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다 읽지 못한 딸의 어버이날 편지

5월8일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보행로. 가로수 사이에 길게 늘어뜨려진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아버지 이○○씨(49)는 딸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고 길 한편에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넋을 놓고 있다가도 행인이 지나칠 때면 이내 등을 돌려 품에 안고 있던 사진을 내보였다. “우리 딸이에요, 꼭 좀 기억해주세요. 우리 딸이에요, 꼭 좀 기억해주세요….” 사진 속 하트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한 딸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할머니 조○○씨(68)는 물이 반쯤 남은 플라스틱병을 손에 쥐고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물이라도 조금 마시라”며 애써 물병을 손에 쥐여주어도, 병에 담긴 물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잠을 안 잔다. 사흘째 잠을 안 자.”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흘 전 이 거리에서 아버지는 딸을 잃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친척끼리 만나 식사를 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나날이었다. 사건 발생 당일 오전, 딸은 다친 인대가 다 나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와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부녀가 함께한 마지막 외출이었다. 오후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딸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아버지는 밤늦게 휴대전화를 들었다. 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 번째로 전화를 걸었을 때 휴대전화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실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딸의 심정지 소식을 들었다.
이른바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2026년 5월5일 오전 0시11분 무렵이었다. 23세 남성이 귀가하던 A고등학교 학생 이○○ 양(17)을 습격하고, 이 양을 도우려 한 다른 고등학교 남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피의자는 이 양과 일면식도 없는 남자였다. 〈시사IN〉이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구급 활동 일지에 따르면 이 양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오전 0시32분과 0시38분께 “인도에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라는 신고가 소방에 접수됐다. 신가동에서 출발한 구급대가 0시48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이 양은 이미 호흡이 멈춰 있었다. 구급대원은 가슴을 압박하고, 기본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이 양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송 차량은 오전 1시9분 전남대학교병원에 도착했다.
■ 계획된 범죄
사건은 광주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곳은 주택가인 수완·신창·신가동으로 향하는 거의 유일한 길목이었다. 주민들은 이곳이 평소 학생들의 통학로이지만,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물다고 말했다. 자녀가 이 양이 다니던 A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신창동 주민 박희순씨(53)는 “이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들었을 때, 피해자가 우리 집 근처에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사건 현장) 부근에는 학원이랑 학교가 많고 반대편에는 주택가가 있어서 학생들이 종종 다닌다. 버스가 끊긴 시간이라 (이 양이) 걸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걸어가는 길이 여기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피의자는 사건 장소 인근 동네에 거주하던 23세 남성 장윤기다. 범행 11시간 뒤인 5월5일 오전 11시25분께 주거지 근처에서 붙잡혔다. 5월7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고, 5월14일 신상이 공개됐다.
장씨는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자살하려고 했다. 죽을 때 누구라도 데려가려 했다”라고 경찰조사에서 말했다.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러 가는 길에서도 취재진의 질문에 “계획 범죄가 아니다. 여학생인 걸 알고 한 게 아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뒤이어 밝혀진 사실은 그의 주장과 달랐다. 장씨가 범행 전 흉기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범행 직후 인근 코인 세탁소에서 혈흔이 묻은 옷을 세탁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장씨의 전 직장 동료 여성이 범행 하루 전인 5월4일 장씨를 스토킹·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5월14일 오전, 광주 광산경찰서는 장씨를 검찰에 송치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5월3일 새벽 장윤기는 자신의 교제 요구를 거절하는 전 직장 동료 여성을 협박하고, 칼 2점을 구입하여 여성의 주거지로 찾아갔다. 여성이 112 신고를 하자 장윤기는 도주하며 휴대전화를 버렸다. 이후 장윤기는 칼을 소지한 채 여성을 만나기 위해 배회하던 중, 범행 장소 1㎞ 떨어진 곳에 혼자 있는 이 양을 처음 발견했다. 그리고 범행 대상을 직장 동료에서 이 양으로 변경했다. 이 양의 동선에 차량을 미리 정차하고 대기하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전 직장 동료 여성에 대한 살인 예비 혐의를 추가했다. 성폭력처벌법 위반 및 스토킹 혐의에 관해서도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면담, 스마트폰 포렌식 등을 통해 장윤기의 범행을 ‘분노 범죄’로 판단했다. 목적이 뚜렷했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와 구분되는 유형이라는 결론이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5월11일 장윤기를 상대로 사이코패스 진단 평가를 시행했지만, 평가 결과 장윤기는 사이코패스 분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딸의 발인을 마친 다음 날인 5월8일, 가족은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딸 사진을 들고 그 거리로 돌아왔다. 오후가 되자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는 영정을 두 손으로 든 채 거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시선이 허공을 응시하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정신을 차려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딸 좀 기억해주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식을 접하고 온 지인들을 만난 뒤에야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딸이 보고 싶다며 목 놓아 울었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이 하나둘 힘을 보탰다. 테이블과 의자를 구해다 놓고 가로수 사이에 검은 줄을 맸다. 새틴 소재 노란색 리본 끈을 30~40㎝ 길이로 잘라, 사인펜 몇 자루와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리본에 추모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국화꽃과 과자도 들고 왔다. 노란 리본들이 검은 줄 위에 하나둘씩 매달렸다. 가족들은 그 공간을 살뜰히 살폈다. 리본이 엉키면 풀고, 바닥에 떨어지면 바로 주워다 끈 위에 다시 꽉 묶었다.
