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주도하는 미국, 원전 노하우와 전문 인력 많은 한국 필요로 해”

"원전 기술, 설계도만으로 구현할 수 없어"
미국이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SMR) 개발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을 주요 파트너로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김형대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에 따라 빅테크들이 앞다퉈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면서 '전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막대한 전력을 생산해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AI용 반도체 확보 못지않은 중대 과제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30년 동안 사실상 잠들어 있던 미국 원전산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중심에는 SMR이 있다. 기존 원전에 비해 출력 및 규모가 작은 SMR은 수요처와 가까운 적재적소에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SMR 생태계를 구축하고 한국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국내외 투자자들 관심도 높아졌다. 5월 19일 김 교수를 만나 SMR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한국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 자세히 물었다. 김 교수는 정부 '탄소중립 선도 해양용 용융염원자로 기술개발사업' 기획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SMR 등 차세대 원전과 관련된 연구 및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SMR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크기가 작아서 건설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적고 안전성이 높다. 원전을 모듈(단위 부품) 단위로 나누어 미리 만들어놓고 이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 덕에 경제성과 효율성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즉 적어도 10년은 걸리는 대형 원전 건설 프로젝트와 달리 고밀도 에너지가 필요한 AI 데이터센터나 대형 선박, 제철 공장 수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SMR의 규모가 작아서 더 안전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기존 원전은 대형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인간 운전원이 능동적으로 개입해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달리 규모가 작은 SMR은 사람이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저절로 냉각되는 피동적인 안전 설계를 지향한다. 쉽게 말해 갓 조리한 음식을 실온에 두면 저절로 식듯이, 원전 전원을 내린 채 사흘가량 두면 자연스럽게 냉각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SMR 설계 개념이 나온 계기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당시 사고처럼 각종 안전장치가 원자로에 액세스할 수 없게 되더라도 자연 냉각이 가능하면 문제가 없다."
현재 미국의 SMR 개발 단계는 어느 수준인가.
"미국은 SMR 상용화 로드맵을 크게 2030년 전 초도호기(첫 도입되는 기종) 개발→2030∼2040년 이를 뒤따르는 패스트 팔로어들 등장→2040∼2050년 산업 전반에 확산 등으로 설정했다. 아직 미국에 SMR이 실제로 지어진 것은 아니며, 테라파워가 건설 허가를 받은 상태다."
뉴스케일파워, 테라파워, 엑스에너지 등 3사가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데 각각 어떤 모델을 개발하고 있나.
"뉴스케일파워가 개발하는 SMR은 기존 가압경수로(PWR)와 유사한 형태다. 원자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 유사해 그간 축적된 기술 및 경험이 많다. 그래서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원자로에서 만들 수 있는 온도는 300℃ 정도가 한계라고 본다. 테라파워의 SMR은 냉각재로 물이 아닌 소듐을 쓰는 형태다. 가압경수로와 비교하면 원자로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 현상이 바뀌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많다. 다만 사용 후 핵연료가 가압경수로 방식에 비해 적게 나오는 장점이 있다. 원자로 온도를 500∼600℃까지 올릴 수 있어 에너지 생산 효율도 높다. 엑스에너지는 고온 가스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원전은 핵연료를 보호하기 위해 금속 피복관을 쓴다. 반면 가스로 초고온을 내는 원자로에선 더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세라믹 소재에 핵연료를 넣는다. 최고 1000℃까지 초고온을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기존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통해 생산하던 공정열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미국은 1950∼1960년대에 이 같은 형태의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한 적이 있다. 여러 노형 가운데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 흔히 쓰이는 가압경수로다. 여러 노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실제 실험도 했고, 이와 관련된 기록들도 남아 있다."
"두산에너빌, 원자로 쪄내듯 만드는 기술 개발 중"
그런 미국이 한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기술과 노하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예로 들자면 원전에 들어가는 원자로 등 주기기(primary system)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단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최근 이 업체는 분말 원료에 고온·고압을 가해 SMR용 원자로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단조와 달리 원자로를 쪄내듯이 만드는 신기술이다. 노하우의 경우 다소 막연하게 들리지만, 이는 원전 건설에 필요한 각종 관리 기술이나 전문 인력 간 팀워크 등 포괄적인 요소다. 단적인 예로 미국은 1980년대 이후 30년 만에 보글 원전 3·4호기 건설을 추진했는데, 실제 가동은 당초 목표로 했던 2016년보다 크게 늦어진 지난해와 올해 이뤄졌다. 건설 기간이 예상보다 2배가량 길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분명 원전 설계 기술과 도면을 갖고 있음에도 노하우가 없어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하나.
"미국 중심의 원전 생태계에서 그들의 견제를 피하는 동시에 우리의 이득도 취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자체 개발하고 있는 i-SMR은 가압경수로 원전 건설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자적 개발 및 사업화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다만 비경수형으로 가게 되면 핵연료가 달라지고 관련 데이터도 부족한 편이라 미국과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국내에선 SMR 특성에 맞는 적절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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