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전쟁 났는데 우리가 왜”…아시아 국가들 IMF 이후 최대 통화 위기
‘실탄’ 바닥에 금리 인상 카드까지 외통수
고물가 비명 속 전쟁 종식이 유일한 돌파구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로이터=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5/mk/20260525073303384gwsw.png)
일본과 한국 역시 자국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으나, 치솟는 연료비와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로의 자금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아시아에 갑작스레 닥친 통화 위기의 근본 원인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과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의 합작품이라고 보도했다.
페르시아만의 핵심 석유·가스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이 차단되면서, 브렌트유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유가 50% 폭등하며 배럴당 105달러 선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로서는 원유 수입 대금 지불을 위해 더 많은 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구조적 타격을 입은 것이다.
여기에 미국 채권시장에서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0년 만에 최고치인 5% 돌파를 기록하면서 신흥국에 머물던 투자 자금이 대거 미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공지능(AI) 열풍이 부는 미국이나 대만 주식을 사고, 인도 등 아시아 자산을 파는 이른바 ‘셀 아시아(Sell Asia)’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달에만 엔화 방어를 위해 약 630억 달러(약 87조 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달러당 160엔 선을 사수하려 하나, 개입 효과는 2주 만에 절반 이상 희석되며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는 루피아화 환율이 달러당 18,000루피아 선까지 위협받자,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은 시장의 예측을 깨고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페리 와르지요 총재는 “비상 상황이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 이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외화보유액은 각각 약 80억 달러(5~7% 감소) 줄었으며, 인도의 외화보유액 역시 5월 초 기준 약 270억 달러(4% 감소)가 증발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달러 매도’ 개입이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EBC 파이낸셜 그룹의 시장 분석가 사나 우르 레만은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감소 속도가 빨라지면, ‘우리에겐 든든한 준비금이 있다’는 말이 시장을 안심시키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고스란히 서민 경제를 타격하고 있다. 연료비와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득의 대부분을 생필품에 소비하는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저소득층 가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항구에서는 디젤 가격 급등으로 배들이 출항을 포기한 채 정박해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정치 집회에서 국민들에게 ‘애국적 절약’을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현재 상황에서는 외화를 아끼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휘발유와 디젤 소비를 줄이고 재택근무를 확대해 주십시오. 불필요한 해외여행은 취소하고 주방용 가스 사용도 아껴야 합니다.”
인도 정부는 금과 은 등 귀금속의 수입 관세를 두 배 이상 인상하는 등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프랑스 금융회사 나티시스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는 “아시아 통화가 반등하기 위한 단기적인 해결책은 단 하나, 중동 전쟁의 실질적인 종식뿐이다”라고 진단했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변동환율제를 도입하고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등 체력을 키워왔으나, 이번 중동 전쟁은 아시아 경제의 ‘취약한 에너지 구조’와 ‘달러 의존성’이라는 근본적인 아킬레스건을 다시 한번 노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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