■ 영정이 된 주민등록증 사진
거리로 돌아온 둘째 날인 5월9일, 할머니는 거리에 상을 폈다. 전날 세워진 천막 옆에, 어른 두 명이 겨우 앉을 만한 크기의 초록색 돗자리를 깔았다. 그 위에 직사각형 교자상을 두고, 상 위에 사과와 오렌지를 올렸다. 국과 흰쌀밥도 올리고, 향을 피워 종이컵에 꽂았다. 그 앞에는 간이 의자를 두었다. 의자에는 전날 가족들이 품고 있던 영정을 올려놓았다.
영정 사진은 이 양이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미리 찍어둔 사진이었다. 2009년생인 이 양은 몇 달 뒤 만 17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이 생긴다는 들뜬 마음으로 미리 찍어둔 사진이 이렇게 사용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영정 사진을) 학생증 사진으로 할까, 이 사진으로 할까 고민이 많았다”라고 어머니 최○○씨(43)가 말했다.

영정 뒤편에서는 이 양이 생전 좋아하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비스듬히 세워둔 영정 사진 뒤에 이 양이 사용하던 태블릿 PC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노래를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학원과 거리가 있어서 차로 바래다줬다. 그럴 때면 딸이 차량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노래를 틀고 창문을 내렸다. ‘아빠. 노래 크게 듣고 가자’라면서.” 어머니 최씨도 “딸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이렇게 사진 뒤에 두고, 태블릿 PC에 저장되어 있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라고 설명했다.
아이를 잃은 가족은 하루 종일 그 거리에 머물렀다. 아침 일찍 이곳으로 나와서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눈을 붙이러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밤 12시10분에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그 시간까지는 있으려고 한다”라고 이 양의 이모가 말했다. 이곳에 오는 일이 힘들지 않으냐는 말에 어머니 최씨는 “여기 너무너무 오기 싫은데, 딸이 외로울 테니까···”라고 답했다. 도저히 딸을 이곳에 혼자 둘 수 없었다.
■ 생전에 남긴 어버이날 편지
친구들이 추억하는 이 양은 착하고 밝은 아이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단짝이었다는 경신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보경 양(17)은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는 친구였다”라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떡볶이도 같이 먹고,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었다. 같이 떠들다 학원에 가고 그랬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집에 데려다주려 했다. 항상 ‘네가 작으니까 내가 데려다줘야 해’라고 말하던, 그런 아이였다.”
이 양의 중·고등학교 후배라는 이서진 양(16)도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던 언니”로 이 양을 기억했다. 전날 꽃다발을 포장해 왔다는 서진 양은 이튿날에도 초콜릿 과자를 사들고 왔다. “언니가 초코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왔다. 언니는 ‘나중에는 다 괜찮을 거’라고 해주던 사람이었다. 정말 착했다.”

