멸'을 혼동해선 안 된다.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전략적 안정'이란 프레임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이런 미중관계를 향후 3년 이상의 운영 기본 틀로 삼자고 못 박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적 안정 의지를 장기적인 운영 체계로 고정시켜서 다음 미국 행정부까지 이어질 베이스라인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란 사태 관련 미중 양국의 셈법은 어떻게 분석하나.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각자 '원하는 것'을 전부 얻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것'은 가져갔다. 이란 전쟁에 발이 묶여 있는 미국으로선 추가 위기 없이 현 상황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 가시적인 성과로는 보잉 여객기 200대 구매,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 지지, 이란 핵 보유 불가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이란 전쟁을 종식시킬 방안에 도달하진 못했다. 동시에 주목할 부분은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못 박은 점이다. 중국은 미중 갈등의 현상 유지를 받아들으며 겉으로는 안정을 수용하고 있지만, 뒤에선 점진적인 현상 변경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해 토머스 크리스텐슨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중국 엘리트 사이에선 '미중이 대등한 강대국이 됐다'는 과신이 빠르게 자라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한 이유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할까.
"그렇다. 겉으론 평화를 호소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기존 패권국이 신흥 강대국에게 자리를 내어주라'는 요구를 우아하게 포장한 것이다. 사실 스파르타의 두려움은 아테네의 단순한 국력 증강이 아니라, 그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패권 추구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패권 전이에 대한 선행 연구들 앞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강대국 전쟁의 위험은 '패권 전이'라는 거시적 구조만큼이나, 양측 모두 '내가 단기간에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오판에서 자주 발생한다. 1차 세계대전 때도 강대국들은 전쟁이 크리스마스 전에 끝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런 빠른 승리에 대한 착각이 가장 위험하다. 이런 차원에서 미중 갈등의 진짜 함정은 '제한 전쟁'의 유혹이다."
'제한 전쟁'의 위험을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안정-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이 적용된 개념이다. 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해서 전면전을 펼치는 것은 두려워 전략적 안정성이 유지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제한적 무력 충돌은 쉽게 시도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학계에선 동아시아에서 유독 제한 전쟁이 현실화되기 쉽다는 분석도 나온다. 냉전 시대 유럽의 평지와 달리 동아시아는 바다를 매개로 한 해양 전구(maritime theater)가 많은데, 바다라는 경계가 전면 핵전쟁으로의 확전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정밀 타격 무기나 무인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이 타격 목표만 파괴해 제한적 군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오판하기도 쉽다.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이 커지면서 이런 제한 전쟁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과 국방전략(NDS)은 어떻게 평가하나. '신고립주의'라는 해석도 있는데.
"신고립주의라는 해석은 신중해야 한다. 미국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고립적인 국가였던 적이 없다. 오히려 주변 국가들에게 호전적이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적성국이 자기 세력권 안에서 직접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에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과거 독일 제국이 멕시코 혁명 등을 활용해 미국을 서반구에 묶어두려 한 것처럼,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의 베네수엘라·쿠바·니카라과 등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미국이 같은 렌즈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이 최근 발표한 NSS와 NDS는 역사적 패턴을 이어받았다. 동맹의 부담 분담을 요구하고, 미국 본토와 서반구 방위를 최우선 라인으로 지정하며 '트럼프판 먼로 독트린'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크게 의외는 아니다. 당장 중국이 아시아를 최우선으로 보듯이, 미국이 서반구를 강조하는 것은 자기 앞마당을 우선시하는 강대국의 본능적 행위다."
한국의 NSS는 어떻게 보나.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과거 한국의 NSS는 '위협 진단을 아예 생략한 문서'라고 평가받은 만큼 목표와 정책은 나열됐지만, 왜 위협받는지와 어떤 도전에 대한 해법인지가 연결되지 않았다. 위협 진단과 우리의 목표, 가용한 수단을 정렬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별 전략의 연계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같은 강대국들은 아시아·유럽·중동·아프리카 전략을 통합적으로 연결해 운영한다. 우리는 아직 그런 큰 그림이 부족하다. 방산, 조선, 에너지, 물류를 매개로 유럽, 동남아, 중동 전략을 하나의 사슬로 엮어야 한다. 대내외 전략의 융합도 필요하다. 특히 해저 케이블 안전, 물류 선박 통행, 중국의 사회적 침투 공작,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의존도 같은 문제는 대내외 정책을 함께 연결해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반도 천동설'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외교안보 담론은 여전히 남북관계에 고착돼 있거나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가정을 세우는데, 이를 깨야 한다."

대만을 둘러싼 한국의 입지는 어떤가.
"트럼프 시대에 한국은 대만 사태에 휩쓸릴 수 있다는 공포, 반대로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동시에 존재한다. 동맹 이론으로 말하면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다. 해답을 찾으려면 두 가지를 인지해야 한다. 첫째, 미국이 대만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의 대만 상실은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동맹 신뢰성에 입히는 타격은 크다. 미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둘째, 한국에게도 대만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대만이 중국 영향권에 편입되면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해협)이 무너지고,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이 가속화된다. 또 대만은 첨단 반도체 산업의 핵심 노드(node)로서 이곳의 붕괴는 우리 산업과도 직결된다."
