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은 공동 응원이 고마울까, 우스울까···‘핑퐁 외교’와 다른 한국 정치의 스포츠 활용법 [이근승의 삐딱선]
정치가 스포츠를 활용해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낼 순 있다. 단, 두 가지 조건을 완벽히 충족해야 한다.
첫째, 정치가 유능해야 한다. 정치가 순진무구하면, 이용만 당하며 버림받기 일쑤다.
둘째,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여야 한다. 서로의 목적은 다를 수 있으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정치가 스포츠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1971년 미국과 중국 간의 ‘핑퐁 외교’다.
미국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양국은 외교 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 속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양국의 관계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런 일이 뜬금없이 이뤄졌을 리는 없다. 미 국무부 역사관의 공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중국이 가장 원하는 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바로 UN(국제연합)에서 중국의 대표권 회복이었다.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이전까지 UN에서의 대표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1950년 제5차 UN 총회에선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표 자격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이 인도에 의해 제출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 회원국들의 반대에 부딪힌 까닭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1949년 중국 내전에서 패배해 타이완으로 쫓겨난 뒤 중국 본토에 대한 지배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UN 내 중국 대표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흐름은 1971년 10월 25일 뒤집힌다. UN 총회 결의 2758호가 채택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UN에서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1949년 이후 22년 만에 UN에서 밀려났다.
미 국무부 역사관의 자료를 종합하면,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 노력에 속도를 붙인 건 1960년대 후반부터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면서 아시아 공산당 정부들과의 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공산 국가 간의 동맹 약화, 북베트남의 외교적 고립, 소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강화 등을 노렸다. 이러한 필요성이 자국에 대한 대표성을 인정받고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중국의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미 국무부 역사관 자료엔 ‘닉슨 대통령은 칸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 양국 지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반대하거나 공개를 우려한 미국 국무부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줄 매력적인 중재자로 판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 국가주석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소련과의 관계를 대등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미국 공식 대표단이 처음 중국 땅을 밟았던 1971년 4월 10일로 가보자.
중국은 이에 앞선 3월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석 중이던 미국 선수단에 자국 초청 의사를 전했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인 뒤 두 차례 비밀 접촉 후 중국 땅을 밟기에 이른다.

1971년 6월 10일 닉슨 미국 대통령은 20년 이상 이어져 온 중국에 대한 무역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이듬해인 1972년 2월 21일부터 28일까진 닉슨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고,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이 이루어졌다. 닉슨 대통령의 방중 말미엔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 성명엔 ‘양국은 모든 국가의 이익에 합치되게 국제 관계를 유지하며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을 규정했다. 더불어 ‘중국과 타이완의 문제는 중국인 스스로가 외부의 간섭없이 해결할 것’과 ‘미국이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분이란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미국은 1978년 12월 15일 미·중 수교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1979년 1월 1일 중국과 본격적인 수교에 이른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타이완과의 공식 외교 관계를 종료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회복이 탁구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다만, 양측은 탁구를 통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걸 확인했다. 미국과 중국은 탁구를 활용해 서로의 관계를 더욱 원만히 하며 목표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냉전의 마지막 분단국가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스포츠를 외교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사례를 꼽으라면 1988 서울 올림픽일 것이다.
서울 올림픽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빠른 발전상만을 보여준 대회가 아니다. 1988 서울 올림픽에 앞서 치러진 1980 모스크바(소련) 올림픽과 1984 로스앤젤레스(미국) 올림픽은 ‘반쪽짜리 대회’로 평가된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엔 미국을 비롯한 서방 60여 개국이 불참했다. 대한민국도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엔 참가하지 않았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냉전이 계속되면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쿠바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의 국가기록원은 1988 서울 올림픽을 ‘동서(東西)의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한 전 인류의 스포츠 제전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 전개된 동서냉전의 종식 등 세계적인 화해 시대의 개막을 선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88 서울 올림픽엔 앞선 두 대회에 불참했던 국가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160개국 1만 3,626명의 선수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올림픽 성공 개최에 힘입어 북방외교에 속도를 붙였다. 한국은 1989년 2월 1일 동유럽 국가 중 최초로 헝가리와 정식 수교를 시작했고, 1990년 9월 30일엔 소련, 2년 뒤인 1992년 8월 24일엔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는 남북이 분단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간 대표적인 첫 상호 방문 스포츠 교류였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한 차례씩 친선경기를 벌인 남북은 더 적극적으로 스포츠를 활용했다. 1991년 지바(일본) 세계탁구선수권에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세계 정상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현정화, 홍차옥(이상 한국), 리분희, 유순복(이상 북한) 등 여자 단일팀이 단체전 결승에서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까지 해낸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안보연구소 발간 자료엔 ‘1991년 4월 개최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의 우승은 남북 교류 역사 속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남과 북은 이후에도 1991년 남자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FIFA U-20 월드컵의 전신) 남북 단일팀, 2000 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 북한이 선수단과 대규모 응원단까지 한국으로 보냈던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등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노렸다.