가족에게도 이 양은 사춘기라고 할 것도 없이 착하고 예쁜 딸이었다. 5월10일 오후 어머니 최씨는 천막 아래 앉아 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결혼기념일이라고 생화를 사왔다.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됐을 땐데.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엄마는 뭐 먹고 싶어?’라고 되물었다.” 그런 이 양은 사람 살리는 직업을 꿈꿨다. 응급구조사라는 고된 직업을 꿈꾸는 이 양을 보며 가족들은 걱정이 앞섰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그거 하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 조씨가 말했다. “그런데 사람 도와주는 일이니까, 본인이 도와주는 일을 좋아하니까 하겠다고 하더라.” 친척 두 명이 응급구조사로 일한다. 이 양은 그 모습이 멋있어서 꼭 하고 싶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이 양이 세상을 떠나고, 가족들은 딸의 방을 교대로 지켰다. 발인 후 첫날에는 아버지가, 둘째 날에는 친구가, 그다음 날은 어머니가 그 방에서 잠들었다. 딸의 방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는 책상 구석에 숨어 있던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이 양이 어버이날 선물로 준비해둔 편지였다. 편지에 “엄마만 생각하고 살면 좋겠어”라고 적혀 있었다. 딸은 평소에도 종종 편지로 가족에게 마음을 전했다. 이제 이 편지가 마지막이다. 종이 두 장을 빼곡히 채운 딸의 마지막 글을, 어머니는 차마 다 읽지 못했다.
“그날도 엄마가 자고 있을까 봐 전화를 안 했다고 하더라. 그냥 하지….” 어머니 최씨는 말끝을 흐렸다. 거리로 돌아온 가족들은 사건에 대해 거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뉴스 기사도 차마 못 읽는다고 말했다. 변화를 받아들일 시간이 가족에게 더 필요했다. 그러다가도 피의자 장윤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애써 누르고 있던 감정이 단숨에 북받쳐 올랐다. “형량이 십몇 년이면, 범인이 30대에 출소하는 것 아닌가? 그런 사람이 다시 거리를 돌아다니면 어떡하나. 이런 사건이 또 발생하면 어떡하나”라며 아버지는 울분을 토했다.
■ 같은 학년 여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5월8일부터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찾아와 이 양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자정 넘긴 새벽까지도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국화꽃 위로 국화꽃이, 그 위로 또 국화꽃이 층층이 포개졌다. 누군가 놓고 간 과자와 인형이 돗자리에 빈틈없이 쌓였다.
5월9일 오후 소방공무원으로 일한다는 30대 남성 김 아무개씨가 주황색 구급대원복을 손에 들고 찾아왔다. 돗자리 끄트머리에 옷을 살포시 올려놓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어머니 최씨가 김씨의 모습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김씨는 “돌아가신 학생분의 꿈이 응급구조사라고 해서 사왔다.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대학생 정승제씨(24)는 “희생자가 학생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명복을 빌러 왔다”라고 했다. ‘거기서는 꼭 꿈을 이뤄서 많은 사람을 구하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정씨는 추모 공간에 들렀다가,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서 다시 돌아왔다.

5월10일 추모 공간 뒤편에서는 여학생 서너 명이 웅크려 앉아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이 양과 같은 학년 다른 반 학생이라는 A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추모하는 공간이니까, 거리가 깨끗하면 좋을 거 같아서 줍고 있었다”라고 말하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담배꽁초를 줍다가, 페트병 하나를 가득 채우고 거리를 떠났다. 이 양의 십년지기 친구 두 명도, 매일 이곳을 찾아왔다. 천막 아래서 긴 시간 앉아 있다가 떠났다.
매일 아침 줄 서너 개를 가로수에 새로 걸어두어도, 하늘이 어두워질 때면 금세 또 다른 리본으로 빽빽이 채워졌다. 가족이 거리로 나온 지 나흘째인 5월11일, 그렇게 30m가량 길게 늘어선 노란 물결이 바람에 일렁였다. 수많은 이들이 이 양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와 함께.
‘우리 딸 항상 옆에 있어주고 엄마 딸이라서 엄만 너무 행복했어’ ‘언니, 많이 보고 싶고 힘내. 사랑해’ ‘보고 싶어’ ‘다음번에 아저씨 택시 공짜로 많이 태워줄게’ ‘친구해줘서 고마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꿈에 나와주라’ ‘모두가 널 기억해줄 거야’ ‘잘 가, 반짝이는 꽃 같은 친구야’···.
광주·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