대만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의 독자적인 '대만 원칙'이 필요하다. 이때 '친중 대 친미'가 아니라 '현상 유지 대 현상 변경'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켜내야 할 현상은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노드로 남고, 제1도련선의 차단점 역할을 하며, 공식 독립이 아닌 사실상의 별개 정치체이자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로 기능하는 것이다. 자극적인 레토릭이나 기싸움 대신 실질적인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이 원칙 하에 한국은 직접 개입이 아닌 전략적 분업, 즉 '자유진영의 병기창' 역할을 해야 한다. 가령 동남아 국가에 방산 협력을 강화해 미국이 대만에 집중할 공간을 만들어주고, 공급망을 다변화해 중국의 강압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그 대신 핵 잠재력의 보완 조치를 받아내야 한다."
미국이 '대타협(grand bargain)'을 이뤄서 아시아를 중국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데.
"종종 '천하 삼분지계'를 거론하며 세력권 정치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얘기다. 첫 번째 이유는 21세기 경쟁의 대상은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반도체·AI·양자컴퓨팅 등 기술 생태계와 시장 네트워크라서 '기술 경제적 불가분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네트워크를 지리적으로 분할하면 기술의 가치가 사라진다. 또 동아시아는 첨단 반도체 생산과 글로벌 성장의 핵심지로, 이를 중국에 넘기면 중국의 강압 능력을 키우는 '내생적 파워 이동(endogenous power shift: 분할을 양보하는 행위 자체가 상대의 힘을 키워 합의를 무너뜨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미국은 4년 대선 주기라 전임자의 합의를 뒤집는 압력을 계속 만들지만, 중국은 단일 정당 체제이기에 양국 '국내 정치 시간의 비대칭성' 문제도 있다. 한국·일본·인도·아세안 등 동맹국의 '비토 파워'도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는 깔끔한 분할 합의가 아니라 장기적 강대국 경쟁이다."

국제안보 차원에서 인공지능(AI) 기술도 화두다. 주의해야 할 점은.
"AI는 국가 간 격차를 확대하는 '능력 증폭기'가 됐다. 이때 세 가지 위험을 주의해야 한다. 먼저 핵무장 국가들 간 전략적 안정성의 훼손이다. AI와 첨단센서를 결합해 적의 전략핵잠수함(SSBN)을 추적할 수 있게 되면, 상호확증파괴(MAD) 기반 억지는 약해지고 선제 타격의 유혹이 커진다. 시스템에 대한 맹신도 위험하다. 1979년 미국에서 훈련용 테이프가 실제 경보 체계에 잘못 입력돼 소련의 공격으로 오인된 사건이 있었는데, AI가 이런 잘못된 조기 경보 데이터를 실제 공격으로 단정해 국가 지도자들이 오판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핵보유국 간 재래식 분쟁의 엉뚱한 확전 가능성도 있다. 재래식과 핵에 모두 쓰이는 '이중 용도' 위성 같은 표적을 AI가 타격 목표로 설정한다면 핵 확전의 위험이 있다."
한국은 AI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국제적 협약의 보호막을 전제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데이터·판단·통제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군사적 AI를 제한하려는 국제 협약은 검증이 어렵다. 컴퓨터 안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와 AI 코드는 사찰도 감시도 할 수 없다. 과거 핵 군비통제 조약과 같은 시도는 비현실적이다. 한미동맹도 다차원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전통안보 차원에서는 핵 잠재력 확보와 범지역적 역할 확대하고, 비전통안보 차원에선 디지털 플랫폼, AI, 에너지 협력이 핵심 영역이 돼야 한다. 이로써 전통 방어 협의체를 넘어 첨단기술과 공급망의 공동 설계자로 진화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AI 성과인 아웃풋(output)만큼이나 AI에 투자하는 인풋(input)도 중요해졌다. 한국이 알고리즘 성능 못지않게 데이터 정책과, AI를 다루는 인간의 판단 역량에 투자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을 평가한다면.
"정확한 전략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예컨대 일본과 관계 개선에 진심인 것은 알겠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드럼을 같이 치고, 안경을 서로 끼워주는 상징적 제스처와 의전은 좋지만 정책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많지 않다. 정부 내부에서 자주파와 동맹파 간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점도 우려스럽다. 그 갈등이 안보를 저해할 수준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재명 대통령이 키맨으로서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데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분단국가이자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 있다. 적극적인 분들도 있지만, 정치권 전반의 외교안보 관심과 실행력은 그 무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외교안보는 대선 직전 벼락치기 과목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그 이면에는 대통령 스스로 지식이 부족해도 훌륭한 참모를 둬 일임하면 된다는 위험한 선입견도 깔려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갖고 있던 세계관은 국가 전략의 큰 방향을 결정하며, 대통령의 외교 경험은 참모를 통제하는 능력과도 직결된다. 이는 대선 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 역할도 매우 크다. 의회 외교는 행정부 견제를 넘어, 행정부가 맡기 어려운 '배드 캅' 역할과 국내 입법을 통한 외국 영향력 차단, 동맹국과의 협력 수단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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