특히, 한국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단일팀으로 구성하면서 ‘공정성 논란’을 불러왔다.
과거엔 없었던 논란이 불거진 원인은 명확했다. 정치는 20세기의 방식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해 성과를 내고자 했다. 그것도 우리의 방식으론 실패라고 결론 났던 걸 그대로 썼다. 시대와 세대가 바뀌었지만, 정치의 방식과 사고는 과거에 머물렀음만 확인했다.
정치력이라도 빼어났다면, 남북 관계 개선이란 성과로 이어졌겠으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북 관계는 2018년 이후 더 악화 됐다.
2026년 5월 북한 여자 축구팀인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과 공동 응원은 북한에 ‘우린 대화의 의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외 어떤 기대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2018년 21세기의 남북 스포츠 교류를 추진하는 방식의 변화를 절감했음에도 일방적인 일 처리를 고집하고, 없어도 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저의는 또 무엇일까.
그만큼 관계 개선에 자신 있고 묘수를 갖고 있다는 기대를 품기엔 우리 정치의 스포츠를 활용한 남북 관계 개선 시도는 과정부터 결과까지 늘 뻔했고, 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 프로축구단 구단주 출신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중 프로축구 생태계를 가장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성남 FC 구단주를 맡았을 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도 경험했다. 아시아클럽대항전이 갖는 의미도 모를 리 없다.
축구계는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의 공동 응원단 구성으로 상당히 불쾌했다.
그렇다면 정치는 왜 이번 AWCL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세금까지 지원해 가며 공동 응원단을 꾸렸을까.
먼저, 암울한 여자 축구의 현실을 짚어야 한다. 한국에서 여자 축구의 인기는 높지 않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비인기 스포츠다.
여자 축구도 ‘프로스포츠’라고 하지만, 한국 여자 프로축구인 WK리그의 경기당 평균 관중 숫자는 500명도 넘지 못한다.

지난해 7월 한국에선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이 열렸다. 한국 여자 축구는 지난해 20년 만에 동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관중석은 텅텅 비었다. 여자부 6경기에 모인 관중이 3,861명에 불과했다. 평균 643명이었다.
2024~2025년 한국에서 열린 여자 A매치를 종합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5월 여자 축구를 남북 관계 개선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부담이 적었다. 왜냐. 비인기 스포츠니까.
특히, 수원 FC 남·여 프로축구단 모두 수원시의 혈세 지원에 의존하는 시민구단이다. 수원시는 지자체 혈세에 의존하는 프로축구단이 절반을 훌쩍 넘어버린 한국 프로축구계에서 연간 150억 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시도민구단이 프로축구계에 등장한 지 24년이나 지났음에도 ‘혈세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그 어떠한 자료 하나 내세우지 못한다는 건 정치가 축구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정치가 공동 응원단 조성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지금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원 FC가 존재하는 이유는 팬이 아니다. 기업의 스폰도 아니다. 수원시가 프로축구단이 수익을 내든 내지 않든 변함없이 지원하는 안정적인 예산이 있어서 존재한다.

정리하면, 공동 응원이 아니었다면, 이번 AWCL 준결승전과 결승전은 텅 빈 관중 아래 치러졌을 것이다. 밖에서의 관심도 이토록 크지 않았을 터다. 더군다나 정치가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하면서 티켓과 응원 도구 등을 구매했다.
정치가 수원 FC의 수익 증대에 이바지했다. 이런 사실은 논란이 있긴 하나 정치의 수원 FC 활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
정치가 앞으로도 축구를 이용할 가능성은 크다. 당장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면, 몇몇 시도민구단엔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뜬금없이 유니폼 색깔이 특정 정당을 떠올리는 색으로 바뀐다던가 세금을 투입해 경기장 좌석의 색깔을 바꾸는 등의 행위가 벌어져도 축구계는 크게 화를 낼 수 없다.
축구는 정치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고, 축구계는 정치로부터의 독립에 큰 의지가 없는 까닭이다.
축구가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생력을 갖추고 지자체 예산 의존도를 줄여나가면 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는 구단들의 선수단 평균 연봉을 보면, 축구가 정치와 등을 질 필요가 없다는 걸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남자와 여자 선수단의 평균 연봉 차이는 크다. 다만, 각 리그의 우승 상금과 구단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 대비 지자체가 한 해 투입하는 비용을 비교하면, 남자 축구든 여자 축구든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활동한 스페인 출신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 교수이자 철학자였던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역사, 우리 축구계의 현실 등을 종합해서 봤을 때 이번 공동 응원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뻔한 방식으로 예상된 갈등을 일으켰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대한민국 수원에서의 공동 응원단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고향의 수원 방문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북한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확한 것 같았다.
북한은 2023년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북한은 올해 3월에도 ‘대한민국이 가장 적대적인 국가’이며, ‘남북은 두 국가’라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북한 여권을 제시했다는 건 ‘남북이 두 국가’임을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강조한 것이다. 리유일 내고향 감독이 ‘북측’이란 단어에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간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내고향 선수단이 따뜻한 환대에 처음부터 끝까지 무반응으로 일관한 것도 북한은 ‘대한민국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며, 한반도는 두 국가’란 메시지를 담는다.
내고향은 이번 AWCL에서 우승하며 상금 100만 달러(한화 약 15억 원)를 확보했다. 여기에 자신들의 메시지까지 확실하게 전달했다.
내고향은 북한 선수단으론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많은 걸 얻고, 남겼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었을까.
‘적대적 두 국가’란 메시지를 강하게 표출한 상대에게 20세기 때와 달라진 것 없는 따스한 방식으로 접근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9월 일본(아이치·나고야)에선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남북 관계 개선은커녕 벌써 대한민국 내 갈등과 논쟁이 그려지는 건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도 따스한 손을 내미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고마움의 감정을 느낄까, 아니면 과거와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 우스울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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