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 맞고 찾아가라”…AI 시대에도 통하는 21년 전 ‘영업 9단’ 비법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관계의 법칙
[왕개미연구소]
“눈이나 비 오는 날에 방문하라”(눈비 맞은 채 들어가면 동정심을 유발)“
“타이거 우즈와 잭 니클라우스 비교표를 만들어 선물하라”(사장의 관심을 유도)
“전화를 늦게 받았을 땐 숨찬 목소리를 연출하라”(전화 응대는 영업의 생명)
“명절 선물은 최소 한 달 전에 보내라”(VIP 고객은 여러 곳에서 선물 받는다)
21년 전 IBK기업은행 내부 지침서 ‘프로들은 이렇게 한다’에는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현장을 누비던 ‘영업 9단’ 은행원의 실전 전략이 빼곡히 담겼다. 고객의 심리를 읽는 법부터 첫인상을 각인시키는 기술, VIP 관리 요령까지 현장 베테랑들이 몸으로 익힌 노하우가 담겼다. 당시 이 책자는 내부 직원 3000여명에게 배포됐는데, 지금까지도 영업의 고전으로 회자된다.
인공지능(AI)과 플랫폼의 시대가 열렸어도 결국 계약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따낸다. 20여 년 전 만들어진 이 책자에서 지금 읽어도 통하는 ‘영업의 정석’을 골라 소개한다.

◇자동차 트렁크가 너저분한 사람은 요주의
영업의 달인들은 무엇보다 ‘첫인상’을 만드는 인사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짧은 순간에 자신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동시에 고객 정보까지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악수는 특히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상대방의 손을 힘 있게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볍게 웃어야 한다. 책자는 “고객이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이미 마음의 절반은 연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손이 차갑다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일 수 있으니 중요한 이야기는 미루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악수만으로도 고객의 성향을 가늠할 수 있다. 손이 따뜻하거나 두툼한 사람, 눈썹이 진한 사람, 귓불이 큰 사람, 코가 두툼한 사람, 특히 손금이 일직선으로 뻗은 ‘막금’인 사람은 신용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언어 습관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적절한 사투리는 친밀감을 높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반말이 존댓말보다 더 빠르게 거리를 좁힐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여성에게 하는 반말은 거슬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고객의 승용차 트렁크도 관찰 대상이다. 트렁크가 지나치게 어수선한 사람은 계획성과 정리 습관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용 상태를 더 꼼꼼히 확인하라는 조언도 담겼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황당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대목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상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작은 단서에서 정보를 읽어내려 했던 집요함은 오늘날 데이터 기반 영업과도 맞닿아 있다.

◇선물은 여러 번 자주…명절 선물은 한 달 전에
영업왕이 되기 위해선 VIP 고객 확보가 필수다. 그렇다면 VIP 고객은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책자는 혈연·학연·지연을 활용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꼽는다. 특히 고령 고객은 외부 활동이 잦지 않은 만큼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꾸준히 안부를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선물은 가격보다 정성이 중요하다. 단순히 물건만 전달해서는 효과가 떨어지는 만큼, 반드시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가 적힌 카드와 함께 보내야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고향 가는 길에 손마디가 굵은 할머니께서 고추를 직접 말리고 계셨습니다. 고객님 생각이 나 구입했습니다. 집사람이 손질하는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염려됩니다. 이것으로 추석을 맞이하는 제 마음을 표현하게 돼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또 VIP 고객에게 보내는 명절 선물은 최소 한 달 전에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VIP 고객은 여러 곳에서 선물을 받는 만큼 비싼 물건보다 먼저 챙기는 정성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러 고객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VIP 고객을 발견했더라도 곧장 다가가 인사하기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전체를 향해 손을 흔드는 편이 효과적이다. 특정 고객에게만 인사하면 주변 고객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못 박아주던 시대는 갔지만, 본질은 남았다
언뜻 보면 지금 기준에선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파트 단지 영업법이다. 책자에는 “집에 못을 박아 드립니다” 같은 전단지를 돌리라는 조언이 담겼다. 하지만 지금은 낯선 사람의 방문 자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주말에 쓰레기봉투나 세제류 등을 들고 아파트 입주민을 공략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다만 주4일제 도입 논의까지 나오는 지금의 은행권 분위기에서 주말 영업을 독려했다간 현장 직원들의 거센 반발을 살 법하다.
그럼에도 책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책자 제작을 주도했던 현병택 전 IBK기업은행 부행장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업의 본질은 같다”며 “새로운 시대일수록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체질화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웬만한 고객들은 과거 수준의 만족만으로는 흡족해하지 않는다”며 “고객이 처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문제를 해결해 ‘저 사람은 내 편, 내 동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과 채널은 빛의 속도로 달라졌지만, 고객의 마음을 읽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결국 계약을 따낸다는 21년 전 영업 교과서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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